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코로나19·경제난 '이중고' 속 고위층 기강 잡기 나서
간부 부정부패에 칼 들이대며 강력 처벌…서민엔 생활안정 강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계기로 노동당과 사회 전반의 기강 잡기에 직접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말 미국의 대북제재에 '자력갱생'으로 맞서겠다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지만, 연초부터 들이닥친 중국발 코로나19의 파죽지세로 총체적인 난관에 봉착하자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칼을 빼든 모습이다.
2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이번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코로나19 방역 대응과 노동당 간부들의 부정부패 척결 사안을 중점으로 다뤘다.
북한, 코로나19 논의 당 정치국 확대회의…김정은 참석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에서 28일 촬영, 보도했다. 2020.2.29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photo@yna.co.kr |
우선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초특급 조치'를 취하라면서 주민의 생명안전을 위한 체계적인 방역시스템의 마련을 당부하고 생활 안정을 위한 주택건설 등도 지시했다.
북한은 아직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염증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져 자칫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민생고에 지치고 낙후한 의료환경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방역 통제와 지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을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국가방역체계안에서 그 어떤 특수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비상방역사업과 관련한 중앙지휘부의 지휘와 통제에 나라의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이 무조건 절대복종하고 철저히 집행하는 엄격한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 중앙지휘부가 업무 특성상 보건성을 비롯해 내각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고위간부나 이른바 '힘있는' 특수기관들이 '힘없는' 내각 등 중앙지휘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지위와 권력을 내세워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 대해 강한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더욱이 이번 회의에서 '당간부양성기지의 엄중한 부정부패'와 이곳 당위원회 해산, 관련 고위간부들에 대한 해임 사안을 주요 안건으로 다루고 이를 전격 공개한 것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노동당 주요 회의에서 다룬 부정부패 관련 고위 인사의 문제점과 처벌 조치를 공개한 것은 2013년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부였던 이른바 '반혁명분자'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일이다.
김정은, 정치국 회의 주재…코로나19 대책 직접 지시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논의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9일 보도했다. 2020.2.29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nkphoto@yna.co.kr |
'우리 당 골간 육성의 중임을 맡은 당간부양성기지'란 중앙과 지방의 노동당 고위간부들을 재교육하는 김일성고급당학교로 추정된다.
이 학교는 중앙당 간부와 각 도와 군의 상위 핵심 간부 수명, 내각 및 인민군 등 주요 권력기관 간부 등 북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고위간부들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재교육을 받는 곳이며 잘못을 저지른 간부들의 단골 교육장소이기도 하다.
고위간부들이 모이는 이런 곳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하고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수장 리만건과 농업담당 박태덕이 해임된 것으로 미뤄 부정부패의 정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박태덕의 경우 농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먹고 살기 어려운 북한 현실에서 상하 모두와 뇌물이나 부정청탁 등 부정부패 현상이 가장 많이 벌어질 수 있는 자리에 꼽힌다고 할 수 있다.
중앙통신이 언급한 "특세와 특권", "행세식 행동"은 노동당의 핵심인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집권 시기 무소불위로 자리 잡은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은 집권 이후 그 파워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최근 진입할 정도로 여전히 핵심 중 핵심 부서다.
과거의 타성에 젖은 조직지도부장의 권력남용이나 그에 대한 아래 사람들의 아첨과 뇌물 등 부정부패가 도마 위에 오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내막이야 어찌했든 북한이 2년 전부터 간부와 권력기관을 상대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가운데 코로나19로 대내외 우환이 겹치는 상황에서 이들을 본보기로 고위간부 진영에 대한 기강 확립과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역으로 북한 사회에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있고 이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원성이 높은 만큼 민심을 다독이려는 속내도 보인다.
김정은, 정치국 회의 주재…코로나19 대책 직접 지시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논의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9일 보도했다. 2020.2.29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nkphoto@yna.co.kr |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자력갱생으로 경제난을 정면돌파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첫발을 내딛자마자 코로나19 때문에 육·해·공을 모두 닫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있다.
코로나19의 지속과 좀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난과 생활고 속에서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사상이완 현상 등 민심의 악화를 막는데 부정부패 척결은 적지 않은 효과를 볼 것으로 관측된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대리만족'을 주고 현재 어려움에 대한 불만을 간부들에게 돌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을 치켜세우고 내부 결속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통신이 이번 회의와 관련 "인민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조선노동당의 본태를 확고히 고수하고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당활동과 국가활동에 철저히 구현해나가도록 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의미를 부여한 데서도 이런 속내가 읽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치국 확대회의는 전원회의 결정서 관철을 점검 독려하면서 정면돌파전의 방해요소를 척결하는 데 방점을 뒀다"며 "구체적으로 정면돌파전의 독소인 관료들의 부패를 척결하고 코로나19의 통제 강화를 통해 체제결속을 이끌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