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아니었네' 남의 땅에 도로 내고 건물 지은 서울시
태평로·정동 일대 도시건축전시관과 인접 도로, 서울지방우정청 소유 확정판결
변상금 6억원 물게 된 서울시…"부지 매입 계획"
서울 도시건축전시관 [촬영 김지헌] |
서울 태평로를 오가면 덕수궁과 서울시의회 사이에 첨성대 모양 구조물을 옥상에 설치한 단층 건물이 눈에 띈다.
서울시가 최근 만든 '도시건축전시관'(이하 전시관)이다. 성공회 성당 등 주변 경관을 살린다는 취지로 지상이 아닌 지하를 파고들어 지어놓고는 첨성대 구조물로 경치를 가려 생뚱맞다는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건물 부지는 애초에 서울시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는 게 3년여에 걸친 소송 끝에 법적으로 확정됐다.
21일 서울시와 법조계에 따르면 시는 '땅 주인' 서울지방우정청이 시에 부과한 무단 점유·사용 변상금 6억4천만원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지로 2018년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까지 간 끝에 올 4월 최종 패소했다.
1952년 서울시가 도로에 포함…"체신부가 용인"
우정청은 전시관이 점유한 중구 태평로1가 60-20 도로 578.5㎡와 중구 정동 3-9 도로 147.6㎡가 우편사업특별회계에 속한 국유지인데 서울시가 허가 없이 점유·사용했다며 2017년 12월 변상금을 부과했다.
문제의 땅은 토지 상부가 도로로 쓰이고 있고 지하는 전시관이 지어진 곳이다.
서울시도 할 말은 있었다. 이 부지 소유·관리권을 둘러싼 갈등의 발단은 6.25 전쟁 와중이던 19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는 그해 3월 서울도시계획 가로변경 결정 고시를 냈다. 태평로를 세종대로 폭에 맞춰 넓히는 공사 대상에 해당 부지를 포함했다.
대한항공 사유지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가 공원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선 최근의 일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후 시는 1968년과 1979년 두 차례 확장 공사를 시행했다.
1979년 공사 당시 서울시가 체신부 장관에게 이 땅 지상에 있던 건물 일부 철거를 요청하자 체신부 장관은 '철거를 서울시가 대신해주고 그 비용은 건물보상액으로 정산해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뤄 체신부가 도로 개설과 건물 철거까지 용인했고 이에 따라 토지에 대한 배타적 사용·수익권을 포기했다는 것이 서울시 주장이었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서울시 승소 판결을 하고 변상금 부과 처분을 취소했다.
뒤집힌 2심…'서울시에 토지 사용 권한 준 적 없어'
지난해 12월 서울고법 2심 선고 재판에서는 판이 엎어졌다. 2심은 서울지방우정청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서울시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체신청장이 1979년 이후 2008년까지 계속해서 서울시에 이 토지에 대한 보상을 요청한 점이 인정됐다.
서울시가 이 토지 관리권을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기는 했지만, 그 절차가 실제로 이행됐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는 점도 서울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2심은 이를 토대로 이 부지에 도로가 처음 개설된 196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지방우정청이 서울시에 토지 무상 사용 권한을 줬다거나 자신의 배타적 사용 권한을 포기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서울시 상고를 기각했다.
서울 도시건축전시관 [촬영 김지헌] |
서울시, 변상금 물고 부지는 매입 추진
패소가 확정된 서울시는 우선 변상금 납부를 위한 예산 확보에 나섰다.
시는 "소송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별도로 확보한 예산이 없었다"며 "예비비 사용 요건인 '불가측성'과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안이라고 보고 예비비를 배정받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변상금을 납부해 급한 불은 끄더라도 일이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남의 땅'에 서울시가 지은 건물과 도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는 유상 대여와 부지 매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매입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 관계자는 "당장은 대여료가 더 적게 들겠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매입보다 많은 돈이 든다"며 "서울지방우정청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계획대로 부지를 매입하면 이 땅은 1968년 이후 50여년 만에 사용과 권리상의 괴리가 해소된다.
도시건축전시관 자리는…조선총독부 체신국 터
도시건축전시관 자리는 일제식민지 시기부터 체신국 등 우정(郵政) 관련 건물이 들어선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고종 후궁이자 영친왕 생모인 헌황귀비 사당 덕안궁이 있었다.
일제는 1937년 이 자리에 4층짜리 총독부 체신국을 지었다.
해당 건물은 독립 이후 체신부가 환금관리사무소로 쓰다가 1979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국세청이 남대문 별관으로 썼다. 서울시가 도로 확장을 위해 건물 일부를 철거한 것도 이 시기다.
서울시는 2015년 청와대 사랑채의 시 소유 땅과 이 건물 소유권을 교환해 넘겨받은 뒤 '경관 회복' 등을 이유로 건물을 철거하고 도시건축전시관을 지었다.
시는 국세청과 건물을 교환한 이후이자 변상금이 부과되기 이전인 2016년 6월 서울지방우정청에 '무상 사용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다. 이때도 이 땅 소유권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은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관은 지난해 4월 18일 개장했다. 당시 서울시는 "일제가 지은 체신국 터가 1937년 이후 82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고 홍보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