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시니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펴내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
인터뷰는 편집의 예술이다. 인터뷰어가 취사선택한 이야기들로 인터뷰는 완성된다. 누군가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답을 들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때때로 오해한다.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줄 알고.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은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6년간 <한겨레> 토요판에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122개의 인터뷰 가운데 12편을 묶은 인터뷰집이다. 이진순의 인터뷰가 책으로 묶인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신문으로 읽는 인터뷰와 책으로 묶인 인터뷰의 농도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너무 서정적인 느낌의 제목이라서. 독자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겠구나 생각했는데, 12편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이유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는 ‘열림’ 연재를 마치며 <한겨레> 셀프 인터뷰를 했다. 기사를 읽다가 나는 하나의 문장을 발견했다. “누구든 80%는 소심하다가 아주 가끔 용감해지고, 80%는 이기적이다가 아주 가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진순 인터뷰가 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 사랑을 받았을까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이진순은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대중이 보는 80%만 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하는 20%를 볼 줄 알았기에 어떤 이를 만나도 실망하지 않았고, 무작정 찬사만을 늘여 놓지 않았다.
이진순이 만난 122명은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7쪽)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를 알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그 중 12명의 이야기가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에 담겼다.
사람을 탐구할 땐 시그널을 읽어야죠
언제 나올까, 기다린 책이었어요.
1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작업이 길어졌어요. 책이 나올 무렵, 우연찮게 <한겨레> 연재를 끝내게 돼서 시원섭섭한 마음이 었었는데 그래도 책 때문에 위안이 좀 됐어요.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책을 준비한 건 아니에요.
12명 인터뷰는 출판사에서 골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도저히 못 고르겠더라고요. 누구는 싣고 누구는 안 싣기가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독자 입장을 고려해서 골라달라고 부탁 드렸죠.
2013년 6월에 시작해 올해 7월까지, 만 5년 2개월간 122명을 만났어요. 격주 연재였기 때문에 일정을 쫓아가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풀타임으로 일하는 느낌이었어요. 최소 4시간, 1박2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고. 취재 노트만 17권, 녹취록은 라면 상자 네 박스가 나왔어요. 긴 시간을 내준 인터뷰이들에게도 감사하고, 6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취재에 동행해준 강재훈 사진기자, 매회 녹취를 성실히 풀어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커요. 혼자서는 이 작업을 못했을 거예요.
전작 『듣도 보도 못한 정치』 를 함께 펴낸 편집자와 또 작업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셨다고요.
『듣도 보도 못한 정치』 가 조금 까다로운 구성이 필요한 책이었어요. 글 쓴 사람의 의도와 취지를 잘 공감해주시는 분이 작업해주시길 바랐는데 황은주 편집자님이 굉장히 꼼꼼한 분이라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한겨레> 연재할 때, 팩트 체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정말 아무도 모를 거야 싶은 부분까지 체크했는데, 황은주 편집자님은 저보다 더 꼼꼼하게 확인해주시는 분이라 믿음이 갔어요.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저도 제 문장을 고치는 걸 안 좋아하는데, 황 편집자님이 고치는 건 오히려 제 문장보다 좋더라고요. 이번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책 기획 회의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는지를 물으셨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따져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애당초 좌절을 딛고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인물을 찾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누구나 그렇듯, 제가 인터뷰한 분들도 유약하고 소심한 보통 사람들이에요. 다만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분들이죠.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죠. 모든 사람은 한순간 반짝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엔 ‘당신의 순간’이라고 제목을 붙여볼까 하다가, 좀 밋밋한 것 같아서 서문에 나오는 문장을 갖고 왔어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자꾸 곱씹게 되는 제목이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어요.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생각해요.
김혜연, 이국종, 노태강, 임순례, 최현숙, 구수정, 이은재, 손아람, 장혜영, 윤석남, 황석영, 채현국. 열두 명의 공통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어요. 첫째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 지를 아는 사람, 둘째는 자신이 미화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 셋째는 사회적감수성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인물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요. 머릿속에 기준 같은 건 없었어요. 세상에 훌륭한 사람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만나보고 싶고, 말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사람을 희망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시니컬하거나 염세적인 분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이국종 아주대 교수님도 말투만 보면 되게 시니컬하게 느껴지지만 다 거짓말이에요. 제가 맨날 “뻥 치지 마세요”라고 그래요. (웃음)
이국종 교수님이 하는 일들을 보면, 시니컬 한 사람일 수가 없죠. 말투는 까칠하더라도요. (웃음)
그래서 인터뷰하면서 자꾸 물어봤어요. 그동안 얻은 게 뭐냐고. 처음에는 삐딱하게 말하셨지만 결국 대답하셨죠. 동료들을 얻었다고. “바보처럼 순박하고 사심 없는 사람들을 얻었다”고. 겉으로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와 달리 마음속에는 사람에 대한 의리, 신뢰가 있는 분이셨어요.
다큐멘터리 작가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국종 교수님 인터뷰는 한 편의 다큐, 단막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잠시 침묵)’ 같은 지문도 등장하고, 대답이 “……”인 것도 있어요.
녹취를 부탁할 때, 기침 소리, 한숨 소리 하나 빠뜨리지 말고 적어달라고 했어요. 물론 저도 계속 메모하면서 들었고요. 답이 없는 것도 제겐 대답이었거든요. 질문과 답변 사이의 텐션도 저는 인터뷰의 답으로 받아들였어요.
시그널도 대답으로 읽으신 거네요.
인터뷰는 큐엔에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단일 이슈를 다루는 인터뷰는 질문과 답이 딱 떨어지겠지만요. 사람을 탐구하는 인터뷰에서는 시그널을 읽어야죠.
보통 100개의 질문을 준비하신다고요?
사전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질문지를 보내 달라는 분들도 가끔 있었는데요. 개괄적인 질문은 보내주더라도 전체 질문지를 보내 주진 않았어요. 현장에서도 안 보여주려고 질문지를 손으로 숨기면서 했어요. (웃음)
그런데 첫 인터뷰 원고(윤종수 전 판사 편)는 담당 에디터에게 퇴짜를 맞으셨다고요. 초안만 세 번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 주제가 저작권 공유 운동이었는데요. 저도 미디어를 전공했고 석사 논문은 저작권으로 썼기 때문에 질문이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예요. 아마 그 분이 쓴 논문을 거의 다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공부를 너무 많이 하고 만나서 인터뷰가 학술 토론이 돼버린 거죠. 너무 어렵다, 재미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듣고 다 뒤집고 새로 썼어요. 원고 첫 문장을 “미련일까, 몽상일까”로 썼는데 맨 마지막 버전에서 나온 거예요. 나는 그냥 나의 에세이를 쓴다고 생각을 바꾼 다음에 나온 문장이에요.
왜 자꾸 이런 질문만 할까?
에필로그에 12분의 인터뷰 후기가 실렸어요. 내가 이 책의 저자라면 울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출판사에서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주신 글이에요. 신문 지면에 이미 나온 글이지만 보완을 많이 했거든요. 책이 나오기 전에 열두 분께 최종 원고를 보내 드렸는데, 몇 분께서 짧은 감상이 있는 인터뷰 후기를 보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보낸 게 아니고 출판사 편집자가 받으신 거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다른 분들께도 물어 보셨나 봐요. 짧은 소감을 써줄 수 있겠냐고, 그렇게 받은 글인데요. 솔직히 말하면 민망하고요. 창피하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그 분들에 대해 인터뷰 원고만 썼지, 그 분들이 저에 대해서 한 말들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기사가 나가고 연락을 주신 분도 있었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해준 거랑은 다르니까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임순례 영화감독의 글이 기억나요. “인터뷰어는 인터뷰이를 무장해제해 내면의 소소한 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해내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나의 평범한 답변에 의미와 윤기를 넣어 아름답게 채색해준 이진순의 인터뷰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여기서 제가 밑줄 친 문장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인데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정확하게 봐줄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터뷰가 나가고 간혹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라는 게, 인터뷰어를 통해 한 사람을 보는 거잖아요. 발견하고 싶은 부분, 발견 당하고 싶은 부분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떨 때는 이 사람은 왜 자꾸 이런 질문만 할까? 이해가 안 갈 거예요. 하지만 기사를 보면 아는 거죠. 인터뷰어가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했는지.
황석영 작가는 “까맣고 잊고 있었던 내 숨겨진 과오들이 드러나는 고통과 자책도 느낄 수 있었다.”고 평하셨어요.
황 작가님 인터뷰는 즐기면서 했어요. 두 번에 걸쳐 진행했는데요. 아시겠지만, 글을 쓸 때 인터뷰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 쓰진 않잖아요. 더 내밀한 개인사도 있고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맥락상 필요한 이야기는 여쭤봐요. 안 쓸 테니까 이야기해달라고 하죠. 제가 무슨 특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어떤 삶의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의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는가가 제가 궁금한 점이니까요. 좀 더 내밀한 부분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죠. 황석영 작가님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은 오랫동안 생각한 문장이에요.
“황석영은 흠결이 적지 않다. 그러나 투명하다.”(285쪽)고 쓰셨습니다.
황 작가님은 위악적으로 표현하면 했지, 위선적인 걸 못 참는 분이에요. 골방에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죠. 작가로서 가장 큰 미덕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잘한 일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만, 언제나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작가. 도망가지 않으려고 한 작가의 의지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제가 본 황석영 작가의 반짝이던 순간이죠.
윤석남 화가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아요. 제목이 “핑크 소파를 박차고 나온 ‘우아한 미친년’”. 윤 화가는 “나의 이야기가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면 참 좋겠다.”고 후기를 보내오셨어요.
윤석남, 고은광순, 윤종수 선생님 같은 분은 살면서 점점 훌륭해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 윤석남 선생님은 화가로서의 명성이 아닌 작품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시거든요. 내가 좋아서 미술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생활인으로서는 부족했던 부분, 며느리로서는 빵점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다 해주셔서 참 좋았죠.
인터뷰를 자주 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자신을 지나치게 미화할 때’인 것 같아요. 물론 미화해주길 원하는 분도 있지만요.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 제게 특별하게 읽힌 건, 한 사람, 한 시민으로 인터뷰이를 바라본 시선이었어요. 물론 인터뷰를 할만한 사람이 된 건, 조금 특별한 일을 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찬사, 공로를 앞세워 인터뷰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만난 122분을 떠올려보면요. “나를 좋게만 쓰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신 분이 많았어요. 이 분들이 과연 제게만 이 말을 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원래 그런 분들이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고요. 그 분들이 하는 말이 저는 이해가 돼요. 사람이 한 사람을 칭찬하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오류의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처음부터 정의로웠고 불의를 참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봐요. 누군가 나를 두고 정의로운 삶의 표본으로 그린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자괴감이 들 수도 있고요.
스스로 원치 않을 거고요.
그렇죠. 그리고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 사람 진짜 대단하네, 나는 정말 이렇게는 못 살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사람들도 수없이 회의하고 소심해지고 때려 칠까 고민했다는 점이에요. 그 분들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어떤 대목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던 거고요. 돌아보면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함부로 들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죠.
‘이진순의 열림’ 시즌2가 기다려지는 데요.
체력이 달려서 못한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만두고 나니 ‘아, 이 분은 만나고 그만둘 걸 그랬나?’ 싶은 분들이 자꾸 보여요. (웃음)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안 알려진 훌륭한 사람들을 격주로 찾아내냐?”고 묻곤 했는데, “잘 찾아보면 있어”라고 이야기했죠. 누구든 잘 찾아보면 찾을 수 있거든요. 기자들이 자주 물었어요. “막상 만나보고 나니 별로인 사람은 누구였냐?”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어요. 생각보다 이야기를 깊이 못해서 아쉬울 때는 있었지만, ‘훌륭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별로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완벽할 거라는 기대를 안 하고 만나셨으니까요.
맞아요. 물론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죠.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살짝 무시하는 느낌? 어리게 보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고요. 약속 시간을 많이 늦은 분께는 그냥 물었어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대답을 듣고 쓸만한 이야기다 싶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안 썼죠. 인터뷰하는 동안은 대등한 위치에서 말하려고 했어요.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분을 만날 때도요.
‘내가 궁금한 것과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 사이의 비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겐 가장 큰 숙제예요.
아. 저도 묻긴 다 물어요. 하지만 쓰는 이야기가 있고 안 쓰는 이야기가 있죠. 다만, 내가 이 사람에게 왜 이것이 궁금한 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해요. 이국종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뻔하게 따라붙는 연관 검색어 같은 키워드가 있단 말이에요. 저도 물론 여쭤 보긴 했어요. 하지만 기사를 쓸 땐, 일반적으로 궁금해 하는 이야기는 제 서술로 간단히 쓰죠. 자료를 찾는 와중에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들도 많으니까요. 이 사람을 분석한 후에 궁금한 것들, 그 점을 많이 물어보려고 했어요.
편견을 갖고 만났는데, 부끄러워진 기억은 없나요?
되게 많죠. 거의 다 그래요. 책에 실린 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면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 이은재 씨 같은 경우는 인터뷰하러 갈 때만 해도 “나는 내 자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모성애를 상상하고 갔는데요. 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걸 느꼈죠.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경우에도 뭐랄까 굉장히 감정의 동요가 없는, 자기에게 부여하는 도덕성의 기준이 굉장히 엄격한, 삶의 기본 원칙이 확실한 분이셨어요.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분만 같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요.
평생 기억하고 싶은, 내 삶에 담고 싶은 말도 들었을 것 같아요.
인터뷰할 당시 제 문제, 관심사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2014년에는 너무 갑갑해서 어른을 만나고 싶어 채현국 선생님을 찾아간 거고요. 미투 열풍이 한창일 때는 안과 밖이 같은 작가를 만나고 싶어 윤흥길 작가님을 만났고요. 작년에 제가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로 선임되면서 이사진 내에서 벌어지는 혈전이 지긋지긋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이라면 너무 지치는 심정에서 이 현실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임순례 감독님을 만났어요. 감독님이 “별게 없는데 뭘로 이야기할 거냐”고 물으셨는데, “모든 일엔 다 이면이 있다”는 감독님의 말이 제게 중요한 키워드가 됐죠. 채현국 선생님을 생각하면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게 생각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남죠.
최근 『어른이 되면』 을 쓴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이 책에 실린 가장 최연소 인터뷰이가 아닐까 싶어요.
나이는 어려도 삶의 밀도가 빡빡한 사람이 있어요. 삶에 대한 달관이라고 할까요. 절대적 시간과는 무관한 삶의 경험치가 있는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손아람 작가님도 저보다 훨씬 젊은 분인데, 동년배 내지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인터뷰어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 무얼까요? 잘 들어주는 태도는 빼고요.
상대방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야죠. 진짜로 궁금한 것. 인터뷰는 아무 행담이나 나누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정말 궁금하지 않으면 뻔한 질문만 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이 시점에서 이 사람에게 뭐가 궁금한 걸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를 확실히 알아야죠.
12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너는 그럴 만해. 너는 다르잖아. 너는 원래 용감하잖아”같은 말이 잘못됐다는 건 알게 됐어요. <한겨레> 셀프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누구든 80%는 소심하다가 아주 가끔 용감해지고, 80%는 이기적이다가 아주 가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썼잖아요. 이 이야기가 그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대화의 스킬은 늘었나요?
모르겠어요. (웃음) 말과 글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어눌하다고 세련된 스킬이 없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일사천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고 뭉툭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길게 대화하다 보면 언어 스킬과 무관한 엑기스가 느껴져요. 함부로 들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죠.
인생의 현명함은 학벌과는 정말 무관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내 아이가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삶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청소년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 딸이 중학교 3학년인데 엄마가 쓴 기사를 챙겨서 읽은 티를 내진 않았는데, 가끔 보면 읽은 것 같더라고요. 우리 딸이 읽어보고 특히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어릴 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너무 멀리 있고 상상 속에서나 있으니, 그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별 게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죠. 이 책을 읽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그리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부족한 점을 봤다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어느 정도 사전 검증이 된 사람을 만나서 하는 말일지도 몰라요.
어디에선가 이진순의 인터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당분간 밤샘하는 일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안 쓰면 허전할 걸?”이라고 말하지만. (웃음) 글만 누가 써준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기자들이 “기사만 안 쓰면 기자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반면, 위대한 사람이 되길 꿈꾸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람은 꼭 위대한 일을 해야 할까요? 좋은 사람과 위대한 사람은 다른 걸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진 모르겠는데요. 말 그대로 사람 좋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과 세상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프런티어 역할을 하는 사람을 나눠 본다면, 그건 자기가 정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질상,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아요. 황석영 작가님을 본다면, 그 분이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선택한 걸까요? 저는 세상에는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살기 때문에 조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나는 위대해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소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선봉장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기본만 해도 돼, 내가 꼭 나서야 해? 그런데 왜 아무도 안 하지? 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싫어 죽겠는데’ 생각하면서 나서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 방식이 다 다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주변의 권유, 어떤 지시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기질인 것 같아요. 인생은 정말 알 수 없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운명의 주사위 같은 게 뚝 떨어질 수도 있고요.
‘이진순의 열림’이었어요. 선생님은 무엇이 열렸나요?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진짜로 많다는 생각? 진부한 것 같지만 사실이에요. 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더 현명한 솔루션을 찾길 바라는 사람인데요. 제가 서울 태생이고 비교적 좋다는 대학을 나왔고 유학도 다녀왔어요.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고요. 제 경험적으로 자연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좁은데, 인터뷰를 하면서 폭이 넓어졌어요. 그리고 인생의 현명함, 지혜로움은 학벌과는 무관하다는 걸 정말로 실감했어요. 지식인, 전문가주의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책무가 더 강할 뿐이에요.
선생님의 본업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물을 게요. 비영리공익재단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은 ‘와글와글한 군중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모토가 있잖아요. 올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하실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와글’은 개방, 공유, 연결이 중요 키워드예요. 청년층이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2030세대들이 좀 더 많은 사회적 참여,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해요. 그런 맥락에서 청년리더십캠프, 청년평화캠프 등을 기획해 청년들이 주체적인 정치감수성을 갖고 발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정치 분야에서 가장 뒤떨어진 게 디지털이에요. 기술적으로 못하는 게 아니라 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해요. 지금은 수평적 네트워킹이 가능한 시대잖아요. 정치적인 영역도 빨리 따라 가야죠.
글 | 엄지혜 사진 | 이관형
이진순 저 | 문학동네
평범한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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