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비용, 뭐가 문제야?
쓸 거면 시원하게 써버리자!
길가에 앉아있는 개를 보고 ‘넌 상팔자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동남아 지방의 친절한 사람들을 보며, ‘아 이곳은 따뜻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쫓겨 바쁘게 사는 나와 달리 여유로운 사람을 보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마치 평행이론이라도 되는 듯, 다른 세계에서 날 바라보며 ‘왜 그렇게 바빠?’하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여행길에 만난 강아지 |
갈수록 바빠지는 요즘. 스트레스와 멀어지기 위해 쓰는 비용의 종류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세 가지는 쓸쓸비용(쓸쓸해서 쓴 헛돈), 홧김비용(화가 나서 쓰는 돈), 그리고 멍청비용(쓰지 않아도 될 돈)인데 그 중 홧김비용과 멍청비용의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택모닝(아침 출근길에 타는 택시)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어제 퇴근한 시간이 몇 신데 택시도 못 타?’ 라고 외치고. 좋아하는 브랜드 커피를 마시며,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마셔줘야지’ 라고 다독이며, 비행기 티켓을 사며 여행이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쓰는 돈을 충당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일하면서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무한루프에 갇힌 셈이다!
그렇지만 돈을 쓰면서 즐거운 순간은 많다. 여유롭게 하는 출근,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기쁨, 여행을 다니며 얻는 추억 등등. 동기들과 야근 얘기를 줄곧 하다, 이번 주말엔 스트레스도 풀 겸, 추억도 쌓을 겸 데일리 플라워 클래스도 다녀오기로 했다. 이렇게 홧김/멍청비용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하고 싶은 것들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회사 다니는 것도 꽤(?) 즐겁다.
요즘 제일 즐거운 홧김비용은 필라테스이다. 운동이 홧김비용이냐고 물어볼 테지만, 진짜 그렇다. 원래 정기적인 지출항목도 아니거니와, 늘어나는 야근으로 인한 허리통증에 정형외과를 다녀오기까지 하자 필라테스가 절실했다. 비싼 비용이지만,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두달 째 받고 있는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한 모범생 노릇 중이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친구들에게 멍청비용이 33,000원씩 나가고 있어! 라고 외치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앞서 언급한 비용들을 그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쓰는, ‘쓰지 않아도 될’ 돈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용의 명칭을 앞세워 갖고 싶은 것들을 갖기도 하고, 해보고 싶었지만 겁나서 하지 못했던 일에 과감히 투자하는 일도 일어난다. 비용은 살짝 멍청할지 몰라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즐겁고 기쁘다. 언젠가 ‘쓸모없지만 쓸모있는’ 세 가지 비용을 관리하는 앱도 나오지 않을까?
하여튼, 쓸 거면 시원하게 써버리자! 스트레스받는 것도 서러운데, 스트레스라는 단어만 봐도 스트레스 받는데! 나만을 위한 값진 곳에 쓰시기를 바란다.
다들 분명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겠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뭐랄까.
굉장히 부지런한 거 아닐까?
- 김신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글ㆍ사진 | 김지연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