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픽사 애니메이터로...김재형 "'소울' 속 불꽃 따라갔죠"
"저 역시 하던 일(의사)을 그만두고 애니메이터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울'을 보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일과 관련된 부분 외에도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전달하는 메시지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위로와 힐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2일 온라인 인터뷰로 만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영화 '소울'(감독 피트 닥터) 개봉을 앞둔 소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디즈니 픽사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소울'의 캐릭터 개발에 참여했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저마다의 성격을 갖춘 영혼이 지구에서 태어난다는 재미있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소울'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된 조와 지구에 가고 싶지 않은 영혼 22가 함께 떠나는 특별한 모험을 그린다. 영화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을 만든 피트 닥터 감독이 연출을, 제이미 폭스와 티나 페이가 각각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영화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새로운 세계관과 이를 구현한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주목받았다. 앞서 인터뷰에서 피트 닥터 감독은 23년 전 자신의 아들이 탄생한 순간부터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김재형 애니메이터를 포함한 동료들 역시 감독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캐릭터를 구현하려면 감독님과 정말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해요. 영화의 시발점이기도 한 아들 성격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 했죠. 본인과도, 아내와도 비슷한데 자기만의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요. 또한 주인공 조에 그간 자신의 여정을 많이 투영한 것처럼 보여요. 감독님 역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아카데미 상도 탔지만, 가족들과의 시간을 희생해가며 만든 것이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결국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캐릭터 애니메이터는 마치 배우처럼 캐릭터를 연기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화면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을 담당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조를 주로 작업했다. 디테일한 작업물을 위해 수많은 레퍼런스를 살피고 수십 번이 넘는 수정이 따랐다.
"보통 작업을 할 때 과거 있었던 비슷한 형태의 캐릭터를 많이 조사해요. 많이 보고 참고를 하는데 동시에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죠. 예컨대 '소울' 속 제리, 테리와 같이 선으로 만든 캐릭터는 픽사에서도 처음하는 시도거든요.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살을 붙이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죠."
가장 공들인 장면으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조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꼽았다. 극 중 조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를 연주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과정이 환상적인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이 장면을 위해 영화의 재즈 편곡에 참여한 존 바티스트의 실제 연주를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 키스 자렛을 모티브로 테스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에요. 1초에 스물 넉 장 들어가는 컷을 피아노를 테스트 해가며 한장 한장 다 작업을 해야 했죠. 여기에 감독이 실제 피아노 연주를 구현하는 것 이상을 요구했어요. '주인공이 이성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기에 뭔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죠. 몇 번을 보여주고 다시 수정하고 장면을 완성했는데도 마지막에 제가 스스로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한번 손을 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의 이력은 독특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한 이후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꿈을 구체화했다. 2006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근무. 이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쳐 2008년 픽사에 입사한 후 '업' '토이스토리3' '인사이드아웃' '코코' '토이스토리4' '온워드' 등 캐릭터 개발에 참여했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일을 시작한 후에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거나, 직장에서도 치열한 부분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고. '소울'처럼 그는 가슴을 울리게 하는 불꽃을 따라갔고 지금 자리에 이르게 됐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만두고 나와서 어떤 것이 좋을지 계속 생각했고 이전에 취미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 휴학하고 공부도 했던 게 애니메이션 분야였습니다. 물론 고민도 부침도 많았죠. 그런데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균적으로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선택한 데 후회는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커리어를 확장하고픈 싶은 목표도 있다. 곧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그가 연출한 짧은 영상이 공개된다고. 다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이 일이라 좀 더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도전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소울'은 개인적으로 다양성을 위해 노력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간 디즈니 픽사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다양성입니다. 직원 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해왔는데 '소울'은 그런 면에서 정점을 찍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문화적인 갈등이 심했던 만큼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 하는 점이죠. 이번 영화로 픽사의 노력이 관객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코로나19 여파로 미국에선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한국에선 극장에서 공개하게 됐다.
"미국에선 OTT를 통해 공개하게 돼 많은 동료가 안타깝게 생각은 했는데, 또 더 많은 이들을 관객으로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화를 만들 때는 극장 개봉을 기준으로 시청각적으로 굉장히 세세하게 기준을 맞추고 만들거든요.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고 방역 수칙을 지키셔서 요즘과 같은 때 영화로 많은 위로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