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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장래 희망=꿈?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내 꿈은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때 일기장을 보면 내가 직접 만든 옷을 패션쇼에 올리고 싶다고 써놨다. 꿈이 패션디자이너였던 것은 기억나는데, 정작 왜 하고 싶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나의 반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장래 희망을 발표하기 전에 꼭 말하고 발표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작가 임하나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발표했다.

 

그 후로도 내 꿈은 쭉 작가였다. 책 읽는 게 너무나도 좋았고, 그러한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순수문학 작가 해서는 굶어 죽는다’라는 어른들의 걱정 섞인 잔소리가 또 한 번 내 꿈을 바꿨다. 바로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글도 잘 쓰고, 사교성도 좋고 싹싹하니 방송작가가 잘 어울릴 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은 더욱 힘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내 꿈은 쭉 작가였고, 나는 한 대학의 국문과에 입학했다. 아, 올해 휴학을 하게 되었으니 휴학생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방송 작가가 하고 싶었는데, 선배나 교수님, 현재 방송계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의 지독한 만류에 또 마음이 식었다. 학창시절 책뿐이던 내 관심사가 대학 입학 후로 더 넓어진 것도 한몫했다.

내 꿈이 뭐지?

그러던 중 덜컥, 내 마음속에 불안이 찾아왔다. 대학교 3학년까지 마치고 나니 슬슬 취업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부지런히 공모전, 대외활동, 연합동아리 활동을 해온 친구들과 나를 비교선상에 놓기 시작했다. 잠도 못 자가며 과제하고, 글 쓰고, 아르바이트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내가 한 건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기록처럼 여겨졌고, 나는 한없이 우울해졌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방송 작가라는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이루고 나면 내 꿈은 없어질 것이지 않는가. 더 이상 희망 직업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남들의 꿈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 남들이 가진 멋있는 꿈을 좇았다.

 

멋있는 꿈은 대부분 직업이 아니었다. 전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것,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것 등이었다. 꿈은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 되어야 한다고 어디서 들은 게 생각났다. 그래야 그 꿈을 이뤄도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겐 꿈이라고 할 만한 멋있는 동사형이 없었다. 누군가 ‘네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할 만한 멋들어지고, 어딘가 있어 보이는 답을 준비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렇다 할만한 꿈이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목적 없는 경주는 그만

(방탄소년단 - 낙원)

그런 내게 어느 순간 한 노래의 가사가 귀에 꽂혔다.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목적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방탄소년단의 ‘낙원’이라는 노래였다. 데뷔 초기부터 팬이었던 가수였고,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가수가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다니. 누구보다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들이란 걸 알기에 사실 꿈 또한 대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청춘들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 다른 청춘들에게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덤덤하게 위로했다. 다 꾸는 꿈 따위 없어도 된다고, 위대해질 필요도 없고, 너는 그냥 너라고.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 거, 그런 사소한 것들도 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누군가에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꿈이다. 꿈도 여유가 있어야 가진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루지 못하는 꿈만큼 가슴 아픈 것도 없으니 아예 꿈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이쯤 되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꿈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솔직한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진짜 꿈은 없는데, 그럴 듯한 가짜 꿈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을 테니까.

꿈이 없어도 괜찮아

가수 윤종신은 청춘페스티벌에서 꿈이 없다는 한 사연자의 고민을 듣고 ‘꿈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늦게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본인도 20대 초반에 꿈이 없었고, 음악을 할 생각도 없었는데 어느덧 26년차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꿈이 없는 청춘들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꿈이 없어도 없는 대로 긴장하고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는 촉을 항상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요. 세상에 대한 긴장감을 놓치지 말고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일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찾아보세요.’. 수 년이 지난 강연이지만 내겐 아직도 그 말이 진하게 남아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것 같다. 옛날엔 위대한 사람들의 성공 방법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나도 위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성공보다 행복이 더 우선인 세상이 되었다. 목적도 없이 달리기만 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잠시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함께 뛰는 사람과 대화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가 더 행복하다.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 ‘소확행’ 같은 단어들도 결국 다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휴학을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가고 있다. 놀랍게도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난 영화를 볼 때, 글을 쓸 때, 집에서 요리할 때, 공연을 감상할 때 행복하다. 그림은 못 그리지만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재밌다는 걸 알았다. 또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힘들어하고, 소수의 친한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안정감을 느낀다. 에디터 활동도 뿌듯하고, 요새는 마케팅도 관심이 생겼다. 꿈은 없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결국 꿈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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