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이란의 진짜 얼굴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유달승 저자 인터뷰
이란. 전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손꼽히는 자원 부국, 10여 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5개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다민족 국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 불과 40여 년 전에 혁명으로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선거로 뽑힌 종교 지도자가 군대 통수권을 가진 종교 국가이기도 하다.
이란은 어떤 나라일까?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이란인의 특별한 심성, 현대 이란을 만든 역사 등 오늘날 한국 독자에게 흥미로운 내용을 간결하고 풍성하게 설명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유달승 교수에게 이란을 이란이게 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란이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한국인 최초로 이란에 유학을 떠났고, 또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외국인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선생님께서 처음 이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 비친 이슬람 혁명을 보면서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79년 2월 1일 이란 메흐라바드(Mehrabad) 국제공항에서 검은 도포 차림에 흰 수염을 휘날리며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호메이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슬람 혁명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근엄한 눈빛은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하나같이 서구화로 나아가는데,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이란인의 삶과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부분도 이란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전공하면 자리 잡기도 쉬울 것 같았고 할 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 이란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란을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이란의 어떤 점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셨나요?
이란은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이란은 직업의 높고 낮음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테헤란 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첫날 정치학과 학과장에게 연락이 와서 학과장실에서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청소부 아저씨가 들어오자, 학과장은 일어나서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청소부 아저씨는 교직원의 수가 많아져서 너무 힘들다고 한 명을 더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고 학과장은 타당한 주장이라면서 동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상관에게 당당히 자신의 요구사항을 주장하는 청소부 아저씨의 자신감, 자칫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학과장의 태도는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이란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당연한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올해 2월 19일 이란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란인들 사이에 공포감과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약국과 상점에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숙소를 관리하는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숙소 문고리에 마스크, 일회용 비닐장갑 두 장, 작은 알코올 병 한 개가 들어 있는 봉투를 걸어 놓았고 다른 친구들은 아침저녁으로 안부 전화를 하며 이삼일 간격으로 음식, 과일, 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감사를 표하는 제게 그들은 언제나 “그건 내 의무입니다”라고 답변하곤 했습니다.
이란은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가진 종교 국가이면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란이 언뜻 보기에 공존하기 힘든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국가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란의 정치제도는 이란의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역사적 결과물입니다. 이란에서 성직자의 영향력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해 왔습니다. 1890년 카자르 왕조의 왕이 영국인 기업가에게 이란 담배를 50년간 전매할 수 있는 특혜를 주자, 이에 대항해 성직자와 상인을 중심으로 왕권과 외세에 저항하는 담배 불매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 이란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종교와 성직자가 등장하게 되었고, 성직자가 사회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1906년 입헌 혁명과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슬람 혁명은 ‘자주, 자유, 이슬람 공화국Azadi, Esteqlal, Jomhuri-ye Eslami’를 주장하면서 오늘날의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이슬람 공화국은 전통적인 요소와 근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특수한 체제입니다. 공화국은 체제의 형태를 나타내고, 이슬람은 체제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왜 이란에서 이슬람이 그렇게 큰 인기를 얻고 있나요?
이란 유학 시절 저는 피곤하면 도서관에서 쪼그리고 자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옆에 다가와서 왜 불편하게 이렇게 있냐면서 모스크에 가서 편안하게 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모스크는 신성한 곳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고 반문했고, 그는 도리어 의아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스크는 힘들 때 쉬는 곳이 아닌가요? 아이들이 편하게 노는 곳도 모스크죠. 진정 신성한 장소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곧바로 테헤란 대학교 한가운데에 있는 모스크로 달려갔습니다. 모스크 안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운데에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왼쪽 구석에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이란은 과거에는 조로아스터교 국가였고 오늘날에는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파 국가가 되었습니다. 시아파의 역사는 슬픔과 패배의 역사이자, 순교와 저항의 역사입니다. 종교는 시공간을 초월해 이란 사회를 결속시키는 원동력이고 이란의 역사이며 그들의 삶이자 문화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이란은 멀고 낯선 나라, 조금 무서운 느낌의 나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에게 이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제까지 우리는 이란을 우리의 시각이 아닌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란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이란은 매우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상징적인 사례로,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또 테헤란에 서울공원이 조성되어 있고요. 테헤란로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외국 도시명이 붙은 길인 것처럼, 서울공원 역시 이란에서 유일하게 외국 도시명이 붙은 공원입니다. 이란인들은 한국 문화에 친밀감을 느끼고 감성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합니다. 한국과 이란 모두 아시아 국가에 속하며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관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란도 한국처럼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그때마다 불굴의 의지로 투쟁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란은 자원, 인구, 지리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나라입니다. 이란은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이란은 풍부한 노동력과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란의 인구는 2019년을 기준으로 약 8300만 명 정도이고 중동에서는 이집트 다음으로 인구가 많습니다. 30대 이하 청년이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거대 소비시장입니다.
지난 1월,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이란 군대의 사령관이 암살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어요. 이란 정부가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오인해 격추하는 사건도 있었고요. 왜 미국은 이란을 싫어하는 것인가요?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고 ‘중동의 헌병’ 또는 ‘페르시아만의 경찰’이라고 불렸지만, 이슬람 혁명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이 이란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한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프레임 전쟁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냉전 시대 미국은 모든 분쟁과 갈등의 책임을 소련에 돌렸고 당시 소련은 ‘악의 제국’이자 ‘악의 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이슬람을 새로운 위협으로 규정했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슬람의 위협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악의 제국과 악의 근원은 소련에서 이슬람주의로 이동했고 그 중심에 이란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석유이고, 정확히 표현하면 석유에 대한 통제입니다. 미국은 중동을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 “세계 전략의 엄청난 원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치를 지닌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사실상 석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란은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전략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1975년 페트로 달러(Petro Dollar) 시대가 열리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의해 달러 결제가 공식화되었지만 이란은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란이 미국의 중동 정책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란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핵 위협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다른 속내가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지속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동 국가입니다.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는 전쟁과 내전으로 황폐해져서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심각한 경제 위기로 여유가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반이란 반시아파 연대를 내세워서 오히려 이스라엘과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당분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란을 여행하고 싶은 한국 독자에게, 추천하는 장소나 알아두면 좋은 지식 등을 알려주세요.
외국인에게 이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쉬라즈(Shiraz)와 이스파한(Isfahan)이 알려져 있습니다. 쉬라즈 북동쪽 70킬로미터에 위치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적 중 최고라고 꼽히는 봄의 왕궁입니다. 쉬라즈에 가면 나시르 알 물크(Nasir al Mulk) 모스크를 꼭 방문하길 바랍니다. 이 모스크는 일명 ‘핑크 모스크’라고 불립니다. 이 모스크를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오전 8시에 가야 합니다. 아침에만 빛의 향연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파한의 명소는 낙셰 자한(Naqshe- Jahan, 세계의 절반) 광장입니다. 광장과 함께 그랜드 바자르를 구경하고 광장 안쪽에 있는 아자데간(Azadegan) 찻집을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이 찻집은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찻집으로 역사의 흔적과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사막의 도시이자 조로아스터교의 도시인 야즈드(Yazd)를 추천합니다. 야즈드는 소금사막과 모래사막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육로로 이동하면 다양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야즈드의 최고 명소는 진흙으로 빚어 만든 올드타운입니다.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수천 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 속에 빠집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로 갈 때마다 길을 잃어버려 헤매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억을 안겨줍니다. 또한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전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유달승 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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