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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눈사람은 왜 부수나요…세상에 화풀이하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누군가 던진 돌에 팔과 허리 부분이 훼손된 성모 마리아상.


지난 7일 부산 기장군의 한 성당에서 발생한 일인데요.


닷새 만에 덜미가 잡힌 범인은 20대 취업준비생.


이 청년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안 돼 화풀이 대상을 찾다 이 같은 짓을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한밤중 도로변에 세워진 차 5대를 긁고 달아난 범인 역시 직장을 구하던 27세 남성이었는데요.


계속된 재취업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가 밝힌 범행 동기입니다.


최근 최악의 구직난을 겪고 있는 젊은 층의 좌절감이 폭력적인 행위로 표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일명 '화병'으로 한방병원을 찾은 20대 환자 수가 지난 5년간 약 2배로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는데요.


홧김에, 재미 삼아,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애꿎은 대상을 공격하는 것은 비단 청년 세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 큰 눈이 온 이달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눈사람 파괴자들'이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대전 한 카페 앞 명물이었던 '엘사 눈사람'을 주먹으로 부수는 남성의 영상이 SNS에 게재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가수 이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눈사람을 걷어찬 남성과 이별을 결심한 여성의 이야기를 올려 잠재된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아이가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을 이웃 주민이 발로 차 망가뜨렸다는 한 부모의 사연 역시 트위터를 통해 공유되며 화제가 됐죠.


마치 세상에 화풀이하는 듯한 이런 행동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스트레스가 우울을 넘어 분노까지 확산한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합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이어 '코로나 레드'(Corona Red), '코로나 블랙'(Corona Black) 등 신조어가 등장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인데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염재난 초기엔 불안이 가장 문제가 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노 반응이 나타난다"며 "이는 무언가 기대 이하일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국민들이 방역 지침에 협조해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근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특히 젊은이들의 고통이 컸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요.


김 교수는 "뭔가를 성취할 수 없고, 상실감·박탈감이 가득 찬 사회에서 반대급부적으로 부수는 것에서 기쁨이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과거엔 오프라인 만남 등 완충장치가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고립 상태가 지속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3.8%였던 우울 위험군이 작년 말 20%까지 치솟는가 하면, 자살 생각률이 4.7%에서 13.4%로 급증하는 등 주요 정신건강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죠.


무엇보다 폭력에 내성이 생길 경우 자칫 사물이 아닌 동물이나 사람을 향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은데요.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처음엔 관심을 받으려는 짓궂은 행동,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시작했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진화해 범죄로 귀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속으로 삭이도록 권장하는 우리 정서상 쌓아둔 화가 결국 곪아 터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기보다 제대로 해소하는 방식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데요.


20대 취준생인 A씨는 "보통 참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 화를 올바르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모범생' '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20대들이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것처럼 모두가 한껏 예민해져 있는 이때.


단순한 장난을 넘어 더 큰 일탈로 이어지기 전 '마음의 방역'부터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선 기자 한영원 인턴기자 박소정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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