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딜레마에서 시작된 대리모 이야기
장편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작가 김수련
‘대리모’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통해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진지하고 끈질기게 던지는 장편소설 『호텔 캘리포니아』를 쓴 김수련 작가를 만났다. (2018. 02. 05)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의 가사에서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는 시작된다.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언제든 체크아웃은 할 수 있지만, 떠날 수는 없어요.”
소설은 난임의 고통에 빠진 여성들은 이 가사에서 전해지는 절망적인 느낌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절망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멈출 수가 없다.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족의 평화가 깨져나간다고 여기고 자책하는 것도 오로지 그녀들의 몫. “엄마라는 소리 한 번만 듣고 싶어요.”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 『호텔 캘리포니아』 는 처절할 정도로 마음의 극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며 오히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수련 작가는 1971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 독일로 유학, 베를린 훔볼트 대학과 자유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 교육학 마기스터(Magister) 과정을 수학했다.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이제는 사람의 옷을 입혀 ‘소설’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그 질문을 다시 던진다.
7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나 계기가 있다면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끝낸 것이 맞지만, 그 시간 동안 오롯이 글만 쓴 게 아니라서 좀 부끄럽네요. 하지만 한 번도 이 이야기를 놓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초고를 끝낼 때까지도 제가 붙들고 있던 질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죠.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를요.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그걸 탈고할 때쯤 알았거든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선택’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서영이 미래에 태어날 아이와 가상으로 대화하는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그걸 알았어요.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하고 선택을 당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그 대상이 하물며 작은 ‘배아’일 때도 가능한 걸까? 그 질문은 철학과 세미나에서 논의 한 ‘트롤리 딜레마’에서부터 시작됐고요. 물론 평생을 걸쳐 끊임없이 질문해 왔기에 구체화될 수 있었을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있던 것이 의식 위로 올라온 거죠.
책 제목은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 거죠? 책에 음악이 많이 담겨 있는데, 음악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네요. <호텔 캘리포니아>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책 제목으로 고른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셔요.
글쓰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늘 헤드폰을 귀에 꽂고 있죠. 힘들 거나 외로운 어떤 시간도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면 견딜 수 있었어요. 2010년 6월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요양 차 부산에 내려간 적이 있어요. 혼자서 달맞이 고개에서 내려와 해운대 백사장을 걷는데 그때 헤드폰에서 나온 노래가 <호텔 캘리포니아>였어요. 불쑥 한 가사가 제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바로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였어요. 영어 리스닝도 안 좋은데, 이 가사는 들렸죠. 그때, 그동안 고민하고 질문해 오던 것을 어떤 이야기 얼개로 짜야할지 떠올랐던 거죠. 그리고는 바로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플롯도 정하지 않고 구상도 하지 않고 바로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실 대리모라는 소재가 소설에서 다뤄진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표현이 사실적이라서 실제로 소설 속에 나오는 설정을 주변에서 경험하신 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여러 상황들이 사실은 윤리적인 판단에 대한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주변에 대리모를 경험하신 분은 없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대리모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기 때문에 알기 쉽지 않고요. ‘배아’의 생명 여부를 말하려면, 엄마 없는 배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그 문제가 더욱 부각이 되니까요. 그리고 엄마 없는 배아가 생명으로 태어나려면 ‘대리모’ 설정이 필요했고요. 표현이 사실적이라고 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픽션을 쓰는 작가에게 가장 큰 찬사는, 이게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그 캐릭터와 그 상황을 잘 이해했다는 말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윤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쓴 거고요. 이쯤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였죠. 그 윤리적인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에요.
독자로서 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원고를 쓰실 때도 많이 마음이 무거웠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고를 쓰시고 책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책이 나온 후, 가장 어려웠던 상황은 무엇이었나요? 그럴 때 작가님의 마인드컨트롤 비법이 있다면요?
이 글을 쓰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서영, 재민, 유리, 채린으로 살았어요. 그들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제게 얹히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특히나 서영의 이야기를 쓸 때 그 무게감이 가장 컸고요. 지금은 그들이 제게서 떠나 마음이 홀가분해요. 그립기도 하고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보다 일상인인 김수련으로 살아야 할 때였죠. 김수련이라는 자아가 투명해져야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제게 들어와 그들이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데, 일상 속에서는 그러면 안 됐거든요. 그게 빨리 빨리 스위치가 안 될 때 힘들었어요. 특별한 마인드 컨트롤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호흡을 해요.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호흡 때문인데요, 호흡에 집중을 하면 저의 자아가 옅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철학을 전공하셨는데 앞으로도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 중심으로 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가로서 김수련은 어떤 사람입니까? 개인으로서의 김수련은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에게는 수많은 모습이 있어요. 때로는 한 모습이 두드러져 그게 저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 순간만 보면 그게 김수련이라고 단정하겠지요. 그렇다고 그게 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 반대의 모습도 있을테니까요.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고요.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려면 아마 평생을 다 산 다음에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평생 동안 순간순간 드러났던 저의 모습이 모여 총합이 되어야 그나마 저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독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독일 튀빙겐에서 오래 계셨던 거죠? 다시 가고 싶으실 것 같네요. 다음 작품은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건 아닐까요? 참, 독일에서의 경험이 이 소설에서 어떤 작동을 하는 건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제가 독일에 처음 도착해서 살았던 도시가 튀빙겐이었어요. 대학을 입학한 곳이죠. 인구 8만 명의 대학도시로 정말 예쁜 곳이고요. 제게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에요. 1년을 튀빙겐에서 공부하고 베를린으로 옮겨 7년을 더 독일에 있었어요. “튀빙겐에서 좋았던 1년의 기억으로 힘든 베를린의 7년이라는 시간을 견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튀빙겐은 제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에요. 서영에게는 힘든 기억을 남긴 곳이지만, 제게는 반대였죠. 사실 서영에게도 처음에는 그런 장소였고요. 그래서 서영과 재민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튀빙겐으로 설정했어요. 제게 ‘호텔 캘리포니아’는 어쩌면 베를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과감하게 문을 열고 떠나왔죠. 그 문을 나서니 더 험난한 현실이 기다렸지만요. 언젠가 베를린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도시예요.
‘생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음 소설 준비 중이신가요? 다음 소설도 ‘생명’에 대한 책인가요?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셔요.
구상하고 있는 ‘생명’ 시리즈가 많아요. 꼭 써보고 싶은 소설은 ‘사형제도’에 관한 거예요. 그런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을 읽고 내가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물론 제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소설에 빠져 있지만요. 그리고 ‘대리모’가 보편화 된 미래를 시뮬레이션한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 그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할 거 같아요. 소설 보다는 영화가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기고요. 그래서 지금 영화감독인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자고 꼬시고 있어요.
우선 다음 소설은 대한민국 ‘교육’에 관한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는 전국이 ‘대치동화’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에두르지 않고 바로 대치동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교육’이 아닌 ‘조련’을 하고 있는 현 교육 현실에 작은 질문이라도 던져 보고 싶어요.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라도요. 그 계란이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작은 각도라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기쁠 거 같고요. 아주 작은 각도가 점점 벌어지면 커지잖아요. ‘학생’으로도 ‘학부모’로도 우리나라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대꼈던 데서 오는 고민인 거죠. 원래 적응 잘 하면 문제를 못 느끼잖아요. 부적응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의 문제(?) 그럼 적어도 저 같은 부적응자를 이해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게 되겠죠?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김수련 저 | 헤르츠나인
처절할 정도로 마음의 극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며 오히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의 외로움과 고통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도서 상세정보]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