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었습니다"…열흘 굶다 빵 훔친 장발장이 남긴 말
30대 마트 절도범, 배고픔에 먹을 것 훔쳤다가 붙잡혀
경찰, 병원 입원 시킨 뒤 주거지·구직활동 지원 계획
생활고에 마트 절도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자료사진 [광주 지방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그가 좁은 고시텔을 뛰쳐나간 건 꼬박 열흘을 굶은 뒤였다.
소매가 늘어나고,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입은 A(35)씨는 하릴없이 집에 누워 지냈다.
멀뚱멀뚱 천장만 보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누워서 버텼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고, 한 몸 누인 방안 바닥을 손바닥으로 휘휘 저어도 걸리는 건 언제 버린 지도 모를 쓰레기뿐이었다.
월세는 4개월이나 밀려있었고, 카드 대출로 빌려 쓴 돈도 이제 수천만 원의 빚으로 남아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그를 일어날 수 없게 짓눌렀다.
어느 정도 누워있었는지도 아득해질 무렵인 지난 18일 오전 2시 20분께 그는 광주 북구의 용봉동의 고시텔에서 밖으로 나왔다.
수일을 굶은 배고픔에 양심과 죄책감을 가리었고, 무거운 발길은 음식이 쌓인 집 옆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마트 앞에 서서 소화기를 힘껏 출입문을 향해 던졌다.
'와장창….'
깨진 출입문 틈으로 마트에 들어간 A씨는 진열장의 물건들을 허겁지겁 담았다.
손에 집히는 대로 담았지만, 그가 훔쳐 나온 물건들은 빵 20여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 모두 먹을 것뿐이었다.
고시텔에 도착하자 그는 빵을 입에 털었고, 컵라면에 물을 받아 허기를 달랬다.
배고픔이 가시고 이제 살만하다는 생각이 스칠 무렵, 고시텔 방문을 누군가 세차게 두드렸다.
"형사입니다. 잠깐 나와보세요!"
경찰서로 붙잡혀온 그는 자신이 훔친 빵과 라면을 옆에 놓고 조사를 받았다.
전과 한 줄 없던 그는 경찰서에 앉아있는 것도 생경했지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형사들의 질문에 별달리 할 말도 없었다.
"배고파서 그랬습니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컵라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는 지난해 말부터 사정이 어려워졌다.
산업용 기계의 유효기간을 체크하는 일을 해오다 지난해 말 퇴사했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쳐 장애 6급 판정을 받은 A씨는 몸도 좋지 않은 등 더는 일할 수 없어 회사를 나왔다.
부모는 오래전 여의었고, 유일한 혈육인 동생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도움을 청할 이가 하나 없었다.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지자 카드 대출로 버텼고, 대출을 더는 받을 수 없게 되자, 가만히 고시텔 안에서 누워서만 지냈다.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이라도 해보려 해도 고시텔에 살아서는 주소지를 증명할 길이 없어 자격대상이 되지 않았다.
직업을 다시 구하려 해도 몸 아프고 삶의 의지마저 잃은 그에게 허락된 돈벌이는 없었다.
"몸뚱아리 믿고 뭐든 해보려 해야지, 뭘 했느냐"는 형사의 되물음에 그는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고 답하고 입을 굳게 닫았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트 사장은 그의 사연을 듣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선처를 바랐다.
경찰은 그가 상담을 거쳐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판단,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병원에 입원 시켜 정신적 회복을 우선할 수 있게 했다.
그가 병원에서 나오면 광주 북부경찰서는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주거지 마련과 구직활동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병원 침대에 누운 그는 다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는 일은 오로지 그의 숙제로 남았다.
광주 북부경찰서 로고 [연합뉴스TV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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