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 거리서 용변보다 맞아죽는데…印총리는 '화장실 보급賞'
집에 화장실 없는 불가촉천민 아이 2명, 이웃 폭력에 목숨잃어
2018년 인도 비하르州의 한 가정에 기업 지원으로 설치된 화장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달 25일(현지시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州)의 바브케디의 노상에서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들의 몸은 각목에 맞은 상처로 참혹했다.
시신이 발견된 지 몇시간 만에 용의자인 남성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 아동들은 사촌 사이인 12세 로슈니와 10세 아비나시로 밝혀졌다.
불가촉천민 '달리트' 카스트에 속하는 두 아이는 그날 이른 아침 용변을 보러 나갔다가 용의자들에게 맞아 죽은 것으로 경찰수사에서 파악됐다고 영국 국영 BBC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불가촉천민은 오랜 인습 탓에 현대 인도에서도 여전히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보호법령이 있는데도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다.
아비나시의 아버지는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해왔고, 집에는 화장실을 설치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날도 용변을 보러 밖에 나갔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로슈니와 아비나시처럼 화장실이 없어 길에서 용변을 보는 인구가 여전히 수백만명에 이른다.
어둠 속에서 노상 배변을 하는 저소득층 여성과 아이는 각종 폭력의 위험에 시달린다.
2015년 유엔총회에서 만난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게이츠 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집에 화장실이 없어 맞아 죽거나 다치는 피해가 속출하는 현실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최근 화장실 보급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명 자선 재단의 수상자로 선정돼 논란이 일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재단)은, '클린 인디아 미션'을 추진하며 화장실 보급에 세운 공을 인정해 모디 총리에게 26일 '글로벌 게이트키퍼상(賞)'을 수여했다. 아이들이 노상에서 용변을 보다가 맞아죽은 다음날이었다.
2014년 시작한 클린 인디아 미션은 올해 10월 2일까지 '노상 배변 제로(zero)'를 목표로 전국에 화장실을 보급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인도 내부에서는 화장실 보급 프로그램의 실적이 과장되거나 효과가 정부의 선전만큼 크지 않다며 시상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화장실이 설치된 경우에도 물 부족, 관리 부실, 관행 탓으로 노상 배변이 만연한 실정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용변을 보러 간 길에 숨진 로슈니와 아비나시가 사는 바브케디에도 정부가 부착한 '노상 배변 제로' 인증패가 붙어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비나시의 아버지 마노즈는 화장실 설치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