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할 건가요?"
충고는 고깝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아니꼽고 마뜩잖고 지가 뭔데? 하는 반발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모든 충고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성급히 내뱉은 충고의 경우 거의가 그렇다. 지난 28일 방송된 '아이돌이 사는 세상 - 무대가 끝나고...'는 다행히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돌 선배들의 진솔한 이야가 담겼기 때문이었을까? 전반적으로 차분한 어조였다.
0.01%의 확률. 아이돌의 성공은 신화라 불린다. 그만큼 가능성이 희박하다. 일자리 문제로 비유해 말하자면 극도로 심각한 취업난이 아닐 수 없다. 피나는 연습생 생활을 몇 년동안 해도 데뷔조차 장담할 수 없다. 운이 좋아 무대에 섰더라도 성공을 예견할 순 없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토니안의 말처럼 소속사의 기획력과 자본, 거기에 엄청난 운까지 따라줘야 유명 아이돌이 될까말까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10대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최근에는 유튜버가 좀더 핫한 것 같지만) 아이돌은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은 쇼호스트가 된 전 아이돌 장성민의 말이 힌트가 될까.
“그런데 쉽게 놓을 수가 없어요. 그 진짜 실낱 같은 구멍이.. 들어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들어가면 너무 크잖아요. 안쪽 세상은”
그렇다, 그들만이 누리는 ‘안쪽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그 세상에는 땀을 닦는 동작 하나에도 환호성을 터뜨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도 사랑해주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그 절대적 애정이 주는 충만함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거기엔 엄청난 부와 명예도 뒤따른다. 가령 어떤 아이돌 멤버가 고액의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식의 기사를 우리는 심심찮게 접한다.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이면(裏面)이라든지 그 이후의 삶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식의 접근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토록 찬란한 세계가 현존하고, 그에 대한 성공 신화의 시스템이 강고해진 현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바보가 된 거 같았다는 말이 얼마나 효과적인 설득이 될까? 오늘도 아이돌이 되기 위해 학업을 비롯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달려가고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쉬운 접근이었다.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공통적으로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할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카라의 멤버였던 허영지는 “하고는 싶은데 똑같은 길을 걸을까봐..” 라며 주저했고, 스텔라의 멤버였던 가영은 “아이돌은 참 힘든 것 같아요”라며 말을 아꼈다. 엠블랙의 멤버였던 천둥은 “저는 할 것 같아요”라 대답했고, 토니 안은 “저는 무조건 다시 합니다”라고 확신을 보였다. 결국은 '개인의 선택이다'라는 결론이었다. 명확한 답은 없다.
훗날의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무대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짜릿함보다 약하다면 아이돌이 되겠다는 개인들의 선택을 만류할 방법은 없다. 적어도 그들에게 아이돌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몽땅 바칠 만큼 매력적인 직업이고, 지금의 착취에 가까운 구조와 시스템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학업을 몽땅 포기한 채 오로지 춤과 노래 연습에만 매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매몰된 사고를 바꿔야 하고, 보통의 삶을 빼앗아버리고서 그래야만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하는 착취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뿌리깊은 성공만능주의에 상처받고 있는 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를 치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게 하게 해선 안 된다. 참고할 모델은 체육이다. 과거에는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운동 선수들도 학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있다. 학업이 운동에 있어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인정되면서 일어난 변화다. 아이돌 산업도 다를 게 없다. 아이돌의 수명이 기껏해야 5~7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산업 구조 차원의) 고민이 절실하다.
물론 산업의 특성상 이를 제어할 주체가 없어, 개별적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건 난제다. 표준전속계약서가 존재하지만, 권고사항이라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최근 불거진 '더 이스트라이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법이 있다. 소속사에 무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아이돌 산업의 ‘갑’은 역시 소속사고,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이 강력히 부여돼야 한다.
사각지대에 있는 연습생 지망생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에 도전하기 위해 학업을 충실히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물론 우리의 교육이라는 게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그럼에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배우고 경험하는 다양한 활동은 사회 구성원이 제공 받을 최소한의 조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 미래, 삶이 그렇다. 개인이 꿈을 꿀 때, 좀더 안전한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0.01%의 구멍을 뚫으려는 저들은 좋아하는 일을 위해 간절히 자신을 걸고 있다. 우리 사회도 그에 걸맞게 절실히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글 : 버락킴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