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 쓰고 프로와 1대1 6연전…"농구 본연의 즐거움 알려야"
'크록스맨' 김현중 코치 "한국 농구 위기…승리보다도 팬이 중요"
"감독·고참·구단 나서야…동작 원리 모르는 연습은 비효율적"
'크록스맨'을 자처하는 김현중 코치 [촬영 이의진] |
"와, 큰일났네 이거…."
지난 6월 16일 서울 강남구의 퀀텀바스켓볼 센터를 찾은 KBL 대표 '테크니션' 변준형(인삼공사)은 털썩 의자에 앉으며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선수 생활을 접은 지 5년이 넘은 김현중(41) 퀀텀바스켓볼 코치와 1대1 대결에 나섰다가 패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7점 내기 3경기에서 2경기를 따낸 김 코치도 코트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날 김 코치는 특이하게도 머리에 고무로 된 빨간색 가면을 쓰고 경기에 임해 눈길을 끌었다.
특수 제작 가면을 뒤집어쓴 김 코치는 자신을 '크록스맨'이라 칭했다. 즐겨 신던 캐주얼 신발 브랜드 크록스에서 착안해 '부캐'(부캐릭터·제2의 자아)를 창안한 것이다.
지난 5일 퀀텀바스켓볼 센터에서 만난 김 코치는 이 고무 가면을 쓴 채 "오늘은 크록스맨으로 왔다. 크록스맨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달라"하고 웃었다.
김 코치는 "진 선수들은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며 "곧 KBL이 개막하는 데 다들 이를 악물고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덕담부터 건넸다.
김 코치는 올여름 변준형을 비롯해 이재도(LG), 오재현(SK), 박지훈(인삼공사), 서명진(현대모비스), 두경민(DB)까지 총 6명의 선수를 센터로 불러 1대1 대결을 펼쳤다.
전 농구선수 이현민(왼쪽)과 '크록스맨' 김현중 코치(오른쪽)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각 팀을 대표하는 가드들과 6차례 대결 중 변준형, 박지훈, 서명진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6연전 첫 상대였던 이재도를 비롯해 오재현, 두경민은 당해내지 못했다.
김 코치는 "선수 시절 한때 내 '방졸'(숙소 막내)이었던 이재도는 꼭 잡겠다는 게 목표였는데 예전의 재도가 아니었다"며 "처음 붙어본 순간 이건 못 이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되돌아봤다.
유튜브에 올라온 6연전 영상은 조회 수 합계가 약 55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본 영상에서 편집한 '쇼츠'(60초 이내의 짧은 영상 서비스) 조회 수까지 합치면 무려 380만회에 육박한다.
스스로 '유튜버'라 칭하며 사진 촬영을 위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던 그는 왜 이런 콘텐츠를 기획했는지 묻자 한국 농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농구인으로 돌아왔다.
김 코치는 '한국 농구 위기론'부터 꺼냈다.
그는 "우리나라 농구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팬분들에게 1대1이라는 본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프로농구 존재는 한국 농구에는 축복이다. 그게 있어서 선수를 꿈꾸는 유소년 선수들도 있는데, 그런 프로농구의 존재 이유가 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목의 위기는 곧 그 종목이 재미가 없다는 뜻"이라며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고민에 대한 대답이 바로 유튜브를 통한 '뉴미디어' 농구 콘텐츠였다.
프로농구 선수와 1대1 6연전을 펼친 '크록스맨' 김현중 코치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이에 "지금은 2022년이고, 선수가 미디어의 일부가 됐다"고 했던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의 관련 발언을 알려주자 김 코치는 "정말로 공감되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커 감독은 지난 6월 2021-2022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패한 후 드레이먼드 그린의 팟캐스트 활동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팟캐스트 '드레이먼드 그린쇼'를 운영하며 자체 해설, 경기 평, 소감 등을 팬들과 공유해온 그린에게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자, 커 감독이 나서 이를 일축한 것이다.
김 코치는 "우리나라 프로농구도 구단, 프런트, 선수가 모두 팬에 집중해야 한다. 승리보다도 팬에게 모든 걸 쏟아야 한다"며 "감독, 고참 선수들이 팬과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패배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바로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화를 위한 구단의 역할도 역설했다.
김 코치는 "이기든, 지든 선수단에 구단이 강제로라도 팬과 소통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럴 권한이 있는 주체는 구단뿐"이라며 "구단이 선수 개개인에게 그린처럼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을 하도록 장려해 소통 창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프로 생활을 할 때 이겨도 팬과 소통하는 일 자체를 창피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팬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출신이자 농구 기술 코치인 그가 이런 콘텐츠를 만든 이유가 물론 팬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프로농구 선수와 1대1 6연전을 펼친 '크록스맨' 김현중 코치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김 코치는 선수와 코칭스태프에게도 하고픈 말이 있었다.
그는 "국내 선수들이 간결한 농구는 잘하는데 기술은 떨어진다"며 "1대1에서 화려한 기술을 많이 선보이려고 했다. 코치분들이 이를 보고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속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구 인기를 살리려면 실력도 더 늘어야 한다"며 "나도 이런 기술을 은퇴 후인 30대 중반부터 연습하기 시작했고, 선수 시절보다 최근 몇 년간 농구가 가장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 때 나름 새벽 운동도 많이 하고 연습을 많이 한 쪽에 속했다"며 "아무 생각 없이 슛을 던졌던 그런 시간이 다 쓸데없던 것 같아 억울해 울고 싶었다"고 되돌아봤다.
김 코치에게 기술과 동작의 원리를 모른 채 진행하는 개인 연습은 '비효율의 표상'이다.
그는 "개인 훈련을 할 시간은 야간뿐인데,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슛만 쏘거나 TV에서 본 드리블을 몇 번 해보다가 들어갔다"며 연신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2004년 동국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성한 그는 창원 LG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로 임대 이적한 2008-2009시즌 경기당 10.5점, 5.4어시스트를 올리며 맹활약했다.
그러나 LG로 복귀한 다음 시즌부터는 이보다 떨어지는 성적을 거두다가 2016-2017시즌 은퇴를 선언했다.
2008년 12월 5일 창원 LG의 경기에서 막판 역전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김현중 코치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
이어 "그땐 실수가 두려워 겁쟁이처럼 벌벌 떨었다"고 웃었다.
아울러 기술을 연마하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최종적으로 농구의 매력을 즐기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김 코치는 "개별 동작의 박자, 움직임, 수비의 반응 등을 따져보면서 농구에 매진하면 경기에 나서는 순간이 정말 재미있게 된다"며 "많은 선수가 경기 출전을 겁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연차가 쌓이면서 그게 더 심해졌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농구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많다"며 "프로농구 1대1 최강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나. 김선형 선수를 한번 불러보고 싶다"고 앞으로 계획도 전했다.
그러면서 "나와 붙어서 진 선수들도 만회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직 연락이 온 선수는 없지만 다들 분명 피가 들끓고 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pual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