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대로만 볼 수 있다면.
아름다운 석양과 쓰레기산
작은 골목에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빨대을 고무줄에 끼워 로켓처럼 쏘아 올리며 뛰어 노는 아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 팽이를 지치며 노는 아이들. 아이들의 세상은 국경과 언어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어 세계평화를 이룰 만큼 경이롭게 똑같다. 가만히 미소를 지며 바라보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모두 쓰레기장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아이들이 쏘아 올리는 로켓은 누군가가 커피나 콜라를 마시고 버린 빨대이고 팽이는 전구소켓이다. 인형들은 버려진 것을 다 모아다 다시 세탁한 흰색이 잿빛으로 변한것들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난다. 즐겁게 떠들며 논다. 씁쓸하다.
쓰레기장은 많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 같다. 거친 숨을 내쉬며 하루 종일 그 광산에서 일한 광부들은 그 다음날을 버틸 무언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쓰레기를. 목재건축물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폐목들이 많이 나온다. 이것들도 어김없이 쓰레기장으로 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쓰레기장 옆 마을로 온다. 재탄생을 위하여. 페인트도 채벗겨지지 않고 못이 더덕더덕 박혀있는 나무들을 쌓아 흙으로 덮어 숯을 만드는 노천 가마들. 하루종일 나는 퀘퀘한 연기 때문에 숨도 쉴 수가 없다. 거리의 모두가 입과 코를 막고 다닌다, 그래도 숨은 쉬어야 할텐데. 비가 쏟아져도 그 연기들은 잦아들 줄 모른다. 마을 전체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하다. 그 속으로 아이들이 오오삼삼 모여 다닌다.
불길이 솟아오르는 노천가마 사이를 낡은 마대자루 하나씩 들고 맨발로 다니며 한두 걸음 걷다 허리를 숙이고 다시 두어 걸음 걷다 쪼그려 앉으며 나무에 박혀 있던 못이나 쇠조각들을 주으러 다닌다.
모아서 작은 포대가 가득 차면 고철상에 가서 판다. 못이 박혀 있는 나무들 사이로 여전히 맨발로 다니고 있다. 거침없이. 보는 나만 가슴 조인다. 파키스탄에서 보석을 주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강이 굽이지는 곳에 물살이 약해진 모래톱 위로 마대자루 하나씩 들고 반짝거리는 자넷같은 것들을 줍고 다니다가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쪼르르 달려와 보석이라 외치며 1달러를 외치던 아이들. 바다를 한참 건너온 이곳에서 다시 같은 막막감을 느낀다. 애써 외면하면 돌아선다. 난 쓰레기가 쓰레기로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기회의 평등이란 그 출발선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만족될 수 없다. 같은 출발선에서 같은 영양 상태로 같은 무게의 신발을 신고 같은 기본교육 위에 출발해야 한다. 출발선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의지가 결승점을 정하고 그 시간을 단축한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같은 출발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희망으로 만들어 주기에 인류는 계속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상산( 常山) 유별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