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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팔리는 '바람의나라'…IP의 힘은 이길 수 없다

[이효석의 게임인]

초고사양 게임도 이기는 IP의 저력…기존 IP 모바일 이식 유행에 우려도

스마일게이트 드라마 제작, 라이엇게임즈 LoL IP 확장 전략에 업계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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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넥슨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199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스물일곱 살이던 김정주(현 NXC 대표)와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 "온라인 게임을 만들겠다"며 밤낮없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는 사실은 이제 유명한 얘기다.


그들이 만들던 첫 다중접속임무수행게임(MMORPG) 이름은 원래 '둠바스'였다.


그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동기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생이었던 그들에게 게임을 만들 기술은 있었으나, 살아 숨 쉬는 '세계관'을 창작할 창의력은 부족했다.


이때 송재경이 떠올린 재료가 있었다. 당시 순정만화 잡지에 연재되던, 자신이 즐겨 보던 만화였다.


바로 '바람의 나라'다.


김정주는 송재경과 함께 '바람의 나라'의 김진 작가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게임을 만들려고 합니다."(김재훈·신기주 저 『플레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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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바람의나라: 연' [넥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순정만화 '바람의 나라'는 이렇게 1996년 PC 온라인 게임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국내 최장수 온라인 게임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올해는 모바일로 이식된 '바람의 나라: 연'도 게임 매출 순위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25년 된 스토리에 저사양 그래픽인데 초고사양 게임 틈바구니에서 성공하겠느냐'는 시장의 회의론을 보란 듯이 깨부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이 정도의 성공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혀를 내두른다.


그런 이들이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역시 성공한 IP(지적재산)의 힘이 무섭다. 어떤 최첨단 기술과 마케팅으로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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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게임사가 대부분 입주한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바야흐로 IP의 시대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 기업이 "'어벤져스'를 가진 마블처럼 IP 홀더가 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게임사들이 쓰는 대표적인 방법은 기존에 성공한 PC게임을 모바일게임으로 내놓는 것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 매출 순위 10위권을 보면 '리니지M', '리니지2M', '바람의 나라: 연', '라그나로크 오리진', '뮤 아크엔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등 과거 PC 게임을 모바일에 이식한 게임이 즐비하다.


그러나 과거 PC 게임이 모바일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해당 IP의 힘 덕분도 있지만, 시대적 요인 덕에 잠깐 부는 훈풍이라는 시각도 있다.


PC 온라인 게임 초창기였던 1990년대 후반∼2천년대 초반에 10∼20대였던 1970∼1980년대생이 이제 30∼40대가 되면서 소비력이 절정에 달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PC게임 IP를 모바일에 이식했다가 모바일게임이 실패하면 IP 자체가 타격을 받는다는 우려도 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성공했던 IP를 썩히기보다는 모바일 시장에 선보이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자칫 완성도가 떨어지면 IP 자체의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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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IP를 기반으로 한 중국 드라마 '천월화선' [스마일게이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게임업계에서는 다양한 분야로 세계관 자체를 넓히는 것이 당장의 매출로 돌아오지는 않아도 바람직한 IP 확장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마일게이트는 자사 주력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천월화선'의 성공으로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천월화선'은 한국 e스포츠 IP 기반 최초의 드라마다. 천월화선은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서비스명이기도 하다.


스마일게이트와 중국 제작사는 이 작품에 4년여 동안 제작비 2억7천만 위안(약 464억원)을 투입했다.


두 남자 주인공이 서로 다른 시대에서 크로스파이어의 프로게이머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인기 배우와 신선한 소재 등에 힘입어 중국 드라마 순위 3위에 오르는 등 흥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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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엇게임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의 IP 확장 전략을 주목하는 업계 관계자도 많다.


라이엇게임즈는 올해 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모바일게임을 2개 내놓았다. 자동전투 전략 게임 '전략적 팀 전투 모바일'(TFT)과 카드 게임 '레전드 오브 룬테라'(LoR)다.


10∼20대는 최고 인기 PC게임인 롤을 플레이하지 못할 때 지하철 등에서 모바일로 TFT와 LoR을 즐기며 아쉬움을 달랜다.


기기를 넘나드는 롤 세계관이 청소년의 일상이 된 셈이다.


롤 세계관에는 현재 150명의 챔피언(캐릭터)이 있다. 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대5 대전을 벌이는 게임이다.


그런데 각각의 챔피언은 고유의 스토리가 있을 뿐 아니라, 평행 우주 세계관에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야스오'라는 챔피언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일본도를 다루는 검사인데,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우주 해적이기도 하고,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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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챔피언들은 여러 평행 세계에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다. 게이머들은 각각의 평행 세계 이야기를 즐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평행 세계의 스킨(캐릭터 외형 아이템)을 모은다. 사진은 롤에서 판매하는 챔피언 '야스오'의 다양한 스킨 모습. [리그 오브 레전드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각각의 평행 세계는 고유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챔피언들은 평행 세계마다 다른 성격과 관계도를 갖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롤의 IP 전략이 고도의 '트랜스미디어'(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플랫폼·장르로 전달하면서 세계관을 확장하는 스토리텔링 기술)라고 평가한다.


롤 세계관에 빠져든 게이머들은 단순히 게임만 즐기는 게 아니라 소설, 영상, 코믹스 등 라이엇게임즈가 제작한 다른 콘텐츠까지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챔피언의 스킨(캐릭터 외형 아이템)을 사 모으는 등 롤 세계관에 돈을 쓰게 되고, 롤이 시나브로 일상이자 습관이 된다.


[※ 편집자 주 = 게임인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게임이 현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두루 다루겠습니다. 모바일·PC뿐 아니라 콘솔·인디 게임도 살피겠습니다. 게이머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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