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버내노 “제 만화는 괜찮은 상황이 별로 없어요”
KTOON 연재 웹툰 『괜찮아yo』 단행본으로 출간
만화의 소재를 위해 이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참 많다. 머피의 법칙 같은 날들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범하나 평범하지 않고 기쁘지만 슬프기도 한, 그런 누구가 나다. (중략) 인생은 힘들지만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뿐이다. ( 『괜찮아yo』 , 6쪽)
갑상선암 선고를 받았을 때, 버내노 작가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퇴사 후 KT 웹툰 플랫폼 ‘올레 웹툰’의 스타트 멤버로 뽑히며 정식 데뷔를 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독특하고 귀여운 그림과 솔직한 일상이야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병 생활을 하게 됐다. 이후 3년의 휴재를 끝으로 지난해 1월 ‘괜찮아yo’ 시즌2로 재기를 시작했다.
『괜찮아yo』 는 그녀가 KTOON에 연재 중인 웹툰의 일부를 담아 출간한 책이다. 버내노 작가만의 유머 코드가 묻어나는 사소한 일상, 가족과의 에피소드, 사랑,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힌 병에 대한 이야기까지 지난 5년간 그녀에게 일어난 시시콜콜하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유쾌한 그림으로 녹아 있다. 갑작스레 닥친 인생의 불행 앞에서도 버내노 작가는 ‘괜찮아yo!’를 외친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지금은 괜찮지 않은 삶이라도, ‘괜찮다’ 되뇌며 살다 보면 정말 괜찮은 날이 오기를.
잃어버린 성취감을 찾아준 책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책을 내는 게 소원이었다고요.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요?
책을 만드는 동안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살면서 가장 뿌듯한 일이에요. 가족의 자랑이 된 것 같아요. 웹툰 작가로 데뷔한 지는 5년 됐지만 3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책을 나온 걸 보니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이 들어요.
계속 웹 작업만 해왔기 때문에 책을 제작하는 경험이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웹에 연재한 웹툰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잖아요. 그런데 책은 주제별로 만화를 묶다 보니, 제 20대 때와 30대 때의 이야기가 혼재돼 있어 독자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또 제 웹툰에 있는 모든 텍스트가 손글씨잖아요. 이걸 책으로 만들기 위해 글씨를 전부 다시 쓰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보다 글씨 쓰는 작업이 더 어렵더라고요. 제가 필압이 센 편이라 손의 피로를 금방 느끼는데 연재와 병행을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연재를 잠시 쉬고 책 작업에 매진했어요. 빨리 폰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래도 평소에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좋아해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작업물이 나왔다는 기쁨이 커요.
웹툰 『괜찮아yo』 의 특징은 샛노란 배경이에요. 단행본에서 그 부분을 살리지 못해 아쉽지 않았어요?
제 욕심만 생각하면 모든 페이지의 배경을 노란색으로 하고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책은 빠르게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웹과 달리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매체잖아요. 배경이 노란색이면 독자분들의 눈이 너무 피로해질 것 같아 꾹 참았어요.
단행본 출간 소식을 전하고 난 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제 웹툰을 봐주시는 독자들은 굉장히 특별해요. 3년이나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제가 복귀하기를 기다리려 준 분들이거든요. 그동안 저에게 닥친 개인적인 불행을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에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니 ‘우리 작가님 이제 꽃길, 돈길만 걸으세요!’라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응원을 보내주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책 리뷰도 찾아봤는데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작가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책을 샀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하나하나 다 너무 감사해요.
처음 웹툰을 연재할 당시, 제목을 ‘괜찮아yo’라고 정했던 이유가 뭔가요?
3년간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돼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다시 취직해야 하나, 웹툰 작가라는 꿈에 한 번 도전해봐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거든요. 그때 문득 ‘안 괜찮은 상황이지만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안 괜찮지만 괜찮은 척 하며 사는 이야기라는 의미로 ‘괜찮아yo’라고 지었어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공감해주실 것 같았죠. 제목은 ‘괜찮아yo’이지만 ‘괜찮을 거야’라는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습을 나타낸 거예요. 괜찮지 않은 삶이어도, 다들 괜찮은척 하고 살아가잖아요. 제 만화는 들여다보면 괜찮은 상황이 별로 없어요.(웃음) 그런데 제목을 ‘괜찮아yo’라고 지어서 그런지, 어느 순간 정말 괜찮아지는 면이 있더라고요.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솔직하게
퇴사 후 시작된 웹툰작가의 삶은 어땠어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웹툰 작가가 쉬운 일을 하는 직업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회사 때려치우고 집에서 그림이나 그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고,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도전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더라고요.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서 혼자 운영하는 기분이었어요. 소재 하나를 선정하는 것부터 그림을 그리고, 독자의 반응을 관리하는 것까지 다 혼자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힘들었죠.
아팠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2013년 7월 ‘올레 웹툰’에서 데뷔했고, 갑상선암이 발병해 1년의 연재를 끝으로 3년간 휴재를 했는데요.
흔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부르며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치부하잖아요. 처음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을 때도 3개월 정도면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특이케이스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갑상선 전절제를 해야 했고, 항암치료가 추가되면서 점점 치료 기간이 길어졌어요. 회복도 느려서 목소리가 나오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고 갑상선을 전부 제거했기 때문에 기능저하증이 와서 계속 살이 쪘죠. 그 후로도 2년간은 체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거의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또 갑상선암 치료를 하면서 몸 이곳 저곳이 많이 망가졌거든요. 급성 간염으로 입원하고 자궁근종 수술도 했고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다시 웹툰 작업을 하는 게 두렵진 않았어요?
두려웠어요. 갑상선암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의료진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으니까요. 저는 원래 예민한 성격인 데다가 만화를 전공하지 않아서 제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웹툰을 시작하고 1년간 지나치게 저를 많이 소비했던 것 같아요. 요령은 없는데 아마추어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욕심은 커서 시즌1 때는 하루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거의 저를 갈아서 만든 만화였죠. 그래서 휴재 중에도 계속 ‘내가 웹툰 때문에 암이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쉬는 동안은 한 번도 그림을 그린 적 없고요. 그런데 몸이 조금 나아지니까 문득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를 기다려 준 독자분들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요. 웹에서 아무리 인기를 끈 작품이라도 오래 자리를 떠나면 잊히기 마련인데, 계속 편지 보내주시고 힘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에게 왜 이렇게 늦게 올 수밖에 없었는지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한 후에, 이 일을 계속 할지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시즌2를 시작하는 기분이 남달랐겠네요.
데뷔할 때와 다르게 무척 묘했어요. ‘내가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 감격스러웠죠. 앉아 있기도 힘들었는데 이제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어요. 3년을 쉬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시즌2를 연재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어요. 웹툰 작가로 돌아오길 잘한 것 같으세요?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돌아오는 게 더 겁났을 거예요. 사실 시즌2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내가 공백기를 이기고 다른 작가들을 쫓아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작가들이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고, 단행본을 출시하고 이모티콘을 제작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 등 무언가 이룬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초조했는데 얼마 안 가서 그냥 이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욕심을 부리면 제가 또 힘들어지니까‘나는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하자’고 마음먹었죠. 아무래도 공백이 길었기 때문에 시즌1 때보다 구독자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저를 아예 잊으신 분도 많을 테고요. 처음 시작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아프기 전과 후,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가 있나요?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제 성격이 좀 괄괄하고, 외향적이라 학창시절부터 반장을 도맡아 했어요. 어디서든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써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난 뒤에는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됐어요. 지금은 ‘나부터 생각하자’는 마음이에요.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또 내 몸 어딘가를 아프게 할지 모르니까요. 아직 완치가 되지도 않았는데 아픈 곳이 또 생기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좀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살자고 자주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당당해진 것 같아요.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내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과잉친절을 베풀지 않게 됐어요. 제 감정에 솔직해졌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염세주의적이죠. 버내노 캐릭터도 사실 표면적으로는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만화 속에서 잘 살펴보면 화도 잘 내고, ‘어차피 그래봤자 다 안 될텐데 뭐!’라며 부정적인 말도 많이 해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도 염세주의적이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면이 많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서 그 반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독자 분들이 제 만화를 보고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면서 반성하거나 깨닫는 점이 많아요. 그분들이 저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사소한 기쁨은 물론 불행까지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하잖아요. 내 상황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그게 저인 것 같아요. 원래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고 솔직한 성격이거든요.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났다고 해서 숨기거나 억지로 포장해서 좋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얼마 전, 한 웹툰 작가님의 후기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는 웹툰으로 그리지 않는다’고 쓰신 걸 봤어요. 지금은 그게 현명한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중에 후회를 할 수도 있을 테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독자 분들이 제게 공감해주시는 것은 솔직함 덕분이니까 제게 일어나는 일에 한해서는 앞으로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yo’
마지막 챕터가 ‘가족이라 괜찮아yo’였어요. 끈끈한 가족애를 그린 만화들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제 만화는 이야기가 가벼운 것도 있고, 무거운 것도 있잖아요. 그중 무거운 내용은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은 훈훈한 느낌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독자 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길 바라요.
만화의 소재를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주제적인 면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를 제일 많이 생각해요. 그 외적으로는 내용에 있어 강약을 조절하는 게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해요. 무거운 이야기, 아팠던 이야기들을 그리면 저를 소진할 수밖에 없거든요. 마음 속 우물을 퍼서 다 써버리면 더 이상 연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하는 거죠. 계속 슬픈 이야기만 있으면 독자 분들도 힘들 테니까요. 아프고 불행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탈모로 고민하는 제 모습이나, 결혼에 대한 생각 등 가벼운 이야기를 자꾸 넣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얼마 전, 디즈니랜드에서 프로포즈 받은 이야기도 연재했어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그 에피소드를 그리고 나서 이걸 언제 해명해야 하나 고민했어요.(웃음) 남자친구가 자기 마음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는 의미로 프로포즈를 한 것뿐이었고,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남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것도 아니고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제가 복귀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돈을 더 모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서로의 일에 집중하자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냈어요.
이노안 작가와 오랜 연인이에요. 남자친구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출신이고 그림을 굉장히 잘 그려요. 반면 저는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게 늘 아킬레스건이었죠.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이 포즈를 그릴 때, 반대쪽 시선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와 같은 고민을 남자친구가 많이 해결해주죠. 단점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아닐까요? 둘 다 4대보험이 안 되는 비정규직이니까요. 또 매주 연재를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명확히 없어서 데이트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워요.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 그리는 만화는 제 일상을 담고 있고, 밝은 분위기이지만 사실 저는 어둡고 사회고발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다음 작품을 연재하게 된다면 범죄나 스릴러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요.
『괜찮아yo』 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가길 바라나요?
가볍게 보는 책이면 좋겠어요. 읽으면서 때로는 생각이 많아지실 수도 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퍼지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글 | 성소영 사진 | 한정구
버내노 저 | 세종서적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소심한 진짜 성격을 숨기고 남들 앞에서 활발한 척하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까지 작가의 진솔한 고백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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