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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대, 독일 군대, 그리고 한국 군대

‘의사(疑似) 가족’으로서의 내무반

그 시절 나는 ‘곡괭이’로 화장실 청소를 했다!

1982년 초, 강원도 화천 백암산의 겨울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훨씬 더 내려가는 듯했다. 눈이 한번 내리면 겨울 내내 녹지 않았다. 흰 눈이 쌓인 들판에는 까마귀가 참 많았다. 하얀 들판과 까마귀는 묘하게 어울렸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30개월을 꼬박 참으로 낯선 풍경의 이곳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정신없는 한 주의 훈련이 끝나고 주말 휴식 시간이었다. 이름만 휴식 시간일 뿐 대부분 ‘사역’을 나가야 했다. 훈련소 조교는 나를 비롯한 두세 명의 훈련병에게 곡괭이와 삽을 주며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내보냈다. 분뇨를 퍼내기 위한 바가지 같은 도구를 주지 않고, 왜 곡괭이와 삽을 주는가 의아했다. 하지만 바로 깨달았다. ‘푸세식’ 화장실에는 훈련병들의 분뇨가 차곡차곡 쌓여 산처럼 뾰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찌를 듯한 위세로 서 있는 분뇨 얼음탑 때문에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한 변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곡괭이로 그 얼어붙은 분뇨를 깨야 했다. 그렇게 깨진 분뇨를 삽으로 평평하게 다지는 것이 화장실 청소였다.

 

화장실 사역을 마치고 페치카의 참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따뜻한 내무반에 조금 앉아 있으려니, 다른 훈련병들이 코를 막으며 우리에게 욕설을 퍼 붓는다. 냄새가 난다는 거다. 도끼와 삽으로 분뇨를 깰 때, 군복에 튀어 붙었던 얼음조각들이 녹으면서 나는 냄새였다. 아, 그때의 그 얼음 조각들은 내 얼굴에도, 머리카락에도 튀었었다.

 

도끼와 삽으로 하는 화장실 청소는 한국의 전방 군대에서만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일한 장면을 최근 일본의 한 흑백영화에서 봤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그 영화 속에서도 일본군 졸병들이 곡괭이를 가지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사역 몇 명” 하며 졸병들을 불러내는 것도 똑같았다. 1959년에 제작된 영화 「인간의 조건」은 일본의 소설가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자전적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人間の條件)』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은 1955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1,500만 부 넘게 팔렸다. 감독은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다. 영화는 3부작으로 거의 10시간에 가까운 대작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던 1943~1945년의 만주가 영화 배경이다. 좌익 사상을 가진 주인공 ‘가지’는 의미 없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만주 광산의 노무관리자를 지원한다. 군대와 다를 바 없는 만주 지역 광산에 파견되면 소집면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포로들에 대한 일본 현지 관리자들의 잔인한 처우에 그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가지는 광산에서 쫓겨나 관동군에 강제징집 된다. 군대에서도 고참들과의 갈등은 계속되고, 졸병들에 대한 가학적 내무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일본군이 소련군에 패하자 가지는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 내에서도 일본 군대의 내재적 비인간성에 절망한다. 포로수용소 탈출에 성공한 그는 아내 ‘미치코’에게 돌아가려고 눈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쓰러진다. 눈은 계속 쌓여 그의 몸을 덮어버린다.

일본 군대, 독일 군대, 그리고 한국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 감독의 1959년 영화 「인간의 조건」의 한 장면. 내무반의 야간 점호 장면이다.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자전적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人間の條件)』 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은 1955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1,500만 부 넘게 팔렸다. 영화에 나오는 일본 관동군의 내무반은 내가 경험했던 1980년대 한국 전방부대의 내무반과 거의 똑같다. 야간점호의 ‘정원 몇 명, 현재 인원 몇 명’ 어쩌고 하는 보고 방식까지 동일하다.

영화를 보다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음을 기억해냈다. 주인공 가지의 부인이 만주의 군부대까지 면회 왔을 때의 장면 때문이다. 면회가 불가능한 곳까지 가지를 찾아온 부인의 지극정성에 감동한 가지의 부대장은 창고 한 구석을 치우게 하고 둘이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해준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가지는 부인에게 옷을 다 벗고 희미한 빛이 비치는 창문가에 서 달라고 부탁한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아내의 벗은 몸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에로틱한 장면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겐 너무 인상적이었다. 40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내가 이 장면을 읽으면서 무척 많은 상상을 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 관동군의 내무반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 군대 문화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 내무반의 모든 장면이 내겐 너무 익숙했다. 옆으로 나란히 누워 자야 하는 침상의 구조는 물론, 총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총기대도 80년대 초반의 한국 군대 내무반과 똑같았다. 매일 밤, 부동자세로 점호를 하는 방식도 너무 익숙했다. ‘총원 몇 명, 현재 인원 몇 명’ 어쩌고 하는 보고자의 구호와 사병들이 침상 끝에 서서 순서에 따라 목청껏 번호를 붙여 내무반의 현재 인원수를 확인하는 방식도 너무 똑같았다. 뿐만 아니다. ‘쫄병’을 괴롭히는 고참들의 행태도 너무 익숙했다. 구타로 시작해서 구타로 끝나는 내무반 생활도 40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거의 동일했다. 맘에 안 들면 ‘엎드려 뻗쳐’ 같은 기합을 주는 방식도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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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간의 조건」에서 고참이 화장실 앞에 소대원을 집합시켜 기합 주는 장면. 1940년대의 일본 관동군과 198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군대의 일상은 너무나 흡사하다.

내 군대 시절, 중대장은 아버지 같은 역할이고 선임하사와 같은 준사관이 맡은 ‘인사계’는 어머니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의사(疑似) 가족’으로서의 내무반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 군대에 이미 존재하던 이데올로기였다. 당시 일본 육군에는 ‘군대내무서(軍隊內務書)’라는 것이 존재했다. 거기에는 ‘군대에서 상관은 부모다. 따라서 부모를 받들 듯이 상관을 모셔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가족이 군대의 기본단위라는 것이다. 내무반에서의 구타와 처벌은 부모의 훈육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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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상세정보

기억해보니 내가 읽었던 ‘군대 소설’에서 내가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던 내용들은 대부분 이 비인간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내무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는 군대 시절 ‘진중문고’에 꽂혀 있었다. 레마르크의 또 다른 소설 『개선문』 도 그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개선문』 은 내 연재의 제목인 ‘인터벨룸’처럼 전쟁과 전쟁 사이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나치에게 쫓겨 파리로 도망한 주인공은 개선문 부근 카페에서 여인을 만나기만 하면 ‘칼바도스’를 마셨다. 지금도 나는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때마다 면세점에서 칼바도스를 사온다. 내 군대 시절 백암산 참호에서 읽은 ‘포켓문고’는 이토록 두고두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보기 드문 일본식 문고판은 야전 상의의 포켓에 쏙 들어갔다. 내무반에서 쫄따구가 맘 편하게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훈련을 나가거나 철책에 투입되면 꺼내 읽었다. 물론 같이 투입된 고참이 쫄따구의 독서를 참아줄 수 있는 ‘선한 고참’인 경우에 한해서였다. 흥미롭게도 둘만 있을 때 ‘악한 고참’은 별로 없었다. 고참은 집단으로 있을 때 악마가 된다.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한 내 비관적 태도는 이때부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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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토마스 주연의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79년에 제작된 이 영화보다는 1930년 미국에서 제작된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가 더 인상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왼쪽 뺨의 점이 인상적인 「윌튼네 사람들」의 큰아들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1929년에 출간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인간의 조건』 처럼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출간된 바로 이듬해인 1930년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게오르그 파프스트(Georg Wilhelm Pabst)가 「서부 전선 1918년(Westfront 1918)」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파프스트의 영화가 베를린에서 상영되었을 때, 나치 추종자들이 영화관에 난입하여 영화 상영을 방해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영화감독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이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마일스톤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1979년에 미국의 영화감독 델버트 맨(Delbert Mann)이 제작한 것도 있다. 이 영화에는 한국에서도 한때 무척 인기가 있었던 「월튼네 사람들」에서 작가 지망생의 맏아들로 나왔던, 왼쪽 뺨에 특이하게 큰 점이 있는 리차드 토마스(Richard Thomas)가 주연을 맡았다. (최불암과 김혜자의 「전원일기」는 「월튼네 사람들」을 제대로 베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1930년에 만들어진 마일스톤의 영화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 또한 훈련소에서 아주 집요하게 잔인한 하사 ‘히멜슈토스’를 만난다. 입대 전 우편배달부였던 히멜슈토스는 훈련소의 조교를 맡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서 히멜슈토스는 새디즘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훈련소 하사가 “우리 부모, 우리 교육자, 그리고 플라톤에서 괴테에 이르는 모든 문화계 인사를 합친 것보다 더욱 막강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경례, 부동자세, 분열 행진, 받들어총, 우향우, 좌향좌, 뒤꿈치를 맞붙이며 차렷하기, 욕지거리 및 온갖 부당한 횡포…. 우리는 이내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고 고백한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홍성광 역,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열린책들, 2006년, 31쪽

일본 군대, 독일 군대, 그리고 한국

1930년에 제작된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의 훈련 장면. 대한민국 군대의 제식훈련은 일본 군대에서 건너 왔음이 분명하다. 일본 군대의 제식훈련 역시 독일 군대의 제식훈련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다음 연재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히멜슈토스가 ‘군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온갖 악행에 대한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고발이 당시 이등병이었던 내겐 얼마나 공감이 되었던지, 지금도 위 문장을 읽었던 참호 앞의 스산한 갈대밭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최전방에서는 봄가을이면 ‘화공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휴전선 철책 앞뒤에 자란 풀과 나무들을 태웠다. 적의 침투를 확인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화공작전이 지나간 자리는 갈대밭이 되었다. 봄이 되기 전 갈대밭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아주 스산하게 흔들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파울 보이머의 질척이는 참호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관동군 가지가 헤매던, 끝없이 펼쳐진 만주의 겨울 들판이나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 김정운이 넋 놓고 바라보던 갈대밭이나 말단 소총수가 느끼던 감상은 똑같았다. 1910년대 후반의 독일 군대를 그린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와 1940년대의 만주의 일본 관동군의 실상을 그린 소설 『인간의 조건』 의 주인공 ‘가지’와 1980년대 초반의 화천 한국 군대의 이등병 ‘김정운’이 경험한 군대 내무반 생활 공통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글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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