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냄’의 이데아 같은 것
문학평론가 한영인, 더벙이와 호치와 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양이에 대해 무관심했다. 호오(好惡)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구에서 17광년 떨어진 어떤 별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때까지 고양이는 내게 도시의 풍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사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관심이 없으면 명백하게 존재하는 대상도 결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나는 이제껏 내가 한 마리의 고양이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알고보니 고양이는 길거리의 전봇대만큼이나 흔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을 전봇대와 함께 사는 일만큼이나 상상하기 힘들었다. 내가 꿈꾸는 ‘스위트 홈’엔 전봇대도, 고양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와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아지라면 모를까 고양이라니. 그런 것과 함께 사는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 즈음엔 알고 있었고 - 아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으므로- 그런 삶을 선택할 사람을 존중할 준비도 되어 있었지만 - 물론 나와 상관없는 한에서만 - 그것이 막상 내 일이 되자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생명과 함께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선 두려움을 안겨주기 마련이라고, 지금도 나는 그때의 나를 변호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그녀는 대형마트의 판촉사원처럼 ‘1+1’을 타협할 수 없는 구호처럼 내걸었다. 좋게 생각하면 아내도 얻고 고양이도 얻는 것이지만 사실은 아내와 고양이의 결합에 내가 덤으로 얹혀가는 기분이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더벙이였다.
그렇게 아내와 더벙이, 그리고 나는 제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미지의 생명체이기는 하나 다행히 고양이가 ‘캘빈’ - 영화 <라이프>에 나오는 외계 괴물의 이름이다 - 과 같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의 동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오히려 동거가 끝난 뒤에 생겼다. 제주로 내려온 더벙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낯선 곳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고 그간 쌓여왔던 서로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더벙이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해버렸다. 아내가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가버린 것이 반드시 더벙이가 죽어서는 아니었겠지만 더벙이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갈등은 좀 더 쉽게 봉합되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어정쩡한 봉합보다는 화끈한 폭발이 부부 사이에는 더 나을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는 돌아왔고 나는 그녀에게 고양이를 다시 키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건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 당신의 기쁨과 소망을 더욱 존중하겠다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마침 제주도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 고양이를 분양한다는 게시글을 본 터였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낳아놓고 도망가 버렸는데 그걸 공사장 현장소장님이 거두어 보호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사기일이 끝나버리면 다시 육지로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급하게 분양처를 알아보고 계셨다. 우리는 고양이를 보러 갔다. 입양할 경우를 대비해 내가 단단히 일러두었다. 만약 하게 되어도 한 마리만이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장 컨테이너에 가보니 고양이는 두 마리밖에 없었다. 한 마리는 죽고 두 마리는 다른 분께 입양되었다고 했다. 생쥐만한 고양이 둘이 서로를 깨물며 뒹굴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둘을 떼어놓을 수 없음을, 그건 둘 모두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얼마 후 우리는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각각 ‘호두’와 ‘치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는 둘을 묶어 호치형제들이라고 불렀다.
형제는 용감했다. 형제라서 용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용감했다.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숨어있거나 어미를 찾으며 야옹야옹 울지 않고 씩씩하게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내는 여전히 더벙이를 잊지 못했지만 더벙이에게 미처 주지 못한 애정을 호치 형제들에게 듬뿍 쏟았다. 호치 형제들은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풍선처럼 쑥쑥 자랐다.
고양이들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녀석들도 인간처럼 ‘함께 있음’의 기쁨과 위안을 누리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호치는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꼭 붙어 지냈다. 잠시 방에 들어가 할 일을 하다 호치들을 찾으면 녀석들은 밀회 현장을 들킨 것처럼 조금 부끄럽게 놀랐다.
둘은 먹을 걸 가지고 결코 다투는 법이 없다. 몸집은 치즈가 더 크고 그래서 힘도 더 세지만 호두가 먼저 머리를 들이대면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호두는 엄마의 품이 그리울 때마다 치즈의 품을 파고 들어 녀석의 젖을 빤다. 억지로 떼어 놓으면 치즈의 가슴팍은 호두가 묻힌 침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 성가실 법도 한데 치즈는 언제나 호두를 위해 제 가슴을 내어준다(그런데 요즘에는 못 참겠는지 뒷발로 호두를 걷어차곤 한다.)
나는 종종 호치 형제들을 일러 ‘잘 지냄’의 이데아 같은 것이라고 부르곤 한다. 정말 그 둘은 잘 지낸다. 호치들이 꼭 껴안은 채 우리를 보는 눈빛엔 그러니까 너희들도 싸우지 말고 우리처럼 잘 지내라고 써있는 것만 같다.
한 번의 아픔을 겪은 우리는 호치들과 우리가 함께 보낼 날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지금의 평온이 어느 순간 깨져버릴 수 있다는 불안도 가슴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유한한 생명들끼리 유한한 시공간에서 우연히 빚어내는 감정의 형상들을 조금 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기도 한다.
죽은 더벙이는 집 마당 한편에 있는 한라봉 나무 밑에 묻었다. 우리는 집에 들어오기 전 가끔 더벙이가 묻힌 곳을 둘러보곤 한다. 얼마 전에 확인해보니 나무에 작은 열매가 맺혔다. 더벙이가 마치 둥그런 열매로 환생한 것 같았다.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그렇게 더벙이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더벙이와 호치와 우리는 그렇게 산다. 한 마당에서,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끼리, 사라진 것은 더불어 그 영혼과 함께. 이 기이한 동거가 계속되길 빈다.
글ㆍ사진 | 한영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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