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조선시대에도 치맥이?
조선시대에도 치맥이 있었다? '산가요록'에 기록된 맥주와 포계, 그리고 보리로 빚은 전통 소주의 기원까지!
![]() 제주 가파도 청보리밭 길 속으로 (서귀포=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한국 첫 '탄소 제로 섬'이 될 제주도 서귀포시 가파도에서 13일 제5회 청보리 축제의 막이 오른 가운데 가파초등학교 학생들의 풍물팀이 환영 길놀이를 하고 있다. 2013.4.13. < <지방기사 참고> > khc@yna.co.kr |
보리는 기원전 약 7천년 이전부터 인류가 재배한 흔적이 있는 곡식이다.
영양 면에서 단백질 함량이 높아 추수한 쌀이 떨어졌을 때 보리를 대체 주식으로 썼다.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는 쌀에 비해, 보리는 겨울에 씨를 뿌려 여름에 수확할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쌀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곡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 때 보리농사는 이미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고려사'에는 후삼국시대, 궁예가 온갖 폭정으로 민심을 잃고 왕건에 의해 쫓겨난 뒤 도망치다가 보리밭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배가 고파서 보리 이삭을 먹던 중에 백성에게 붙잡혀 돌팔매질을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기록이다. 아무리 역사가 후대에 의해 쓰인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국왕이 보리 이삭을 주워 먹다 돌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 그런데도 고려사에 등장한 보리밭은 당시에도 이미 많은 이가 보리농사를 지어 먹었다는 사실을 증빙하는 중요한 사료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리농사를 장려했다. 특히, 흉년이 들었을 때 보리는 구황작물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뭇 대중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1950∼1960년대에 생긴 단어로 생각하지만, 실은 조선시대에도 있던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릿고개를 뜻하는 말이 한자로 자주 나온다. 가장 처음 보이는 기록은 세조실록 11권 4년(1458년) 2월 7일의 '춘기'(春饑)를 필두로, '보릿고개'라는 단어와 똑같은 의미의 '맥령'(麥嶺)이라는 말은 정조 때만 세 번 나온다.
보리는 쌀을 대체해 주식으로도 쓰였고 또 술로도 빚어 먹었다. 외국의 경우 맥주, 위스키, 보드카, 진 등도 보리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와 소주, 맥주도 보리로 빚어 마셨다. 땅이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보리를 주로 재배하는 지역이나 쌀농사가 흉년이 들어버린 시기에 어쩔 수 없이 보리로 술을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 용인농경문화전시관에 보관중인 '산가요록'(왼쪽), 맥주 빚는 방법(오른쪽). 사진 출처 : 용인농촌테마파크 농경문화전시관 |
1450년경 쓰인 조선시대의 조리서 '산가요록'에 '맥주'(麥酒)라는 이름의 술을 빚는 법이 적혀 있다.
이 맥주는 현재 우리가 마시는 맥주와는 다르게 걸쭉했고 보리막걸리와 흡사하다. 도수가 15.5도다 보니 맛도 향도 도수도 서양의 맥주보다 훨씬 강하다.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에 '흉년임에도 맥주를 만들어 마시니 술 제조를 금한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 병영 소주, 진안블랙, 번트 볶은보리소주, 모리, 양조학당 애. 사진 출처 : 제조사 홈페이지 |
조선시대 보리소주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서남부의 육군지휘부였던 전라 병영성의 병마절도사가 당시에 보리로 소주를 내려 마셨다고 한다.
이 술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병영 소주다. 다만 2023년에 병영 소주를 빚는 식품명인 61호 김견식 명인이 돌아가신 후 현재 생산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 린21, 사락, 황금보리증류주, 가파도 청보리, 톡한잔소주, 백제보리소주. 사진 출처 : 제조사 홈페이지 |
또 하나의 기록은 일본 보리소주의 조선 기원설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의 조정은 대마도에서 조공을 받고 답례로 소주를 하사했다.
당시 소주는 정말 귀한 술이었다. 그렇게 지속해 대마도는 소주를 하사받았지만, 전체 땅의 90%가 산악지대라 쌀, 보리농사가 불가능해서 대마도에서는 소주가 발달할 수가 없었다.
대신 대마도에서 50㎞ 정도 떨어진 이키섬에서 발달하게 된다. 이키섬은 제주도 10분의 크기로 조선통신사가 일본 본토에 도착하기 전에 들르던 곳이고 보리를 많이 재배했다.
여기서 비롯된 보리소주가 일본 본토에 전해져 일본에서는 이키섬이 일본 보리소주의 발원지로 보고 있다.
일본 국세청도 이키섬의 보리소주가 한반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인정했다. 일본의 공식 사케 소믈리에 홈페이지에서도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키섬의 보리소주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현대에 와서 많은 종류의 보리로 만든 막걸리와 소주가 출시되고 있다.
보리소주는 병영소주(병영양조장), 진안블랙(태평주가), 번트 볶은보리소주(브리즈앤스트림), 모리(강산명주), 양조학당 애(양조학당), 린21, 사락(선양), 황금보리 증류주(황금보리), 가파도 청보리(왕지케양조장), 톡한잔소주(대마주조), 백제보리소주(내변산양조장) 등이 있다.
그리고 보리 막걸리는 깁모어막걸리(경주식회사), 보리맥걸리(군산양조공사), 가파도 청보리 막걸리(조은술세종), 생보리탁(경주전통술도가), 보리향 탁주, 보리동동 탁주(대마주조) 등이 있다.
![]() 깁모어막걸리, 보리맥걸리, 가파도 청보리 막걸리, 생보리탁, 보리향 탁주, 보리동동탁주. 사진 출처 : 제조사 홈페이지 |
'산가요록'에 보면 포계라는 요리가 있는데 현대의 간장치킨과 유사하지만, 그 조리법은 지금의 프라이드치킨과는 달리 참기름, 식초, 간장이 사용되고 반죽 없이 기름에 볶아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맥주와 포계로 치맥 한잔하면 어떤 기분일까? 어찌 됐건 우리 조상은 그 시절부터 닭튀김에 맥주를 곁들어 먹은 '치맥 원조'임은 틀림없다.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