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을 넘어서 『소피의 선택』과 『보이는 어둠』
“비테(뭐라고요?)” 소피가 말했다.
“네 아이들 중에 하나만 살려 줄 수 있다고.” 그가 다시 말했다. “다른 아이는 가야 하고. 누구를 데리고 있겠나?”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넌 유태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라며. 그래서 특별히 봐주는 거야. 하나라도 선택할 수 있게.”
…… 중략 ……
“제게 선택하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목쉰 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선택할 수 없어요.”
“그러면 둘 다 보내 버려.” 군의관이 부관에게 말했다. “나흐링크스(왼쪽으로.).”
“엄마!” 소피가 에바를 밀쳐 내고 비틀거리며 콘크리트 바닥에서 일어서자 에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어 댔다. “이 아이를 데려가세요!” 소피가 외쳤다. “내 딸을 데려가요!”
월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에 나오는 잔혹한 장면이다. 삶은 많은 선택을 강요한다. 어렵지 않은 선택도 있지만, 도무지 하기 힘든 선택도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다. 때로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인간은 우울해진다.
얼마 전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를 강요당한 한 여성과 상담했다. 엄격했던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인형처럼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라는 내내 선택의 자유가 사라진 삶을 살았다. 그녀 역시 부모에게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한없이 자신의 선택권을 줄여나갔다.
삶에서 선택들이 사라지면서 그녀는 선택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결국 그녀는 아주 사소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결정장애가 생기고 말았다.
『소피의 선택』의 작가 스타이런은 심한 우울증을 경험한다. 그가 쓴 『보이는 어둠』은 우울증에 대한 가장 탁월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우울증 묘사는 정확하며 창의적이다. 아마 심리학자나 상담가라면 이렇게까지 우울증의 실체를 묘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의 전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나는 물리적으로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내 로즈가 늘 내 곁에서 지치지 않는 인내심으로 내 불평불만에 귀 기울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런 고독을 느꼈다. 오후만 되면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오후는 내 작업 시간이었다. 그런데 글쓰는 행위 자체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피곤해지더니 점차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멈춰버렸다.
끔찍한 불안이 발작적으로 엄습했다.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숲속을 산책하다가 캐나다거위떼가 초록으로 눈부신 나무 꼭대기에 앉아 끼룩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그 소리와 광경에 기분이 들떴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들의 비상이 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말할 수 없는 공포의 대못을 가슴에 박았다. 무력하게, 벌벌 떨면서 망연자실 그곳에서 서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허탈감으로 인한 단순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보들레르의 시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보들레르의 시가 먼 과거로부터 다가와 내 의식의 가장자리를 맴돌다 스쳐지나갔다. 나는 광기의 날개가 펄럭거리는 걸 느꼈다.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은 광기일 수 있다.”
서른 즈음 나 역시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몇 가지 삶의 희망들이 꺾이고 좌절의 경험들이 계속되며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자신이 비참해졌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극단적인 우울의 종착역은 자살 충동이다.
심한 우울증을 체험했던 사람이라면 스타이런의 글에 대단히 공감할 것이다. 글쓰기를 유난히 즐기던 내가 일생에 유일하게 글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2001년부터 2004년 정도까지였다.
시골에 낙향해 살던 시절,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거의 매일 10km의 시골길을 걸었다.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 길을 걷다 찍은 사진. |
스타이런 역시 우울증에 사로잡히며 글을 쓰기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생의 의미를 잃게 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기에 의욕의 산물인 글쓰기는 우울증을 앓는 이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당시 누구에게 남길 작은 메모조차 쓰기 힘들어했다. 스타이런의 표현처럼 때로 발작처럼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으며,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광기의 표정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어떤 날은 미쳐 날뛰는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보이는 어둠』은 우울증을 경험했던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아니 대변서라고 할 만하다. 심리학 명저를 엄선해 알려주는, 톰 버틀러 보던의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에서도 이 책을 우울증을 문학적으로 가장 잘 그려낸 책이며, 그래서 최고의 심리학 명저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 우울증을 경험하고 또 어떻게 우울증을 이겨낼 것인가 고민한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솔직한 표현, 인간적인 상호작용, 공감, 소통, 그리고 심리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특히 지지자와의 소통과 공감은 가장 중요한 우울증 극복 방안이다.
『보이는 어둠』은 이런 조건들이 왜 필요한지 서사적으로, 비유적으로 설명해준다.
우울증을 다룬 어느 책보다 공감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경험과 고백들은 우울한 이들의 생각과 느낌, 충동들에 대한 옹호와 공감으로 다가온다. 글을 읽으며 우울증을 겪어본 적 있는 이들은 대개 흡족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덫에 대한, 추상적이고 지시적인 표현들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감각적 이해가 가능하다. 나 역시 지금껏 『보이는 어둠』만큼 공감할 만한 우울증 묘사를 만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심리 교과서에 실린 심리학자나 상담가의 체계적인 분석이나 해결책 제시보다 더 깊은 자기 이해와 대안 마련이 가능할는지 모른다.
스타이런은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성공의 시점에 들이닥친, 자신의 우울증이 유전적 소인과 충분한 애도의 결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스타이런의 아버지도 우울증을 앓았다. 그 가족력은 그의 우울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 우울증은 가족력이 강한 질병이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햇빛과 이웃, 활동이 사라진 현대에서 그 유전자는 더 잘 발현된다.
그리고 스타이런이 분석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열세 살 때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는 그 상황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고통을 피하고만 싶었기에 부정하고 외면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할 때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새겨진다. 그에게도 강요된 선택,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의 기억이 근원적인 문제였던 셈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린다.
그럼에도 우울증은 이겨낼 수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바도 희망이다. 그 역시 지독한 우울증을 이겨냈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을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우울증을 이겨냈고,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내게도 이 책은 따뜻한 위안을 준다. 스타이런은 우울증 환자들을 향해 마지막에 이렇게 조언한다.
“우울증의 어두운 숲에 거주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고뇌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심연으로부터의 귀환은 시인의 비상과 다르지 않다. 깊이 모를 지옥의 심연에서 위로 위로 힘겹게 걸어 올라와 마침내 ‘눈부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다. 건강이 회복된다면 평정과 기쁨을 즐길 수 있는 능력 또한 회복된다. 이것이야말로 절망을 넘어선 절망을 견딘 자에게 돌아가는 충분한 보상이리라.
그래서 우리 빠져나왔도다. 다시 한 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
글 | 박민근(심리치료사)
박민근 저 | 와이즈베리
저자는 수십 년간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치유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치유의 독서》에서 소개한다. 철학상담의 전통과 최신 심리치료 연구성과, 15년간의 독서치료 경험으로 입증된 치유서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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