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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써온 이름 법원 가서 개명 신청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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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환갑을 맞은 엄마는 큰 결심을 하나 했다. 바로 60년간 쓰던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2005년부터 개명 신청이 자유로워지면서 해마다 인터넷에는 '올해의 개명신청자' 명단이 올라온다. 발음하면 '욕'이 되는 이름에서부터 성과 함께 부르면 우스꽝스러운 뜻이 되는 이름까지…. 개명하려는 이유를 알겠는 이름들이다.


엄마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개명 결심을 했다. 엄마의 이름은 계수나무 계桂에 본뜰 모 模를 썼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름을 이렇게 지어놓고 아차 싶었던지, 집에서는 '모' 대신 '자'로 바꿔 부르곤 했다고.


하지만 '자(子)' 역시 일제 강점기 영향으로 일본식 한자 이름(子를 훈독하면 '코')으로 지금에 와서는 촌스럽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주목의 대상이었는지라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개명 과정은 어렵지 않다. 개명 신청이 쉬워지면서 인터넷으로 개명신청서를 뽑아 작성하고 관련 서류를 모아서 법원(주소지 담당 가정법원이나 지방법원)에서 이름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엄마가 공인인증서와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 직접 내러 가는 걸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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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주는 주술적 힘? 작명소부터 간다


앞으로 평생 부를 이름이니 작명소에서 2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이름을 받았다.


우리나라 이름들 대부분이 한자 이름이라 좋은 뜻에 부르기 좋은 발음, 불용문자가 아닌 조합을 선택한다.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그렇게 조합한 이름이 마음에 드는 건 또 별개이기도 하고.


모 일간지 오늘의 운세 필자라는 이의 작명 해설은 너무 좋아서 이대로만 되면 나도 이름 바꾸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운명이나 성명학 따위를 믿지 않지만, 한국인에게 내재된 미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성명학'에 따라 이름을 바꾼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도 직업적 성공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고, 보통은 사업이 잘되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불운을 피하고자 이름을 고친다.


흔히 이름에 쓰면 안 되는 '불용문자'는 잘 쓰이지 않거나 이름에 쓰면 나쁜 뜻으로 오해하는데 불용문자는 대법원이 1990년 교육용 한자와 이름 사용 빈도가 높은 한자를 토대로 인명용 한자 2,731자를 대법원규칙으로 최초 지정한 데서 시작됐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한자는 비인명용한자로 과거 출생신고에 기재할 수 없는 한자였고 이를 불용문자라고 통칭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는 인명용 한자가 8,142자로 대폭 확대되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한자는 인명용 한자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큰 의미가 없어졌고 지금은 "이름에 쓰면 안 좋은 뜻"의 미신 정도로 굳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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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 신청은 서류만 준비되면 간단…. 허가에는 2~3개월 걸려


이름을 바꾸는 절차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가. (1) 성년의 경우 : 사건본인의 기본 및 가족관계증명서, 부와 모의 가족관계증명서, 자녀의 가족관계 증명서(손자가 있는 경우) 각 1통


(2) 미성년의 경우 : 사건본인의 기본 및 가족관계증명서, 부와 모의 가족관계증명서 각 1통


나. 주민등록표등(초)본


다. 족보(사본) : 친족간에 동명자가 있음을 사유로 또는 항렬자를 따라 개명하고자 하는 때


라. 친족증명서 : 종중이나 문중 또는 친족회에서 친족 관계가 틀림없음을 증명하는 서면. 가족관계등록부나 족보로 친족 관계가 소명이 되지 않거나 불충분할 때에 보충적으로 첨부


마. 기타 증명서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경력증명서, 재직 증명서, 재학증명서, 졸업증명서, 복무확인서, 생활기록부, 편지, 예금통장 등


※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help.scourt.go.kr/nm/min_17/min_17_6/index.html)


여기에 신청인 또는 대리인의 기명날인 후 인지세와 송달료를 내면 된다. 개명 신청에 걸리는 시간은 2달에서 3달 정도이다.


다만 채무가 있거나 범죄사실이 있거나 하는 경우에는 개명이 거절될 수 있다. 개명 신청은 관련 '서류 재판'을 통해 이름을 바꾸는 절차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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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모르는 새에 아내가 이름을 바꿨어요", "두 번째 개명신청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사람은 생각 외로 많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이름을 바꾼다고 하면 법원에서는 거의 받아주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 하려는 사람이 여기 다 모였다.


"이름을 한번 바꿨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두 번째 개명신청 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내가 먼저 개명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서 우편물을 반송할 뻔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도 이름을 바꾸러 온 남편의 사연 등…. 저마다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를 들고 섰다.


참고로 이름은 처음 바꿀 때는 별 무리 없이 바꿀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종종 거절되기도 하니 한번 바꿀 때는 신중해야 한다.


법원에서 신청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오고, 개명 허가가 떨어지면 1개월 이내에 등록기준지, 주소지, 현재지에 신고한다.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인터넷으로 신고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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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하고 한동안 포털 사이트 가입이 힘들어서 애먹었어요"


개명이 받아들여지고 나서는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을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은행은 물론이고 매일 쓰는 포털사이트 등. 모든 공적인 업무들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개명신청보다 개명 신청 후, '공적인 나의 이름'을 수정하는 일이 더 귀찮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


개명신청을 한 지 9년이 되었다는 정유림(29세) 씨는 고3 때 뜻대로 학업이 풀리지 않아 어머니가 철학관에 가서 이름을 지어왔다. 철학관에서 한자가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가 아니라고 했단다.


유림 씨는 철학관에서 보여준 여러 이름 중이 이 이름을 골랐다. 처음에는 주변에서도 어색해하고 자신도 어색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안 좋은 이름이라고 하니 얼른 바꿔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이유로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유림 씨는 개명신청이 끝나고 한동안은 포털사이트가 여러 사이트 회원가입이 잘 안 되고,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다고 가입을 못 한 사이트도 있어 애를 먹었다. 특히 이미 가입한 사이트에서 핸드폰 번호나 기타 정보는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도 이름은 증빙 서류를 확인받아야 했던 불편함을 꼽았다.


지금은 일부 은행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수정할 수 있게 됐지만 이름을 바꾼다는 건 공적인 나를 증명하는 정보를 바꾸는 일이기도 해서 제반 서류가 많이 필요하다.


기자의 엄마는 지금 새로운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를 늘 '엄마'로만 불러서 엄마의 이름에 큰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오랜시간 엄마의 이름은 우리 가족끼리만 할 수 있는 농담으로 여겼다. "엄마 이름 왜 바꿔?"라는 우리의 첫 반응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이제 공적인 자리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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