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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허물없도록 터 주는 게 먼저

『아들아, 콘돔 쓰렴』 이은용 저자 인터뷰

익숙하고 허물없도록 터 주는 게 먼저

‘성’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럽고 어색하던 시절에 성장한 부모 세대는 아이들과 성을 주제로 친밀하게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들아, 콘돔 쓰렴>은 아들을 위한 솔직한 성과 페미니즘 이야기다. 1장. 몸 - 무릎 / 넓적다리 / 엉덩이 / 눈 / 발 / 손 / 입 / 가슴 / 생식기, 2장. 몸짓 ? 자위 / 포르노 / 숨 / 컵 / 골목 / 처음 / 입맞춤. 도발적인 목차에는 부실한 성교육과 한국 사회의 막힌 흐름 때문에 감추기 일쑤였던 ‘18?19금’ 이야기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담겼다.

 

긴 시간 올곧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 기자였고 현재도 뉴스타파의 객원 기자로 활동하는 이은용 저자는 성에 무지했던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이리저리 부딪치며 깨달은 몸짓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은 어떻게 전달하고, 몸은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글마다 달린 평등 열쇳말은 깜깜한 밤 뒤따라오는 사람 발걸음 소리가 크게 두렵지 않은 삶, 오랫동안 ‘남자로 태어나 다행’인 삶을 살아왔다는 자각의 과정이자 세상을 성평등의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이다. 이롭고 재미있어 잘 읽히는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성교육처럼 민감한 주제를 꺼내기를 부담스러워하시는데, 선생님도 비슷한 입장이라서 이 책을 쓰게 되셨나요?

 

네, 큰 차이 없이 거의 같을 겁니다. 보통 때 성을 두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 없는데 갑작스레 “○○야, 이리 잠깐 와 볼래”라며 같이 사는 친구를 탁자 건너편으로 부를 수 있나요. 쉽지 않죠. 불러 앉히고는 “얘야, 성이란 말이다”라고 입을 뗄 수 있습니까. 어렵죠. 하하! 저와 같이 사는 친구는 더구나 10대인지라 더운 피가 빨리 돌 때입니다. 사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아빠와 이삼십 초를 넘겨 마주하기 힘들게 마련이죠. 하고픈 말 많은 아빠야 같이 사는 친구를 탁자에 진득이 앉혀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는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벗에겐 거의 고문일 겁니다. 하여 하고픈 말과 꼭 할 얘기를 책에 담으려 애썼고, 조용히 “선물”이라며 건넸죠. 비슷한 어려움과 같은 생각 가진 여러 아빠에게 『아들아, 콘돔쓰렴』 이 쓸모 있기를 바랍니다.

 

아들을 함께 사는 벗이라고 표현하신 게 인상적입니다. 평소에 가족과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고 일상을 나누시는지요?

 

보통 가정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함께 밥 먹다가 이런 말 툭, 같이 TV 보다가 저런 얘기 툭 던지는 거죠. 누군가 건넨 말이 우스우면 함께 웃고, 아니면 더불어 이런저런 얘기가 덧붙기도 합니다. 음. 얼마 전 함께 TV 바라보다가 화면으로부터 불거진 ‘남자다움’을 두고 몇 마디 말과 웃음이 오갔는데요. 같이 사는 친구가 “우리 집에선 남자가 남자다울 수 없다. ‘남자다움’이란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느냐?”고 묻자 “서열상 엄마가 맨 위이기 때문”이라더군요. 저와 제 짝은 한바탕 와르르 웃고 난 뒤 “그럼, 넌 서열상 몇 위냐”고 물었죠. “중간”이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선 아빠 서열이 가장 낮다’는 거죠. 녀석이 제대로 짚은 듯합니다. 제 서열이 가장 낮은 거죠. 하하! 우스개였는데요. 집안에 무슨 서열 같은 게 있겠습니까. 부러 만들거나 이미 있어선 곤란하겠고요. 가족 누구나 위아래 없이 고르고 판판해야 한다고 저는 여깁니다. 마음과 생각을 그리 다지다 보니 저는 꽤 오래전부터 ‘집사람’이나 ‘아내 ㅡ 내권(內眷)’ 같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먼저 짝을 ‘같이 사는 친구’라 일컬었고, 자연스레 아들도 벗으로 말하게 됐죠.

 

야한 소설이라도 읽는 것처럼 조금 자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거 정말 아들 손에 들려줘도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라 믿습니다. 아빠가 아들 사랑하는 마음 담아 꾸밈없이 말하려 애쓴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닐 테니까요. 그 친구가 곰곰 생각해 보겠죠. 아빠가 왜 그랬을까, 무슨 뜻 담긴 걸까 하고. 음, 네, ‘자극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거듭 들여다보며 곰곰 짚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재미있게 써 보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였죠. 그리 생각했으되 잔재주를 피우기보다 ‘제대로 전해 보자’는 데 마음 무게를 더 기울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0년쯤 기자로 살며 다진 ‘사실 그대로 전하려는 마음’이 더욱 컸다는 거죠. 그리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각 글마다 평등 열쇳말을 붙인 의도는 무엇인가요?

 

나침반이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누구나에게 고르고 판판한 쪽을 가리키는 지표 같은 거. 누구나에게 고르고 판판하려면 어찌 말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가늠해 볼 때 쓰이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특히 제가 짝과 함께 20년쯤 살며 깨졌고, 깨져 깨달았으되 바꾸는 데 게을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낱말도 우려내 봤습니다. ‘설거지’와 ‘걸레질’과 ‘명절 놓기’ 같은 건데요. 짝과 함께 산 20년이 낱말 안에 고스란하죠. 무엇보다 ‘설거지’는 고르고 판판한 집안 삶을 위해 스스로 시작한 일이요, 곰곰 짚어 보며 더 좋아지려 애쓴 일인 터라 제겐 유난히 아름다운 낱말입니다.

 

청소년기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성교육에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세요?

 

콘돔에 익숙하고 허물없도록 터 주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성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콘돔을 미리 마련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밀 수 있어야겠죠. 한국 사회에선 콘돔을 두고 주춤주춤하거나 낯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어릴 때 그게 무엇인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콘돔을 미리 갖추거나 내미는 것을 두고 ‘이 친구, 혹시 되바라진 것 아닐까’ 하고 의심하거나 ‘친구가 나를 되바라진 사람으로 알면 어쩌지’ 싶어 걱정이 앞서는 게 한국 젊은이들 모습인 성싶은데요. 어릴 때부터 그게 무엇이고 어찌 써야 하는지 잘 알수록 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성에 대한 선생님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말씀해주신다면?

 

글쎄요. 뚜렷하게 ‘이거다!’ 하고 따로 짚어 본 적은 없습니다. 물어보시니 곰곰 짚어 보자면, 존중과 즐거움?! 먼저 존중. 높이어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죠. 누구나 고르고 판판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높이어져 귀중해진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즐거움. 즐거운 느낌이나 마음. 그다음엔? 절로 웃고, 아름다운 사랑 꽃피겠죠.

 

이 책을 읽을 스무 살 전후의 아들들에게 한 말씀 남겨 주세요.

 

콘돔 미리 갖추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콘돔 건네면 고마워하시고요.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익숙하고 허물없도록 터 주는 게 먼저
아들아, 콘돔 쓰렴

이은용 저 | 씽크스마트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은 어떻게 전달하고, 몸은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주며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성을 생각하도록 돕는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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