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 개척하는 박병호…야구는 역시 '멘털 게임'일까
[천병혁의 야구세상]
홈런 선두를 질주 중인 박병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올해 프로야구에서 최대 화제 중 하나는 박병호(36·kt wiz)의 부활이다.
지난 2년간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던 박병호가 kt wiz로 유니폼을 갈아입자 KBO리그 최강의 홈런타자로서 위용을 되찾은 것이다.
박병호는 11일까지 타율 0.267, 27홈런, 6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31을 기록하며 kt 타선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홈런은 부문 2위인 김현수(18홈런·LG 트윈스)를 9개 차이로 따돌리고 독주 중이다.
미국 진출 전인 2015년 이후 7년 만에 50홈런 달성도 기대되는 시즌이다.
그럼 무엇이 박병호의 시계를 되돌렸을까.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박병호를 반기는 이강철 kt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
kt 관계자에 따르면 박병호는 스프링캠프 때 타격 자세를 미세하게 조정했을 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박병호의 표정은 지난해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
야구를 잘하니 얼굴이 펴진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편해져서 야구가 잘되는 것일까.
박병호는 입단 18년 차의 베테랑이지만 커다란 덩치에 비해 순한 성격이라는 게 주변 평이다.
후배나 남들에게 싫은 소리조차 잘 못 한다.
생각이 많아 야구가 안 되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런데 kt로 이적 후 이강철 감독이 직접 전한 조언이 그를 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박병호는 시즌 초반 인터뷰에서 "이강철 감독님이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시원하게 배트를 돌리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편해졌다"라며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내가) '에이징 커브'에 돌입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힘을 줬다"고 밝혔었다.
2012년 일구회 시상식에서 김시진 감독과 인사하는 박병호와 서건창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병호의 극적인 변신은 10여 년 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는 2005년 프로 데뷔 당시부터 '거포'의 자질을 인정받았지만, 첫 소속팀인 LG 트윈스에서는 미완의 대기에 불과했다.
박병호는 입단 6년 차인 2011시즌까지도 출전 기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해 7월 31일 넥센 히어로즈(키움의 전신)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LG 유니폼을 입고 박병호는 전반기가 지나도록 고작 15경기에서 16타수 2안타, 타율 0.125, 1홈런, 9삼진에 그쳤다.
사실상 1군 선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넥센으로 옮긴 뒤 극적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
당시 김시진 넥센 감독은 박병호를 영입하자마자 '붙박이 4번 타자'라고 공언했다.
박병호에게는 "삼진에 개의치 말고 마음껏 스윙하라"고 주문했었다.
처음 감독의 신임을 얻은 박병호는 후반기 51경기에서 타율 0.265, 12홈런, 28타점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넥센 시절 박병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자신감이 생긴 박병호는 2012년 홈런 31개를 터뜨리며 생애 첫 홈런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37홈런, 2014년 52홈런, 2015년 53홈런으로 질주한 박병호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홈런왕 4연패를 달성했다.
이승엽에 버금가는 홈런타자로 성장한 박병호는 2016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2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온 박병호의 장타력은 여전했다.
복귀 첫해인 2018년에 3할 타율에 홈런 43개를 날렸고, 2019년에도 33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난 2년은 시즌 홈런이 20개로 줄어들면서 타율도 2할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키움 벤치의 신뢰마저 사라지면서 타석을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2년간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했다.
대다수 야구인조차 박병호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했지만 키움은 붙잡지 않았다.
하지만 키움을 떠난 것이 극적인 부활의 계기가 됐다.
kt의 호출을 받고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은 박병호는 이강철 감독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두 번째 전성기를 개척하고 있다.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서 환영받는 박병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
흔히 야구와 골프는 '멘털 게임(Mental Game)'이라고 한다.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에 반드시 인터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벌이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고 마음 약한 선수들을 무너지게 만든다.
무너진 박병호의 멘털을 되살린 감독은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투수 출신이다.
같은 타자 출신보다는 투수 출신 지도자들이 '삼진은 많지만, 홈런을 펑펑 치는' 박병호의 파괴력을 훨씬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