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이 만든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인권과 평화의 연대', 작년 이어 두번째 정부차원 행사
피해 할머니 유족이 보내는 편지 낭독, 전국서 다채로운 기념행사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내 나라 잃어버려 억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 가슴이 떨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1991년 8월 14일. 당시 예순여덟 김학순(金學順) 할머니가 반세기를 묻어두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비로소 풀어제꼈다.
1924년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는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다 열네살에 평양에서 어느 집 양녀로 들어간다. 양아버지를 따라 다시 중국에 갔다가 철벽진이라는 곳에서 느닷없이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생활을 한다.
300명가량 되는 군부대 앞 중국집에 설치된 위안소에는 한국인 위안부 다섯이 있었다. 김 할머니가 17세로 가장 어렸고,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22세였다.
위안소는 칸막이로 5개 방을 만들었으니, 명령에 따라 무조건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군인들은 사흘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는데 그때에는 한 사람이 3~4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는 김 할머니 기억에 의하면 군인들은 당시 1원50전씩 내고 위안소를 찾았지만, 위안부들한테는 아무런 보수도 없었고, 감금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군에서 주는 쌀과 부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지냈다고 한다.
이런 참혹한 생활을 눈물로 고백하면서 김 할머니는 "일본 깃발만 봐도 지난 한스러운 세월 때문에 가슴이 떨린다"면서 "눈 감기 전에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응어리를 쏟아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 날)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스스로 고백한 날이다.
이에 즈음해 여성가족부가 이날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시민단체·학계 전문가, 청소년과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림의 날 행사를 열었다. 정부 차원에서 기림의 날을 공식 기념하기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을 연 바 있다.
두 번째 기념식은 색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 아베 정부에 의한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가 촉발한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더없이 커진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본 행사에 앞선 식전 공연에서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청아리합창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를 제창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에움길'의 감독인 이승현 씨의 개회선언으로 시작한 행사에서는 피해 할머니 유족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가 낭독됐다.
배우 한지민 씨가 읽은 편지에서 유족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다"며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한다"고 간절히 바랐다. 마지막으로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로 끝을 맺었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개회사에서 기림의 날 행사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고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확산하고 공유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념 공연에 이어서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 제1회 김복동 평화상 수상자 아찬 실비아 오발 우간다 골든위민비전 대표 등 국제사회 인사들의 평화와 인권을 향한 연대 메시지가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이날 기림의 날을 맞이해서는 정부 차원 기념식 외에도 각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이 마련한 다양한 기념행사와 전시, 공연 등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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