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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sub-way: 지하철에서의 시간이 더더욱 각별해졌다

오 나의 sub-way: 지하철에서의

언스플래쉬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내린다. 6호선, 5호선, 9호선을 차례로 타고서야 회사에 도착한다. 버스로는 한 번만 갈아타도 회사 코 앞에 내릴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지하철을 탄다. 천안에서 군복무 할 때 역시 한 시간 걸리는 버스 대신 두 시간 걸리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 나는 지하철이 좋다.

 

버스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다. 10분 이상 보면 멀미가 난다. 어두컴컴한 땅 속보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을 수 있지만 어차피 서울의 버스에선 풍경 감상도 어렵다. 사람이 늘 득실득실이라 앉는 날보다 서서 가는 날이 많다. 일어서면 풍경은 시커먼 창틀로 조각조각 잘라져 오히려 답답하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게 낫다. 전동차는 땅 속을 달리고 나는 책 속을 달린다. 책 속에는 늘 만족스런 풍경이 있다.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는 그저 낯설었다.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당고개행 4호선을 처음 탔던 순간을, 주변의 어수선함을, 승차권의 빳빳함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제기역에서 1호선을 타고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오갔던 대학 1학년의 나날 역시 생생하다. 이 큰 도시에 잘 섞여들 수 있을지 두려웠던 마음도, 동경하던 도시에 마침내 발을 디뎠다는 뿌듯함도 지하철에서 느꼈다. 내게 지하철은 ‘고향과 다른 것’을 대표했던 것 같다.

 

지하철 안 풍경도 신기했다. 손잡이를 잡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머리 위로 손잡이가 가득하건만, 왜 아무도 잡지 않는지 의아했고 어떻게 다들 휘청대지 않는지 감탄했다. 버스에서 하듯 무의식 중에 손잡이를 잡고 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황급히 손을 내리곤 했다. 손잡이를 잡는 것이, 나를 ‘서울 사람들’로부터 구별해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감추듯 손은 어색한 위치로 내려왔다. 나는 지나치게 서울을 의식했다. 그런 것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달은 지나서였다. 지하철에 익숙해졌을 즈음에야, 나는 긴장의 끈을 풀었다.

 

앉은 사람 선 사람 할 것 없이 지하철엔 신문이나 잡지, 책을 든 사람이 많았다. 내가 태어난 도시에선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버스에서 저마다 얘기를 나누거나, 얘기 나누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창 밖을 보며 상념에 잠기거나, 이어폰을 꽂은 사람까지였다. 책을 보는 사람은 잘 없었다. 대략 20분 정도면 시내로 진입하는 도시와 1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는 서울 사이의 자연스런 차이겠지만, 서울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모습이 매정해 보이기 보다 근사해 보였다. 그리고 빠르게 동화되었다. 나는 ‘서울 사람’ 스타일이 내게 잘 맞는 것 같았다. 사실은 그리 근사할 것도 없는 일이라 잘 흡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울 생활 초기부터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타면 늘 뭔가를 읽어왔고, 그 시간이 너무 흡족했다. 먼 곳에서의 약속도 불평할 일 없었다. 그만큼 긴 시간을 나는 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엔 지하철에서의 시간이 더더욱 각별해졌다.

 

아내가 복직한 이후 지안이는 잠을 더 늦게 잔다. 엄마 아빠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것 같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와서 말한다. "아빠, (그릇) 쓱싹쓱싹 끝났어요?", "쓱싹쓱싹 끝나면 지안이랑 놀아주세요". 나도 엄마 아빠를 더 찾는 듯한 지안이가 짠해서 이전보다 더 많이 놀아주려고 한다. 요즘은 '지안이 가게 놀이'를 많이 한다. 내가 "똑똑똑" 문을 두드리면 지안이가 "어서 오세요" 하고, 내가 "맛있는 오리 고기 사러 왔어요" 하면 지안이가 "지글지글" 소리내며 요리해서 "여깄습니다" 하고 내놓는다. 가끔은 "지안이 가게 공사 중인데요" “세 밤 자고 오세요” 하면서 약 올리듯 웃는다. 그럼 나는 약이 잔뜩 오른 척 연기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보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지안이는 웃고 웃고 또 웃는다. 거기에 숨바꼭질하고 공룡 흉내 놀이 하고 나면 꽤 지칠 정도다. 이 정도면 아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달래준 것 같아 뿌듯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부족한가 보다. 이를 닦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책을 읽어주고 불을 끈다. 불 끄고 누워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든다. 여기까지가 정착된 패턴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갑자기 “물 먹고 싶어요. 물 주세요”하면서 엄마 아빠를 일으키고, “쉬 마려워요” 해서 화장실에 가자고 한다. 하지만 데려가도 쉬는 나오지 않고, 다시 기저귀와 바지 입혀 침대로 데려오면 “기저귀에 쉬 했어요. 기저귀 갈아주세요” 한다. 갈아주고 나면 “바지가 불편해요” 라며 다른 바지를 입혀달라 하거나, “잠이 오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아” 하면서 다시 불 켜고 놀자고 한다. 자는 것을 미루기 위해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잠 드는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새벽에 잠꼬대 하며 엄마 아빠를 찾는 경우도 늘었다.

 

이렇게 루틴이 바뀌니 아내와 내가 각자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줄었다. 밤에 번갈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지안이가 엄마 아빠를 찾으니 나가는 빈도가 줄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찍 나와 회사 앞 카페에서 누리던 시간도 줄었다. 늦게 자니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게 된 것이다. 어떻게 머리를 굴려봐도 시간을 늘릴 방도는 마땅치 않다. 일단 지금 단계에선 지안이와 보내는 시간을 더 줄이고 싶진 않아서 그렇다.

 

남은 건 출퇴근 시간이다. 회사까지 편도 50분, 하루 100분의 시간을 알차게 쓰려고 노력한다. 다행히도 내게 편안한 지하철이라 몰입해서 책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지하철이 나를 실어 나르는 동안 딴 세상에 다녀오는 기분이 참 좋다. 피곤에 절은 몸을 말끔히 씻고 탁탁 털어 회사 앞으로, 집 앞으로 단정하게 놓아주는 느낌이다. 힐링이 된다. 지하철은 땅 아래(sub)에 있어서 subway지만, 내겐 회사와 육아 외에도 필요한 시간을 대체(sub) 해줘서 sub-way다.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나는 작은 빛을 밝히고 있다. 지하철 덕분에 이 큰 도시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글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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