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공범' 재판부서 물러난 판사, 과거판결 어땠나
팩트체크
오덕식 부장 장자연·구하라 사건 판결에 비판쇄도…'증거재판주의' 시각도
아동음란물 선처 지적 불가피하나 2012~18년 同죄목 실형 사는 비율 29% 미만
로스쿨 강의서 '여성비하' 발언했음에도 징계없이 성범죄 재판부에 배정
민중당, 'n번방 사건 맡은 오덕식 판사 교체하라'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중당 당원들이 3월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 출입구 앞에서 오덕식 부장판사의 교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아동 성착취 촬영물을 만들어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공범 이모(16) 군의 1심 재판부로 배정됐다 교체된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과거 성범죄 사건에서 주로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다.
오 부장판사가 과거 한 로스쿨에서 실무 강의를 하면서 여성 변호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애초 법원의 사건 배당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여성비하 발언을 하고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 편에 선 판사가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성범죄 사건을 맡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거나 "오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맡긴 건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이라는 등의 반응이 있었다.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된 끝에 결국 오 부장판사는 조주빈 공범 재판을 맡지 않게 됐다.
'장자연 사건' 발표 마친 과거사위…남은 과제는? (CG) [연합뉴스TV 제공] |
그렇다면 실제로 오 부장판사의 판결은 그가 성범죄 재판을 맡는 것이 부적절할 정도로 현격한 문제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의 판결 역시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관행의 일부였을까?
오 부장판사의 주요 성범죄 사건 판결 내용을 국민 정서가 납득하지 못하는 점은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입증됐다. 성범죄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로서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개별 사건들을 둘러싼 법률관계, 다른 판사들의 유사 사건 판결 등을 놓고 따져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우선 국민적 관심사였던 두 여성 연예인 관련 사건 판결을 살펴보자.
오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고(故) 장자연씨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에 대해 "강한 의심은 들지만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9월에는 고 구하라 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전 남자친구 최씨에게 "촬영이 구씨의 의사에 반한 것은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의 다른 혐의인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만 유죄로 인정했다.
여론의 관심과 공분이 집중된 사건에서 피의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국민정서를 무시한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오 부장판사에게 쏟아졌다. 파렴치한 성범죄자를 적극적으로 단죄하는 판결을 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선 구하라씨 남자친구 사건과 관련해선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한 경우에만 '몰카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구씨가 촬영에 대해 직접적인 동의표시를 하지 않은 이상 간접적인 정황들을 이유로 들어 무죄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 부장판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유죄 근거가 될 법리를 살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오 부장판사의 판결이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비춰볼 때 납득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다.
일례로 장자연씨 사건의 경우 정황상 유죄인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더라도 이를 입증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피의자에게 유리한 판단, 즉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판사의 적법한 재량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판사는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무죄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형사법 원칙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며 "유죄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입증이 없다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아동 음란물 범죄자 '솜방망이' 처벌 논란 (CG) [연합뉴스TV 제공] |
그리고 오 부장판사가 과거 춘천지법 재직시절 판결을 내린 두 건의 아동음란물 사건도 논란의 대상이다. 양형기준을 어겨가며 성범죄자를 선처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오 부장판사는 2013년 4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파일 1천100여개를 인터넷 'P2P(peer to peer)' 사이트에 게시·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40대 남성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최대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범죄였지만 오 부장판사는 "다시는 음란물을 소지하거나 유포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며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로 판결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에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5천100여개를 외장 하드 22개에 나눠 보관한 30대 의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최대 징역 1년까지 선고할 수 있었는데도 "아동 음란물과 성인 음란물을 구분해 보관하고 아동 음란물은 공유 설정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며 벌금형을 내렸다.
오 부장판사의 이런 판결은 국민 정서와 크게 동떨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 아동음란물죄를 규정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11조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오 부장판사가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 '양형기준 위반'이라고 규정할 근거는 현재로선 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판사가 내린 아동음란물죄 판결과 비교할때 오 부장판사가 내린 형벌과 형량이 크게 두드러졌다고 보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법원의 사법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내려진 아동음란물 1심 판결 535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322건(60.2%)이었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 중에서도 168건이 집행유예가 선고돼 징역형 실형을 사는 비율은 전체 사건의 28.8%에 불과했다. 대신 벌금형이 132건(24.7%)을 차지했다.
징역형의 형량별 비율은 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양형위 100차 회의자료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형량이 1년 이상인 경우는 6.4%에 그쳤고, 83.9%가 6개월 이하였다.
법원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 부장판사가 내린 모든 성범죄 사건 판결을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알려진 판결 중에서 일반적인 통계수치를 크게 벗어난 판결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결국 '솜방망이 처벌'은 오 부장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법부 전반의 문제였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성범죄 양형 고쳐야" 구하라 추모 속 청원 급증 (CG) [연합뉴스TV 제공] |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는 오 부장판사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성범죄 사건의 재판을 맡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오 부장판사는 2013년 하반기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실무 강사로 파견된 적이 있는데, 그해 11월 강의 도중 '여성 비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사실이 있다. 당시 재학생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오 부장판사는 "(여성 변호사는) 부모가 권력자이거나, 남자보다 일을 두 배로 잘하거나, 얼굴이 예뻐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로스쿨 출신인 한 변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 부장판사는 학생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다음 수업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법원이 오 부장판사를 다른 판사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그후 약 5년여 경과한 2019년 2월 오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의 성 범죄 사건 전담 재판부에 배정됐다.
당시 오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내 총 5개의 성범죄 사건 전담 단독 재판부 중 한 곳에 배치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성범죄 사건 중 단독사건(판사 한 명이 심리하는 단독재판부가 맡는 사건)의 경우 무작위 추첨을 거쳐 5건 중 1건의 비율로 오 부장판사의 판단을 받게 돼 있었다.
예비법학도를 상대로 한 강의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던 오 부장판사를 성범죄 전담 판사로 배치한 법원의 결정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통상 특정 지방법원 내 판사 배정은 법원 사무분담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오 부장판사에게 징계처분을 내리지 않은 점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법관징계법은 '법관이 그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징계하도록 한다.
연합뉴스는 당사자인 오 부장판사의 해명을 직접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공보담당자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라는 입장만 전달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관보를 확인한 결과 오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처분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며 "징계에 회부됐는지, 또는 회부됐더라도 어떠한 이유로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는지는 법관징계법상 비공개 사항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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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