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돼서야 여자들이 차별받는다는 걸 알게 됐죠"
'벤 바레스: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자서전' 번역 출간
1973년 미국 최고의 명문대 가운데 하나인 MIT의 2학년 여학생 바버라 바레스는 인공지능 수업에서 몹시 어려운 기말 숙제를 수강 학생 중 유일하게 풀어왔다. 그러나 담당 교수는 칭찬은커녕 "남자 친구가 대신 풀어준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바버라는 물론 그런 말을 듣고 대단히 기분이 나빴지만,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이 40이 넘어 성전환하고 '벤 바레스'라는 새로운 이름의 남자로서 살아보고서야 그것이 성차별이라는 걸 깨달았다.
벤 바레스는 2016년 3월 췌장암 판정을 받고 2017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힘겨운 투병의 와중에 자신의 인생과 학문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을 썼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암에 걸린 덕분에 학과장직을 맡을 일도 없고 이런저런 번잡한 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면서 "이제 연구실을 운영하고 젊은 친구들을 지도하면서 과학자로 사는, 제일 좋은 부분만 남았다"고 썼다. 책을 끝까지 읽고 이 부분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 말이 꾸밈없는 진심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1954년 미국 뉴저지주의 서민층 가정에서 '바버라 바레스'로 태어난 그는 수학과 과학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다. 열세살 때 우연히 이름을 듣게 된 MIT라는 대학이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줄곧 자신이 MIT에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대학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부모의 회의적 반응, 그리고 '어려울 것'이라는 진학 상담 교사의 만류에도 용감하게 원서를 내 당당히 합격한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금지] |
MIT는 바레스가 입학한 1972년 무렵에는 여학생들에 대한 장벽을 상당히 낮추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 학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레스는 능력이 중요할 뿐 성별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몇몇 눈에 띄는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다른 기회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기에 크게 억울하지도 않았다. MIT에 다니는 것을 '특권'이라고 표현할 만큼 학교생활을 즐거워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바레스는 다트머스 의학대학원을 거쳐 하버드 의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사이 코넬대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는 등 의사와 과학자로서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거치게 된다.
역시 명문대 가운데 하나인 스탠퍼드대에서 조교수 직을 얻기까지 인턴과 레지던트, 대학원, 박사후과정 등을 통틀어 그는 '17년이라는, 저임금과 고된 노동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지만, 걸핏하면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면서도 그 일이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부모로부터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지도 교수들이 나서 해결해주는 등 '인복'도 있었던 편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요인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성 정체성 문제였다.
바레스는 네다섯살 무렵부터 자신이 여자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이르자 이런 마음이 더욱 굳어져 치마는커녕 장신구, 화장도 멀리했고 여성적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극도로 불편해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성향은 단지 심리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가 태아였을 때 어머니 뱃속에서 남성화 호르몬에 노출돼 있었고 '뮐러관 무발생 증후군'이라는 질환 때문에 자궁과 질이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성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 진학해 공부에 열정을 쏟으면서도 성 정체성의 혼란은 더욱 커져 종종 자살 충동을 느끼기에 이른다.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사와 상담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혼란과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어찌할 줄 몰랐던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종신직 부교수가 된 1997년 신문에서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가에 관한 기사를 읽고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됐고 비로소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성전환증이 '정신병 목록'에 올라 있을 정도였지만 바레스는 전문의와 상담한 결과 여자에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저항할 수 없는 열망'에 빠졌다. 언제나 멘토가 돼 준 옛 지도교수들과 가족들도 그의 결심에 성원을 보냈다.
결국 그는 동료, 친척, 친구들에게 '성전환'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 '바버라'에서 '벤'으로 이름을 변경한다. 이 편지에서 그는 "저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미 남자입니다. 성별 혼란이 가져온 정신적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혼란스러움은 나 자신이 쓸모없는 것 같은 기분, 강한 고립감과 소외감, 절망, 자기 파괴 감정의 원천이 되었습니다"라고 성전환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토로했다. 또 "여러분이 제 성별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려면 한동안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실적으로 저는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늘 그랬던 것처럼 많은 부분에서 똑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단지 훨씬 더 행복해지겠지요"라고 썼다.
스탠퍼드대 교수 재직 당시의 벤 바레스 [스탠퍼드대 홈페이지·재판매 및 DB금지] |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그 직전 유방암에 걸려 유방을 절제한 데다 자궁은 태어날 때부터 없었으므로 의학적인 처치는 테스토스테론 복용과 난소 제거 이외에는 별달리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성전환한 후 그는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또 행복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거대한 짐이 한순간에 들어 올려진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물론 다시는 자살을 생각하는 일도 없었다.
그가 느끼기에 성전환 후 20여년간 특별한 불이익은 없었고 오히려 '남자'로서 이점을 누리는 일이 많았다. 동료 교수들도 속마음은 다를지언정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학문적 성취도 계속돼 2013년에는 트랜스젠더로서는 최초로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현실에서 남자가 됐음을 느낀 계기로는 테스테스토론 영향으로 힘이 세져 예전에는 한 번도 못 하던 팔굽혀펴기를 30번이나 할 수 있게 된 것과 '우는 능력'이 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남성 과학자'로 변신하고 보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어느 세미나에서 발표한 후 지나가는 사람이 한 말을 어깨너머로 듣게 됐다. "벤 바레스의 오늘 발표는 훌륭했어. 이 사람 연구가 여동생보다 훨씬 낫네"라는 말이었다. 그에게는 과학 세미나에서 발표할 만한 여동생이 없었으므로 그가 이야기하는 여동생은 '바버라 바레스'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남자와 여자를 모두 겪은 그에게 이 같은 편견과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성 소수자는 물론 여성, 특히 여성 과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특히 유명한 사건은 2005년 래리 서머스 당시 하버드 총장이 "이공계에서 여성이 종신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이 날 때부터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큰 논란이 일었을 때 바레스가 공개 반박한 일이다. 바레스는 과학지 '네이처'에 실은 논평 '성별이 문제되는가?'에서 여러 실증적 자료를 들이대면서 서머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해 여성계는 물론 전 세계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바레스는 이 글을 통해 "교수가 인종이나 성별에 근거해 열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는 행위이다. 여기서 선이란 언론의 자유와 언어폭력을 나누는 선이다. 여성의 능력이 존중되지 않는 문화에서 여성은 결코 제대로 성취감을 느끼며 배우고 발전하고 앞장서고 사회에 참여할 수가 없다"고 역설했다. 이 '한 방'으로 논란의 승패는 자명해졌고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서머스는 결국 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바레스는 "보편적인 무지와 혐오의 시대에 트랜스젠더로 성장하는 것은 힘겹고 고통스러웠다"면서도 "나의 남다른 경험이 경쟁적인 세상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용기 있게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는 내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공개하고 내 능력이 닿는 만큼 훌륭한 과학자이자 선생, 그리고 인간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최선을 다했다. 학자로서 이처럼 즐거운 경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는 평범하지 않은 육체와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인생을 산 것 같다. 그 같은 핸디캡마저 뛰어넘는 능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불우한 처지마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값하도록 소수자 옹호라는 대의에 복무하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조은영 옮김. 해나무. 272쪽. 1만5천원.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