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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잡아끄는 강화도 근대문화유산 세 곳

먹고, 마시고 쉬며 강화 매력 '만끽'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 역사 유적이 많은 강화도는 수도권 당일치기 나들이 장소로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고택과 양조장, 오래된 공장 등 보석처럼 빛나는 근대 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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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가 인상적인 고대섭 가옥 [사진/성연재 기자]

◇ "일터에서 땡땡이치는 느낌이에요" 조양방직

강화읍 신문리에 있는 조양방직 공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강화도 갑부였던 홍재용 씨 형제가 세운 곳이다. 당시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없어 공장 개설을 위해 전기와 전화 시설까지 끌어들였다.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택에 이곳에서 생산된 물품들은 중국과 멀리 일본까지 수출되기도 했다. 주변에도 다른 공장이 계속 들어서 3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방직공장 60여 곳이 생겨났다. 그러나 대구 쪽에서 합성섬유를 중심으로 한 섬유산업이 발전하면서 이곳은 내리막을 걸었다. 1958년 공장 문이 닫혔고 이후 쓰레기더미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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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물을 그대로 살려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조양방직 [사진/성연재 기자]

그 후 다시 문을 열게 된 게 2018년이다. 예전 이름을 그대로 살리고 집기와 시설들은 그대로 복원해 카페로 재탄생됐다. 이 공장 카페는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마스크에 갇힌 채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은 큰 공장 건물의 넉넉한 공간에 매료됐다.


머리 위 높은 곳에 '조양방직'이라고 쓰인 철제 간판을 지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본관 건물 내부 입구에는 빵과 음료를 주문하는 공간이 있다. 디저트와 음료를 들고 내부로 들어가면 생각 외로 넓은 공간에 깜짝 놀라게 된다. 공장 건물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영화 한 장면처럼 공장 내부를 조망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 같은 곳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옆자리의 누군가는 "마치 일터에서 땡땡이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딱 맞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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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등을 활용한 인테리어 [사진/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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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땀 흘려 일하던 장소가 이처럼 노닥거릴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별관에는 골동품 등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됐다. 근대사를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대표 이용철 씨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수집한 소품들이다. 골동품점을 운영한 그의 경험도 이 공간을 꾸미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공장의 모습은 친근하면서 그리웠던 예전 추억도 되살려줬다. 조양방직은 주말마다 수천 명이 찾는 강화의 명소가 됐다.

◇ 진하고 그윽한 막걸리 '금풍양조'

길상면 온수리에는 일제 강점기 문을 연 양조장 금풍양조가 있다. 이곳은 1931년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옛 방식 그대로 막걸리를 빚어오고 있다. 지역 특산물을 재료 삼아야 하는 지역 특산주 면허를 강화에서 처음 따낸 곳이다. 강화도에서 난 유기농 쌀을 재료로 막걸리를 만든다. 시장통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댄 뒤 양조장을 찾았다. 다 쓰러져갈 것만 같았던 옛 양조장 건물은 조금 손을 본 듯 낡았지만 나름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정면에 '금풍양조장'이라고 쓰인 간판이 이 건물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려준다. 그런데 정문 앞에 바로 '금일 매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만들어놓은 막걸리가 다 떨어졌으니 이틀 뒤 오라는 안내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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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90년 된 독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 인기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계단을 올라가니 앞서 온 한 가족이 곧장 2층 다락방으로 향한다. 지게미를 걸러냈던 틀과 항아리 등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90년쯤 된 항아리라고 한다.


이곳의 대표는 양태석 씨. 3대째 가업을 잇는 그는 금풍양조 막걸리를 현대와 접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매진한다고 했다. 그는 먼저 와 있던 한 가족을 안내하고 있었다. 양조장 건물 한쪽 기둥을 보며 길상이라는 글자가 쓰인 기둥을 쓰다듬으면 만사형통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모두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한다.


이곳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2022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은 지역 양조장을 체험형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2013년부터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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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吉祥)이라고 쓰인 나무 기둥을 쓰다듬는 관람객 [사진/성연재 기자]

금풍양조는 사업계획 자문과 체험학습장 정비, 관광 프로그램 개발 등을 지원받는다. 최근 이곳은 겹경사를 맞았다. 인천시로부터 등록문화재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이를 기념해 강화 특산품인 인삼을 넣은 '금학탁주 그린' 등을 출시했다. 그런데 막걸리 양조장에 와서 막걸리 맛을 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주인 양씨는 솔정리 고택 주인장이 금풍양조 막걸리 3병을 사 갔다고 말했다. 서둘러 솔정리 고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장이 집을 비운 터였지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대청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 병을 땄다. 보기에도 걸쭉한 막걸리가 검은색 품위 있는 막걸릿병에서 흘러나왔다. 한잔 맛을 보니 명품 막걸리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산이 솟아오르는 울산 복순도가 막걸리와는 결이 달랐다. 진하지만 매끄럽게 입안을 적시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었다.


금풍양조 막걸리는 2주간 숙성한다. 양조장이 있는 온수리 일대 지하수는 예로부터 '약수천'이라고 불릴 정도로 물이 좋았다. 물은 좋은 막걸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곳에는 맑은 지하수를 긷던 우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양 대표는 "등록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강화 특산품으로 만든 제품을 출시했다"면서 "앞으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재까지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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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금학탁주 [사진/성연재 기자]

◇ 솔정리 고대섭 가옥

송해면에는 독특한 양식의 한옥이 있다. 솔정리 '고대섭 가옥'은 전통 한옥에 일본식 다다미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결합한 99칸 민가 건물이다. 집주인은 옛 가옥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복원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막걸리를 한 잔 마시니 이제야 집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가옥도 예전 양조장을 운영하던 집안이었다. 예전 부잣집은 방앗간과 양조장을 동시에 가진 곳이 많았다. 미곡을 방앗간에서 빻고 남은 쌀겨를 활용해 막걸리를 담갔기 때문이다. 특히 육지와 떨어졌던 강화도의 경우 방앗간과 양조장이 있는 집안은 많지 않았다. 솔정리의 고씨 가옥이 대표적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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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고대섭 가옥 [사진/성연재 기자]

이 집은 강화 출신으로, 일본과 중국 등지를 다니며 인삼 무역업을 하던 고대섭이 1941년 지었다. 당시 고대섭이 개성에서 본 집이 마음에 들어 똑같은 디자인으로 지었다고 한다. 집의 형태가 닫힌 'ㅁ' 자인 까닭은 주인장이 개경 등지로 출타할 때가 많아 아낙네만 있던 집안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마당에도 우물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ㄱ'자 가림벽이 있다. 이 역시 집안일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특이하게 건축 재료는 전부 황해도에서 배로 운반됐다.


가옥의 백미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 중정이다. 중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커다란 향나무다. 향나무는 여러 갈래로 나 있지만 뿌리는 하나라고 한다. 그 뒤로 안채가 보이는데 모습이 참 고즈넉하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다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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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아래 부엌 [사진/성연재 기자]

일본식이지만 겨울에는 따스함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고 이국적인 느낌도 든다. 특히 반지하로 꺼진 부엌 위층에 다락방이 널따랗게 자리 잡은 게 특이했다. 어린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은 인천시 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는 큰 차이가 있다. 지정문화재는 지정 과정도 어렵지만, 지정 이후 관리 등이 더 어렵다. 주인이라도 함부로 집을 손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손인 고영한 씨가 11년 전부터 관리하며 건물 내부를 수리해 왔으나 그의 눈높이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한옥체험업 등록이 돼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의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금력이다. 11년 동안 이 집에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개인 자금으로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힘에 부친다고 털어놨다. 고 씨는 "좀 더 완벽한 모습을 갖춘 뒤 일반에 공개하고 싶다"면서 "3년 전 2억5천만 원을 들여 수리했으나 티도 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근대 유산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되는 것에 비해 고씨 가옥은 적막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다.


​(인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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