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잘하시네요”라는 말은 칭찬일까?
2015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다양한 언어교환 모임을 운영해왔다. 언어교환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을 하자면 외국인과 한국인이 모여서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문화를 교류하는 모임을 뜻한다. 유학생이 많은 대학교는 직접 운영을 하며 이를 사업으로 하는 회사도 있다. 나는 그런 종류의 회사에서 잠시 매니저로 일을 하다가 수원으로 돌아와 언어교환을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교류와 감정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중재하고 서로의 입장을 알려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써보고자 한다.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느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의 내용처럼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대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 볼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외국인과 한국인을 동일하게 대해야 하지만 다르게 대해야 할 때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언어교환 모임에는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참가한다. 모두가 다양한 국가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몇 시간 만에 세계 한 바퀴를 돌아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한국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뭔가 등급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차별하거나 등급을 나누는 경우는 없었다. 그건 누구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같이 언어교환을 운영하던 친구가 TOPIK 6급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렸다. TOPIK은 한국어 학습자들을 위한 한국어 능력 시험으로 6급이 최상위 등급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갑자기 한국어 공부를 중단하겠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서 계속 살 생각 있으면 그래도 한국어 계속 공부하는 게 더 좋지 않아?’라고 내가 말을 하자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다른 친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들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언어교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교류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북미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 특히 백인들이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해도 ‘한국말 너무 잘해요!’라는 칭찬을 해줬다. 그러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더 유창하게 한국말을 해도, 그 사람들을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대화를 나누기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이것이 내가 운영하는 언어교환 모임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고 다른 언어교환 모임 몇 개를 추가로 참석해 봤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양 국가에서 온 사람 중 특히 백인들은 조그만 노력에도 지나치게 칭찬을 받았고 중국인과 동남아시아인은 한국어를 잘하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긍정적인 말 하나 듣지 못했다. 중국인과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실제로도 인터넷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해도 칭찬을 받는다는 이야기. 자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왔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무시를 받는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한국인 아줌마 혹은 아저씨를 찾는 방법 |
이 자료를 Reddit에 올렸고 이런 경험을 해봤다는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렸다. 해당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국에서 온 분이 남긴 글 |
칭찬은 총알이 될 수도 있다
칭찬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입 밖으로 나오지만, 이를 받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총알이 될 수도 있다. ‘우와 흑형!’이라고 말할 때 총알이 될 수 있다. 백인에게 ‘얼굴이 너무 작고 귀엽다’, ‘피부가 너무 하얗다. 이쁘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흑인이라는 명칭의 변형, 얼굴 크기와 피부색에 미적 기준을 부여하는 행위 등은 인종차별의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일수록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행위들이 차별도구로 사용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처럼 생각을 하고 평가를 내렸다고 해석을 할 여지도 있다.
또한, 이민자가 많은 국가에서는 ‘우리 나라 언어를 잘 한다’는 말을 인종차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너희 인종은 원래 우리 나라 언어 못하잖아’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르웨이 출신 리포터 셰르스티 플라가 <신비한 동물 사전 2>에 출연한 배우 수현과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 “영어 너무 잘하시네요!”라고 발언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민자가 많은 국가에서는 “너희 아시아인은 영어 원래 못 하잖아”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한국어 너무 잘해요’라는 칭찬은 서양인 혹은 백인을 위한 칭찬, 그리고 너무 가볍게 사용되는 칭찬이 돼버린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는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며 이 문장 하나만으로 한국어 실력 여부는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노력을 칭찬한다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특정 국적이나 인종에 칭찬이 몰릴 이유도,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칭찬을 못 받을 이유도 없다.
그런 까닭에 이런 칭찬을 받는 서양인 혹은 백인들은 그런 칭찬에 고마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양인과 아시아인을 구분 짓기 위한 행위로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너희 인종은 원래 한국어 못하잖아’라고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친구가 쓴 글 |
언어교환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이 주제를 가지고 언어교환 사람들과 회의를 했다. 누군가 이 칭찬으로 부담을 느끼거나 차별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민자가 많은 국가에서 온 회원들 대다수가 ‘한국어 너무 잘해요’라는 칭찬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칭찬을 가볍게 사용해서 이제는 칭찬으로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무시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칭찬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외국어를 학습하고 구사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우며 그 노력에 대한 칭찬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 끝에 다음과 같은 규칙을 만들었다.
- 차별적 칭찬 금지: 특정 인종과 국적을 따지면서 한국어 실력을 칭찬하지 않는다. 노력했다면 모두가 정당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 칭찬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단순히 ‘안녕하세요’만 했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노력과 구사 능력을 면밀히 본 다음에 칭찬한다.
- 우리는 되도록이면 언어 실력을 칭찬하지 않고, 그 사람의 생각, 의견, 통찰력을 칭찬한다.
나는 마지막 규칙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 카카오톡을 통한 인터뷰, 헬로우톡(Hellotalk, 언어교환 학습자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페이스북처럼 포스트를 올릴 수 있음), 페이스북 등을 통해 얻은 내용을 캡처해서 올렸습니다.
** 인터뷰 및 당사자와 소통 시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영어-한국어 번역은 직접 했습니다. 번역에 오류사항이 있다면 직썰 홈페이지에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썰 필진 Korean Grammar Do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