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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대화를 죽인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JTBC '크라임씬'

2015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다양한 언어교환 모임을 운영해왔다. 언어교환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을 하자면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모여서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문화를 교류하는 모임을 뜻한다. 유학생이 많은 대학교는 직접 운영을 하며 이를 사업으로 하는 회사도 있다. 나는 그런 종류의 회사에서 잠시 매니저로 일을 하다가 수원으로 돌아와 언어교환을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인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교류와 감정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중재하고 서로의 입장을 알려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써보고자 한다.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느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의 내용처럼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대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번 생각을 해 볼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외국인과 한국인을 동일하게 대해야 하지만 다르게 대해야 할 때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JTBC '비정상회담'

내가 운영하는 언어교환 모임에서는 누구나 정치, 역사 등을 주제로 삼은 민감한 이야기부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모임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꼭 한 번씩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자신이 받았던 차별 이야기이다. 성별 때문에, 학벌 때문에, 출신 지역이나 국가 때문에,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다. 한편으로는 억압적인 한국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준 분들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회원 한 분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이 외국인이라서 받았던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직장 동료들은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뭔가 실수하면 다른 한국 사람들보다 더 질책을 받는다고 했다. 다들 그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고 있는데 한 회원이 이런 말을 했다. “차별은 뭐 어디에나 다 있잖아요. 그냥 넘기는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자신이 받았던 차별에 대해 말하던 사람은 그 회원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을 그만뒀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데 참는 것 같은, 그리고 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대화는 거기서 끝나버렸다.

 

통계를 보나, 신문을 보나, 차별이 사방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만으로 대화할 수는 없다. 사실만으로 의견을 나누고 싶으면 토론을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은 토론이 아닌 대화를 원했다. 대화에는 공감도 필요하고 이해도 필요하다. 특히 자신의 아픈 기억이나 감정을 되짚어가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를 이제 막 가진 사람은 저절로 자신이 나약해진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어려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차별을 어디에나 있으니 견디라’는 말이 ‘차별당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견디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식의 발언은 대화의 맥을 끊고 당사자의 숨통을 조여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대화는 그렇게 죽어버린다.

이런 말은 삼갑시다

언어교환을 운영하면서 누군가 차별을 이야기할 때 대화를 죽이는 발언을 몇 번 들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식의 발언을 한다고 해도 대화는 발전하지 않고 대화만 죽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별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한 사람의 고통 또한 줄어들지 않는다. 더 아파진다. 대화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다.

 

예전에 헬로우톡에서 어떤 분이 자신이 한국에서 차별받았다는 글을 남겼었고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그 댓글들을 모아 예시로 사용하고자 한다. 헬로우톡(Hellotalk)은 언어교환 학습자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으로 페이스북처럼 포스트를 올릴 수 있다.

 

예시를 좀 더 들기 위해 각 항목마다 독자들이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들을 추가했다.

 

(1) 차별은 어디에나 다 있어.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1.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냥 차별을 참고만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왜 더 참을 수 없냐?’라는 말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이런 발언은 차별을 당한 사람이 가진 ‘차별이 사라지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도 부숴버릴 수 있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이 회사만 차별(성/외모/지역/학벌 등)이 있는 줄 알아? 다른 회사도 다 똑같아. 다 그렇게 사는 거야.

 

(2) 차별은 인간의 본성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1.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도 개인과 집단에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올바르다고 볼 수 없으며 규제와 처벌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발언은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변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차별이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서 차별로 인해 발생한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차별(성/외모/지역/학벌 등)은 인간의 본성이야. 사회가 이런 것은 그런 것들이 인간의 본성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야.

 

(3) 한국인만 차별한다고 생각해? 외국 나가봐. 외국에서는 한국인도 차별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당해.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1. 우리 집단도 차별당한다고 해서 다른 집단이 받는 차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둘 다 없어져야 할 대상이지 다른 하나를 정당화하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차별을 생각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받는 차별의 고통이나 강도가 더 약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차별을 말하는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고통을 다른 것과 비교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고통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좋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너는 이 회사에서만 차별(성/외모/지역/학벌 등)하는 줄 알아? 다른 회사 가봐. 거기도 차별이 있어.

 

(4) 외국이 한국보다 차별이 더 심하다던데 뭘 그거 가지고 그래. 한국에 사는 거 행복한 줄 알아야 해.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1. 차별의 종류는 국가와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차별의 강도 및 차별 때문에 고통의 크기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힘들다. 또한, 그런 비교를 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고통이 더 줄어든다고 보기는 힘들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내가 군 생활 했었을 때는 말이야. 네가 있었을 때보다 더 힘들었어. 기합도 많이 받았어. 지금 군인들은 군인도 아니야. 행복한 줄 알아야 해. 내가 네 나이 때는 진짜 더 힘들고 더 짜증 났어. 젊은 사람들 행복한 줄 알아야 해.

 

(5) 일반화하지 마. 어떤 사람들만 나쁜 것이고, 대부분은 착해.

 

  1. 나쁜 사람이 소수이고 좋은 사람이 다수라는 이야기는 수용이 되나 이 말을 사용하는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 또한 차별을 한 사람의 명수가 아니라 차별을 당한 사람이 느낀 고통과 불안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그 나이 든 사람이 너한테 갑질했다고 왜 나이 든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해?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들은 착해. 소수가 갑질하는 거지.

 

(6) 한국에 사는 게 그렇게 싫으면 다른 나라로 가. / 네가 살던 나라로 돌아가. 한국에 살면서 특혜 많이 받았잖아.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말이
  1. 한국에 있는 차별이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차별은 한국 사회의 일부분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한국에 사는 게 그렇게 싫으면 다른 나라로 가.

 

(7) 너는 잘사는 나라에서 왔고 백인이잖아. 네가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경험은 배부른 소리 같아. / 이해하지 못하겠어.

 

  1. 특정 국가에서 온 사람들, 특정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 그 경험과 고통이라는 진실이 국가나 인종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국가에서 왔고 특정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를 해버리는 것도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 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2.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 : 네가 나보다 돈 더 많이 벌잖아. / 네가 나보다 더 잘 살잖아. / 네가 나보다 더 잘 생겼잖아. / 네가 나보다 더 예쁘잖아. / 네가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경험은 배부른 소리 같아. /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누군가 차별 혹은 부당한 대우 받았던 이야기를 한다면 먼저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용기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좋다. 더 나아가 그런 경험이 차후에 또 생기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다. 우리가 그 사람의 상황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해결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그 사람의 용기에 감사하고 지원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시)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저에게 말씀해 주셔도 괜찮아요. (선택 사항: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우리는 사실만으로 대화할 수는 없다. 사실만으로 의견을 나누고 싶으면 토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차별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토론보다는 대화해야 한다. 대화에는 공감도 필요하고 이해도 필요하다. 우리는 대화를 원한다.

 

직썰 필진 Korean Grammar Do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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