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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한반도 배꼽을 걷다…합수머리꼭지길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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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대교 밑에서 본 합수머리. 오른쪽 한탄강과 왼쪽 임진강이 만난다. [사진/전수영 기자]

(연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합수머리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가까운 곳에 한반도 정중앙인 중부원점이 있다.


중부원점부터 임진교까지 이어진 합수머리꼭지길은 한반도 배꼽을 걷는 길이다. 10만∼50만 년 전 형성된 한탄강·임진강 주상절리가 장관이다.


산과 강이 많은 우리나라는 큰 강과 큰 강, 강의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아름다운 곳이 적지 않지만, 경기도 연천군 남계리 합수머리만큼 특별한 곳도 드물다.


현무암 협곡을 흐르는 한탄강과 완만한 평야 지대를 가로지르는 임진강이라는, 지질학적으로 전혀 다른 성질의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생물 자원이 다양하고, 주상절리의 특이 지형을 볼 수 있으며, 풍광은 장엄하다.


경기도 연천군, 포천시, 강원도 철원군에 걸쳐 있는 한탄강지질공원에는 보통 사람들이 걷기 좋은 길인 '지오 트레일' 10개가 조성돼 있거나 만들어지는 중이다. 합수머리꼭지길은 그중 하나다. 조성 작업이 거의 끝나 누구나 걸을 수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30∼40분가량 걸리는 산길인 새소리산책길 구간은 외진 느낌을 주기도 해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마포리에 있는 중부원점 공원에서 연천군 우정리 임진교까지 약 8㎞ 구간이 합수머리꼭지길이다.


코스에 합수머리와 중부원점이 포함돼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상류 쪽으로 주상절리 협곡을 보며 걷는다.


편도에 2∼3시간이 걸린다. 코스는 중부원점∼한반도통일미래센터 옆 철책체험로∼이팝나무길∼남계대교∼동이대교 옆길∼임진강 전망대∼새소리산책길∼임진교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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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원점 [사진/전수영 기자]

중부원점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중부원점 공원으로 불리는데 합수머리가 가까워 합수머리 공원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드넓은 임진강이 서쪽으로 유유히 흐른다.


우리나라 측량 좌표계는 동부, 중부, 서부의 3개 원점을 두고 있다. 중부원점은 북위 38도 선과 동경 127도 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동부원점은 북위 38도 선과 동경 129도 선의 교차점이다. 강원도 양양군 주문진 앞바다에 위치한다. 서부원점은 북위 38도 선과 동경 125도 선이 만나는 곳이다. 황해도 옹진군 제작리 앞바다다.


세 곳 중 중부원점만 유일하게 육지에 있다. 중부원점은 측량과 지도 제작의 기준이 된다. 국가의 중요 기준점인 것이다.


흔히 강원도 양구군을 국토의 정중앙이라고 한다. 이때문에 한국의 중심점을 따질 때 헷갈리기도 하는데, 독도, 마라도 등 섬을 포함한 국토의 중심점은 양구다.


반면 중부원점은 섬을 제외한 한반도 육지의 중심점이다. 중부원점에 해당하는 지점에는 표시 석이 놓여 있다. 이곳이 바로 장차 통일 한국의 심장이 될 터다.


중부원점 옆에는 방공호 같은 군사시설이 있다. 남북 분단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사실 연천은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일깨우는 현장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비무장지대(DMZ)가 코앞이다. 평화 속에서도 군사적 대치로 인한 긴장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전쟁 때 중부 전선에서 반복됐던 남북 교전은 연천을 폐허로 만들었다. 휑한 북녘 하늘은 그 상처를 환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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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통일미래센터 옆 비무장지대 체험 철책 [사진/전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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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원점 공원을 출발해 합수머리로 향했다. 가는 길옆에 한반도통일미래센터가 있다. 통일부 소속 통일체험연수 기관이다. 초중고 학생, 재외동포 청소년, 대학생, 이산가족,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남한과 북한 사이 자연 경계가 되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 통일 한국의 심장이 될 중부원점만큼 통일미래센터의 입지로 제격인 곳이 또 있을까. 센터 옆을 지나는 구간에 DMZ 철책체험로와 이팝나무길이 있다.


센터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육생들은 이 구간을 지나 중부원점 공원까지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센터를 지나면 남계대교다. 다리 밑이 임진강과 한탄강의 두 물길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두 물줄기는 이곳에서 한 몸이 돼 서쪽으로 흐른다.


합수머리는 도감포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포구가 있었다. 강변 자갈밭에는 아직 추운 날씨에도 드문드문 캠핑족들이 눈에 띄었다.


윤중덕·이현숙 한탄강지질공원해설사는 일부 캠핑족들이 하천 오염원이 되고 있다며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분별과 예의만이라도 갖췄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합수머리꼭지길은 남계대교에서 동이대교 옆길로 쭉 이어진다. 짧은 아스팔트 구간이 있고 대개는 농가나 농토 옆길이다. 동이대교 쪽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계대교 밑으로 내려가 합수머리 강변인 도감포까지 걸었다.


도감포에서 한탄강주상절리를 가까이서 관찰해보면 얼마간의 발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높이 20∼30m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마치 병풍을 쳐 놓은 듯 수 백m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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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주상절리 [사진/전수영 기자]

주상절리는 분출한 용암이 냉각될 때 수축하면서 생긴 암석이다. 단면이 4∼6각형이고 길쭉한 기둥모양(柱狀)이다. 수축하면서 암석들 사이에 갈라진 틈(절리)이 생긴다. 제주도 중문해안,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등이 유명한 주상절리 해안 절벽이다.


한탄·임진강 주상절리는 몇 ㎞에 걸쳐 있어 더 아름답고 웅장하다. 특히 합수머리 강변의 주상절리는 다양하고 불규칙한 모양이 특징이다. 수직 주상절리는 물론 옆으로 누운 듯한 주상절리, 판상 주상절리, 수백 개의 바늘을 촘촘히 꽂아놓은 듯한 모양의 주상절리 등 여러 형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윤중덕 해설사는 합수머리 주상절리는 한 번에 생성된 것이 아니라 반복된 용암 분출로 인해 몇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양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동이대교 옆을 지나면 임진강을 왼쪽에 두고 걷게 된다. 강변에는 높이 30m가량의 주상절리 절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이 절벽은 약 2㎞에 걸쳐 있는데 임진강 상류 쪽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 강변에 있을 때도, 오른쪽 강변에 있을 때도 있다.


오른쪽 강변 주상절리는 합수머리꼭지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이 주상절리 절벽 위의 길이 합수머리꼭지길이기 때문이다. 이 절벽의 장관을 감상하고 싶으면 반대편 임진강 강변으로 가야 한다.


주상절리 절벽 위 길에서는 임진강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경남도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청정지역인 DMZ를 지나와서 그런지 유난히 맑고 진한 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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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수머리 강변의 주상절리 [사진/전수영 기자]

남쪽에서 겨울을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가. 기러기 떼로 보이는 철새들이 진흙만 남은 논바닥에 앉았다가 끼룩끼룩 소리를 지르며 힘찬 날갯짓으로 줄지어 날았다. 족히 100∼200마리는 돼 보였다.


드넓은 농토 한복판인데 마른 풀숲에서 고라니가 뛰어나왔다. 뒷발을 박차면서 달리는데 점프의 폭이 3m는 될 것 같았다. 20∼30분 지났을까 또 한 마리의 고라니와 마주쳤다.


이 일대에는 가을이면 멸종 위기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도 찾아와 겨울을 난다고 한다. 연천의 임진강 일대는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DMZ 덕택에 유지되는 임진강 생태의 건강함이 오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임진강 전망대에서 강변 쪽으로 내려갔다. 주상절리 절벽이 눈앞을 막아섰다. 이현숙 해설사는 지질학을 겸손의 학문이라고 일컬었다. 수십만 년, 수억 년 전에 생긴 지질을 공부하고 해설하다 보면 인간과 그 삶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고 했다.


강변에 내려서니 물꽃캠핑장이 있었다. 폐차한 대형 트레일러 하체 위에 컨테이너로 숙박시설을 꾸민 펜션형 트레일러들이 여럿 있었다. 실제 이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으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어지는 산길 구간인 새소리 산책길은 인적이 드물어서 약간 두려웠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후 졸지에 포획 대상이 돼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멧돼지가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길을 우회해 황지리 쪽 마을 길을 걷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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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 [사진/전수영 기자]

산길을 조금 걸으면 목계단을 통해 임진강 강변으로 다시 내려간다. 강변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임진교가 나온다. 합수머리꼭지길은 강변길, 농촌 시골길, 숲길 등을 체험할 수 있어 다채롭다.


출발지에 회귀하기 위해 왕복하려면 4∼6시간 걸려 조금 힘들 수 있겠다. 편도로 걷는다면 중부원점 공원이나 임진교에서 출발할 수 있다.


임진·한탄강 일대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다퉜던 역사적 격전지이기도 하다. 당포성, 호로고루성, 은대리성 등 남한에 있는 고구려 3대 성이 여기에 몰려 있다.


합수머리꼭지길 외에도 한탄강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는 별도의 주상절리길이 도감포에서 연천군 청산면 백의교까지 27.9㎞가 조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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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교 [사진/전수영 기자]

한탄강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용암이 굳어져 생긴 현무암 주상절리 침식 하천으로, 일대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있어 국내 어떤 강보다 변화무쌍한 풍광과 절경을 자랑한다.


한탄강지질공원은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앞두고 있다. 당초에는 올해 3월 말∼4월 초 유네스코에서 관련 회의를 열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일정이 유동적인 상황이다.


한탄강지질공원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연천 임진강 일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과 더불어 이곳의 생태·지질·지형적 가치에 대한 지역 주민, 국민, 나아가 세계인의 인식이 새로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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