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때 사람살린 '영웅 구조견' 독살에 이탈리아 시끌
"사람구한 개를 사람이 죽여"…동물학대 처벌강화 목소리
로마서 개 17% 독살…"이웃집개 못참는 정서탓 독미끼 기승"
주인 파비아노 에토레와 함께 있는 카오스의 생전 모습 |
이탈리아 강진 당시 많은 사람을 구해 유명해진 구조견이 독살로 의심되는 죽임을 당하면서 동물권익운동가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들썩이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이 30일(현지시간) 전했다.
독일산 셰퍼드 종인 카오스는 지난 2016년 8월 규모 6.2의 지진이 이탈리아 중부 아마트리체 산간 마을을 강타, 2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잔해에 깔린 생존자들을 찾아내 '영웅 구조견'으로 이탈리아에서 널리 알려졌다.
두 달 뒤 발생한 근 10년 내 가장 강력했던 노르시아 지진 당시에도 구조 활동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실종된 남성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카오스 주인 파비아노 에토레는 지난 28일 라퀼라시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카오스의 사체를 발견했다. 카오스는 2015년에 태어났다. 에토레는 카오스가 독살됐다고 페이스북에서 주장했다.
에토레는 "그런 끔찍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할 말이 없다"면서 "짖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카오스는 최소한 새벽 2시까지는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트리체 지진참사 현장에서 맹활약한 카오스 |
동물권익운동가들은 "위험한 범죄자"라며 맹비난했다.
동물권익보호 단체 '아니말리스티 이탈리아니'의 대변인 리날도 시돌리는 "범인들은 구조요원들과 함께 네 발로 땅을 파 참사 생존자들을 찾은 영웅을 죽였다"면서 "카오스는 사람을 구했지만, 이젠 같은 사람들이 그를 독살했다"고 말했다.
시돌리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이들을 더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도록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정에 참여 중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 일라리아 폰타나도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며, 동물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 보호 운동에 열성적인 우파 정치인 미켈라 비토리아 브람빌라 의원은 AP통신에 "카오스의 죽음을 계기로 올 초 내가 발의한 동물에 대한 잔혹행위 처벌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길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줄리아 그릴로 보건장관도 이번 사건에 애도를 표하면서, 법무장관 및 환경장관과 함께 동물 독살의 배후에 있는 '비정한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연구진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로마의 개 870마리에 대한 진단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독살이 사망 원인 중 두 번째였다. 전체 개들 중 17% 이상이 유독성 물질을 먹고 숨진 것이다.
연구진은 도시 환경에서는 이웃집의 개에 대한 사회적 관용 수준이 낮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고의로 독이 든 미끼를 놓아두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경찰은 이번 독살 의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