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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가 주는 메시지

누드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매번 달라지고, 누드의 표현 방식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영국의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누드를 단지 벌거벗은 상태(nakedness)와 비교하며 예술의 한 형식으로 정의한다. 또 다른 학자인 존 버거(John Berger)는 그의 저서 [Ways of Seeing]에서 남성 시각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성되는 누드를 비판하며 마네의 <올랭피아>같은 새로운 시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번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 NUDE>는 다양한 범주의 누드를 모아 한 곳에 전시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누드에 담긴 메시지들을 읽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윌리엄 하모 소니크로프트 <테우케르>

헨리 무어 <쓰러지는 전사>

누드가 주는 메시지

이 두 개의 청동 조각에는 전사 또는 군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한 쪽은 가슴을 당당히 펴고 활을 겨누고 있는 반면, 오른쪽 그림의 전사는 바닥에 쓰러진 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테우케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왕이자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난 인물로, 19세기의 예술가들은 누드를 필수적인 훈련과정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군인이나 운동선수의 몸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의 육체미, 건강하고 강한 몸의 표현은 고전 시대의 이상적인 누드 조각과도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이전까지 남성의 누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인물의 용맹함이나 강인함을 강조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왔으나, 헨리 무어의 <쓰러지는 전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병사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그것은 명예스럽지 못하다. 이 작품은 또한 인간이 가진 죽음의 필연적 운명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아래 영상 참고.

오귀스트 르누아르 <긴 의자 위의 누드>

바클리 헨드릭스 <줄스 가족: NNN(나체 흑인 금지)>

누드가 주는 메시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 사조인 인상주의, 그중에서도 여성 인물화를 유독 많이 그렸던 르누아르의 작품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긴 의자 위의 누드>도 그가 그린 여성 누드화 중 하나로, 인체의 곡선을 최대한 살려 각진 부분이 없이 원을 그리는 형태로 만들었는데, 풍만한 몸매에 핑크빛과 오렌지빛의 살결이 빛에 반짝이며 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모델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전통적인 오달리스크 자세로, 오달리스크는 원래 오스만 제국 술탄(왕)을 위한 하렘의 여성을 의미하지만 19세기 서구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하면서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와 같은 작품을 통해 누드 도상으로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바클리 헨드릭스의 누드는 이를 전복시키며 신선한 충격을 준다. 흰색의 소파와 대비되는 흑인 남성은 비스듬히 누워 파이프를 들고 관람자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 걸린 스카프 속 백인 여성과도 대비되며, 이상화되지 않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의 몸은 백인들의 공포심과 편견을 자극한다고 볼 수 있다. 헨드릭스는 이 작품에서 남성 오달리스크의 표현을 통해 성과 인종에 대한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부여하고 있다.

신디 셔먼 <무제 #97>, <무제 #98>, <무제 #99>

누드가 주는 메시지

신디 셔먼은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보여지는 방식, 대상화되는 방식을 포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녀가 1981년 제작했던 사진 시리즈(<호라이즌탈스> 또는 <센터폴즈>로 알려진)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너무 무력한 여성을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다음 해 보여준 이 작품들에서는 훨씬 달라진 태도를 보여준다.

 

세 컷으로 구성된 이 사진들 속의 모델은 작가 자신으로, 카메라 앞에서 관람자와 눈을 마주친 상태로 몸을 가리고 있다. 마지막 컷으로 넘어갈수록 그녀의 눈빛은 적대적으로 변해가고, 몸을 가리는 행위 역시 더 적극적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관람자가 작품 속 여성의 몸을 시각적으로 소유하고 사물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강한 거부를 표현하며 페미니즘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누드가 주는 메시지

테이트 명작전의 메인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의 대리석 조각 <키스>로, 실물 크기의 한 연인이 앉은 자세로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에로티시즘과 로맨틱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커플은 단테의 소설 『인페르노』(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파올로 말라테스타와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로, 그들은 형수와 시동생으로 만났지만 깊은 사랑에 빠져 불륜을 저지르다 결국 프란체스카의 남편에 의해 죽게 된다. 원래 이 소재는 <지옥의 문>을 장식한 청동 조각으로 만들어졌다가 점점 그 인기가 높아져 대리석부터 작은 테라코타 조각까지 여러 개가 제작되었다.

 

이 조각은 인체의 굴곡과 섬세한 근육 묘사는 물론, 인물들의 감정 역시 잘 표현하고 있다. 파울로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그녀를 부드럽고도 강렬하게 감싸 안고 입을 맞추는 파울로, 둘의 애절한 사랑이 지옥도 그들을 떨어뜨려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듯하며,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표면은 순수하고 영원한 느낌을 준다.

 

만약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단테의 <신곡>을 미리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해외로 자주 반출되지 않은 작품인 만큼, 이번 기회에 꼭 전시회에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크리스마스까지 진행되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참고.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 - NUDE

  1. 2017.08.11.(금) ~ 2017.12.25.(월)
  2. 10:00 ~ 19:00 (입장마감 오후 6시)
  3. 소마미술관
  4. 성인 13,000원 / 청소년 9,000원 / 어린이 6,000원
  5. 오디오가이드와 도슨트 해설 있음

이미지 출처와 자료 참고는 테이트미술관(www.tate.org.uk)과 전시 공식페이지(tatekorea.modoo.at)

 

황인서 에디터 seohwang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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