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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후, 남편의 비명이 늘어갔다

나의 빈자리

남편이 두 달간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깨끗하고 산뜻하던 우리 집은 망가져 갔다. 음식물 쓰레기가 며칠째 쌓여 악취가 풍겼고, 냉장고 식재료는 문드러졌다. 싱크대와 식탁엔 끈적거리는 때가 찌들었다. 식탁 위의 깎아둔 과일에선 곰팡이가 피었고, 빨래도 퀴퀴하게 쉬었다. 매일 아침 양말 찾느라 온 집안을 뒤졌고, 샤워하고 나면 입을 팬티가 없었다. 아이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바람 부는 날에도 반팔 옷을 입은 채, 알림장에 아무 기록도 못 한 채 어린이집에 갔다. 나의 빈자리는 금세 탄로 났다.

육아휴직 후, 남편의 비명이 늘어갔다

우리집도 진짜 시작됐다. ⓒKBS

남편의 주특기는 테트리스였던 만큼 그는 성심성의껏 정리정돈을 했다. 아이 책 사이엔 내 팬티와 티셔츠가 가지런히 박혀 있었고 피아노 위엔 층층이 이불이 쌓여갔다. 그러다 하루는 나를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쌀이 똑 떨어졌어. 어떻게 하지?"

 

남편이 육아 휴직하고 주부 한다고 내가 집안일에 손 놓은 건 아니었다. 서로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설거지하고 청소기도 밀면서 딱 남편이 전에 했던 만큼 나도 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됐다. 싱크대 위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는 식재료를 볼 때마다 잔소리하고 싶어 근질근질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여기에서 후퇴할 수 없었다.

 

아침마다 생각나는 대로 일러주는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자동으로 해왔는지 실감했다. 빨랫감과 쓰레기 분류부터 알려주었다. 흰 빨래는 따로 빼놓고, 얇은 옷과 운동복은 찬물 울 코스 세탁, 나머지는 표준 세탁하라고 했다. 분리수거할 땐 음식물은 물기 빼서 담고, 국물 묻은 비닐은 헹궈 넣고, 기름기 절은 플라스틱 용기는 휴지로 닦거나 씻어 넣으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 집안에 악취가 풍긴다고 신신당부했다. 걸레로 쓰는 수건과 세면용 수건의 차이를 상기시키고 걸레는 수건걸이에 걸어두지 말라고도 했다.

 

손톱 깎기가 어디 있는지, 어린이집 가방에 넣을 도시락이 무언지, 아이 것 작은 수건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빠뜨린 건 매일 생겨났다.

보이지 않는 노동

오후에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종일 청소를 했다고 했다. "아, 그래?" 웃으며 집을 둘러보았다. 아침에 나갈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낮 동안 뭘 한 거야'

 

그러니까 그건, 그동안 남편이 나에게 가진 의문이기도 했다.

 

"집에서 뭐하는데?"

 

남편은 늘 나의 일과를 궁금해했다. 집안일은 기록으로 남지 않으니 설사 치웠다 해도 아이가 놀면 5분 만에 엉망이 되니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주부가 뭘 하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주부보고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웠는데 나 역시 무심결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육아휴직 후, 남편의 비명이 늘어갔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가사 노동 그리고 육아. ⓒKBS

주부가 한 일을 증명하려면 집안 청소 '전과 후'를 사진으로 찍어 남겨야 할 판이었다. 가사와 육아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할 땐 몰랐다. 나는 분명히 쉬지 않고 치우고 닦고 만들고 입히고 씻겼으니까. 하고 나면 몸이 뻐근했으니까. 때론 작은 성취감도 들었으니까. 남편도 분명 나와 같은 소소한 보람과 개운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없던 나에겐 와 닿지 않았다.

 

집이 아침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으며 그제야 '보이지 않는 노동'이 이해가 되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쓸고 닦지만, 그 시간은 노동 가치로 환산되지 않고 공기처럼 흩어져버린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금세 일상이 삐걱거리니, 하면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일이었다.

 

집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음이 바로 집안일을 한 결과이자 효과임을, 집안일이 중지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주부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 온 나조차 몰랐다. 오히려 벗어나서야 소름 돋게 그 차이가 보였다. 남편은 나의 반응이 시원찮은 걸 눈치챘는지 우물우물하며 말했다.

 

"열 시부터 청소해서 화장실까지 했는데 중간에 밥 먹고 하니까 2시가 넘어버렸어"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집안일이 원래 그래. 몰랐어?“

 

"집에 있으니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휴직 기간 내내 이 말을 자주 했다.

'잉여 인간' 된 기분

"집안일하고 애 보는 게 힘들지 않아?"

 

나는 남편을 떠봤다. '힘들어 죽겠지? 그렇지?' 남편은 잠깐 생각하더니 으쓱하며, 할 만하다고 했다. 매우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럼, 당연히 할 만하겠지. 내가 혼자 하던 때와 지금은 다르잖아. 지금 나는 병원에도 같이 가고, 아침에 밥도 같이 차리고, 애 밥도 먹이잖아. 7시면 집에 들어와 청소도 하고 애도 내가 재우잖아."

 

심통 났다. "너 정말 고생 많이 했겠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라며 남편이 꺼이꺼이 통곡해주길 바랐는데 이토록 태연하다니!

 

그러다 아이가 아파 삼일 간 어린이집에 못 간 적이 있었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운전하던 남편이 그런다.

 

"온종일 애랑 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좀 답답해"

 

"출근을 안 하니까 이상해. 잉여 인간이 된 거 같아."

 

살림도 육아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잉여 인간이 된 것만 같은 자괴감에 가장 괴로웠다. 확실한 소속과 직업이 있다가 없어지니 나란 인간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월급이 꽂히고 승진하고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땐 생생한 보람과 성취가 있었다. 물론 실패에 대한 불이익이 있고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피폐해질 땐 '이게 사는 건가' 싶은 깊은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쨌건 나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물질적 대가가 따랐고, 명확한 직업과 소속이 주는 안정감이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지켜주었다. 나를 속물이라 해도, 주부보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고 언제나 돈을 벌어왔기에 그런 사고방식이 익숙했다.

 

그런 나에게 주부일지라도 직업의식을 가지라고, 혹은 가정의 CEO가 되라는 소리는 기만이었다. 보이지도, 남지도 않고, 돈도 받지 않는 데다,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에 '직업'이라는 말을 붙이는 거 자체가 난센스였다. 가사, 육아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이라 주장하면서도, 그만한 대우와 인정이 없고, 왜 오로지 '책임과 임무'만 강조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주부는 '역할'일 뿐 '직업'은 아니다. 보상 없는 역할 수행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나는 뼛속까지 회사형 인간일까.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늘어가는 한숨

전에 남편이 하던 육아란 가끔 아이와 블록 놀이를 하거나 용변 처리를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는 언제나 좋은 아빠였고 아이를 혼낸 적도 없다. 안아 달라 하면 안아주고 목말 태워달라 하면 번쩍 들어 태워주었다. 콧대 높고 까다로운 공주님에게 벌벌 떠는 명실공히 딸 바보였다.

 

한편 나는 모든 악역을 맡았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먹기, 잠자기, 양치하기’부터 “안 돼, 하지 마”란 말도 내 담당이었다. 내가 아이를 혼낼 때마다 남편은 아직 어려서 그러는 건데 너무 과민 반응한다고 했다.

 

그러던 남편이 놀이 상대를 넘어, 밥 해주고 먹이고 옷 입히고 약 먹이고 이 닦이는 주 양육자가 되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양치를 해주며 동영상을 보여줄지, 밥 먹기 전에 사탕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할지 결정해 달라고 했지만 나는 과감하게 끊어냈다.

 

"그건 당신이 알아서 판단해주세요"

 

'결정‘도 육아 노동의 일부란 걸 알아야 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그의 한숨도 늘어갔다. "하아-" 땅이 꺼져라 쉬는 한탄부터, "아아아악!" 절규까지.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남편이 애절한 얼굴로 물어봤다.

 

"얘 원래부터 이렇게 말 안 들었어? 진짜 말 안 듣는다!"

육아휴직 후, 남편의 비명이 늘어갔다

아이가 왜 우는지 그 누가 알리오...! ⓒKBS

아이와 ‘놀기’만 했을 땐 몰랐던 거다. 그러다 짜증 낼 때 달래기부터 도망 다니는 녀석을 잡아 어떻게든 한 입씩 떠먹이고, 가장 고난도 과제인 양치질을 위한 협상과 타협, 협박을 구상하고, 재우려고 방 불 끄면 다시 켜는 걸 열 번쯤 반복하는 실랑이를 견뎌내고, 완전히 곯아떨어지기 직전까지의 온갖 트집과 요구를 들어주며, 이제야 어린아이라는 실체를 만난 것이다.

 

남편은 평소에 화를 잘 내는 편이 아니며 인내심도 강하다. 어지간히 땀이 나도 입던 재킷 벗기가 귀찮아서 계속 입고 있고, 어지간히 추워도 이불 꺼내기가 귀찮아 웅크리며 참고 자고, 배가 고파도 차려 먹기 귀찮아 두 끼쯤은 건너뛰는 대단한 참을성의 소유자다. 그런 남편도 요 네 살짜리 꼬맹이에게 매번 인내심을 시험당했다.

 

반면 나는 애가 울어도 떼를 써도 귀여워 보였다. 남편이 아이에게 시달리는 만큼 나는 아이가 뭘 해도 예뻤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늦게 들어온 날엔 특히 그랬다. 아이를 하루에 30분, 길어야 한 시간 볼 때 느끼던 아빠 마음, 어쩌다 보는 할머니 마음, 조카를 보는 이모 삼촌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육아에 수반되는 극한 노동에서 산뜻하게 제외되면서 뭐든 받아줄 수 있는 관대하고 넉넉한 마음과 체력이 생겼다. 잘 준비 싹 마친 말간 볼을 한 아이와 만날 땐, 내 남은 에너지를 어김없이 아이에게 쏟을 수 있었다.

 

남편이 또 비명을 지른다.

 

“와, 얘 진짜 말 안 듣는다!”

 

나는 차분하게 말해줬다.

 

"몰랐어? 얘는 원래 말 안 들었어. 그리고 저 나이 땐 원래 그런 거야. 말을 잘 들으면 그게 애기야?"

 

나는 남편이 했던 말을 되돌려주었다.

 

글.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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