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소름 돋는 연극 '미저리'
고마운 넘버원 팬과 섬뜩한 스토커 사이
한여름 공연장만큼 시원한 피서지도 없다. 뜨거운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에서 때로는 두터운 의상을 입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배우들을 감안해 냉방시설이 가동되다 보니 객석에서는 다소 춥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극의 전개로 등골이 오싹해진다면 어떨까. 조미료 없이도 풍성한 맛을 내는 음식처럼 잘 짜인 서스펜스 스릴러극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간담은 서늘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시원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요즘 연극 <미저리>의 인기가 상당하다. 탄탄한 대본에 김상중, 안재욱, 길해연, 김성령 등 인기배우들의 관록 있는 연기, 무대만의 독특한 전개가 더해져 뻔히 아는 내용인데도 수시로 관객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객석에서 보고 들었던, 또는 나눴을 법한 얘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1층 6열 6번 : ‘미저리’의 사전적 의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는데, 뜻을 모르고 그냥 발음해도 왠지 좀 섬뜩하게 들리지 않아?
1층 6열 7번 : 그래서 ‘어감’이라는 말이 있겠지. 1990년에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부터는 ‘미저리 = 스토커, 집착’으로 통하잖아. 영화를 안 본 사람들도 집착이 심한 사람한테 ‘미저리 같다’고 말할 정도니까. 눈보라가 몰아치는 외딴 마을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한 소설 ‘미저리’ 시리즈의 작가 폴 셸뎐을 구해 보살피는 열성 팬 애니 윌크스의 광적인 집착, 시놉시스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하다.
1층 6열 6번 : 그러게, ‘I’m your No.1 fan.’이 굉장히 무서운 말이었어.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다고 하잖아. 90년대 들어 배우나 가수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미저리’는 더 화제가 됐고. 그런데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무대로 옮긴 줄 알았더니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구나.
1층 6열 7번 : 소설이 1987년에 발표됐고, 영화는 1990년, 연극은 201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벅스 카운티 플레이하우스에서 초연됐다고 하더군. 2015년에 브루스 윌리스와 로리 멧칼프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1층 6열 6번 : 브루스 윌리스의 연기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면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나도 갔을 거야(웃음).
1층 6열 7번 :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캐스팅이 남다른 것 같아. 지난해 초연 때부터 폴 역에는 김상중, 김승우 씨 등 무대에서는 만나기 힘들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알려진 배우가 참여했고, 애니 역에는 길해연, 이지하 씨 등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파 배우들이 어우러져 묘한 밸런스를 맞추더라고.
1층 6열 6번 : 40~50대 예매자가 40% 이상이던데, 공연을 많이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실제 스타와 이름 없는 골수팬처럼 느껴져서 더 실감났을 거야. 김상중, 김승우 씨는 누구나 아는 스타이고, 길해연, 이지하 씨는 연기를 정말 잘하잖아.
1층 6열 7번 : 그렇지. 올해는 재연이라 그런지 또 다른 변화를 줬는데, 초연 멤버인 김상중, 길해연 씨 외에 무대 경험도 많은 안재욱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김성령을 새롭게 캐스팅했다는 점이지. 안재욱 씨가 뮤지컬에는 꽤 많이 참여했지만 연극은 22년 만이고, 김성령 씨는 지난 2014년에 연극 <미스 프랑스>로 대학로 무대에 선 경험이 있지만 두 작품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거든. 공연을 많이 접한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셈이야.
1층 6열 6번 : 내가 그 <미스 프랑스>를 봤거든. 코미디극으로 주인공이 1인 3역을 연기하는데, 그 중 한 명이 ‘미스 프랑스’라서 미스코리아 출신 김성령 씨에게 딱 맞았지. 이후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힌 만큼 순박한 열성팬에서 광기어린 스토커까지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했는데, 김성령 씨에게는 기본적으로 ‘귀여움’이 있는 것 같아. 키도 크고 나이가 있는데도 애니에게서조차 귀여운 면모가 느껴져. 미워할 수 없는 애니라고 할까? 반면 길해연 씨는 정말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중년 여성인데, 그 일상적인 모습에서 광적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소름 돋더라.
1층 6열 7번 : 두 배우의 모습이 확연히 대비되기는 하지. 연기하는 공간이 달라지면 연기력뿐만 아니라 그 메커니즘에 얼마나 익숙한지도 중요하잖아. 특히 연극은 라이브라서 NG나 편집이 없으니까 베테랑 연기자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나는 안재욱 씨의 무대가 궁금했어. 사실 초반에는 가장 편하게 연기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거든. 계속 침대에 누워 있잖아(웃음). 그런데 중반부터는 휠체어에 앉아 긴박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몸싸움도 하고, 무엇보다 두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설정이잖아. 폴이 아닌 안재욱은 사실 아무렇지 않은데. 극이 긴박하게 흘러가다 보면 돌발 상황이 정말 많겠더라고.
1층 6열 6번 : 맞아, 못 움직여야 하는 다리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웃음). 그래서 뮤지컬을 통해 무대 경험이 풍부한 안재욱 씨가 혹시나 있을 돌발 상황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극을 끌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로군. 하긴 폴 같은 경우 동작에 제한이 있으니까 문을 열고 닫는 것, 약을 숨기거나 타자기에서 종이를 빼는 등의 일상적인 장면까지도 살짝 빗나갈 때면 불안하기는 하더라. 그래서 더 손에 땀을 쥐게 되기도 하고.
1층 6열 7번 : 긴박감에 있어서는 회전 무대의 공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어. 무대가 회전할 때마다 폴이 누워 있는 방, 복도, 주방, 집의 정면 등이 차례로 보이는데, 특히 몰래 방을 빠져나간 폴이 외출했던 애니가 돌아온 걸 알고 다시 방으로 가는 장면 있잖아. 폴은 휠체어에 앉아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지, 애니는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지, 무대가 회전하면서 이 2~3개의 장면이 한꺼번에 펼쳐지니까 내 심장 박동이 마구 빨라지더라고.
1층 6열 6번 : 그러니까. 혹시나 휠체어를 제대로 못 끌거나, 문을 못 닫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수습할 거야. 극도 극이지만, 무대에서 펼쳐지는 그 상황 자체가 관객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것 같아.
1층 6열 7번 : 그게 무대의 매력이겠지! 배우들을 인터뷰하면 장면에 따라 수많은 관객의 심장이 함께 오그라들었다 다시 한시름 놓으며 안도하는 느낌이 무대에도 그대로 전해진다고 하더라고. 장면 전환할 때 암전이 좀 긴 감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전무대가 이번 공연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해.
1층 6열 6번 :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집착’이 극에 대한 공감도도 높였을 거야. 사실 넘버원 팬과 스토커, 사랑과 집착은 한 끗 차이지 않아? 다들 한 번쯤은 무언가에 미쳐본 적 있을 걸.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선을 넘지 않은 덕에 지금 이렇게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앤의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지만, 앤의 마음은 짐작이 되잖아. 그런 자신에게 놀라 더 소름이 돋을 수도 있지. 어쨌거나 간만에 재밌는 연극이었어.
1층 6열 7번 : 응, 이래저래 <미저리>의 넘버원 팬이 되는 사람이 많아지겠어(웃음)!
글 | 윤하정 사진 | 기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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