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솔직할 수 없었던 당신에게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저자 자토 인터뷰
‘특초밥’을 먹어야만 하는 날이 있다. 평소 먹던 런치 세트가 아닌 특초밥 세트 말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책임을 전가당하거나, 공과금 폭탄을 맞았을 때, 하다못해 출근 준비를 하다가 새끼발가락을 테이블에 찧은 때가 바로 그런 날이다. 이렇듯 자취를 하다 보면, 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별것 아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멘탈이 반 토막 나는 순간이 온다.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는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과 자취인들에게 특초밥 세트와 같은 에세이다.
자토(본명 하지나) 작가가 자취 10년, 회사 생활 5년 동안의 경험을 살려 쓴 이 그림 에세이는 자취 중이거나 회사 생활을 하는 2030 세대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직장 동료들이 같이 모여 누군가를 욕할 때 “난 사실 그 사람 이해해”라고 말할 수 없었다면, 퇴근 10분 전 회식이 공지되었을 때 “전 오늘 빨래가 밀려 있어서요”라고 말하지 못했다면, 어느 날 문득 텅 빈 자취방이 쓸쓸하게 느껴졌다면 자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의 소소한 고백들이 특초밥 세트처럼 당신에게 위안을 안겨줄 것이다.
다음카카오 브런치에서 연재를 처음 시작하셨어요. 회사 업무도 굉장히 바쁘셨을 텐데 시간을 쪼개어 웹상에 그림 에세이를 연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제 자취방에 개미들이 나타났어요. 개미 약을 사 와서 이곳저곳에 설치했더니 며칠 뒤 개미들이 줄지어 약을 옮기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흥미로워서 한참 구경하다 보니 문득 씁쓸해졌어요. 개미들이 ‘독’을 옮기는 것처럼, 저도 실은 ‘독’일지도 모르는 ‘월급’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 뒤만 쫓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씁쓸한 마음을 풀 곳이 없어 그림일기로 그려보았고 브런치에도 업로드하게 되었어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더라고요. 그 후로 직장인과 자취생으로 살면서 생긴 소소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연재하게 됐어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도 제 브런치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 바람에 상사들까지 제 브런치를 알게 돼 회사 이야기를 그려내기가 다소 곤란해지기도 했죠. 당시에는 조금 위축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마구 올리게 되었습니다.
‘자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토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 좀 해주세요.
제 필명이 된 자토는 ‘자취 토끼’의 줄임말이에요. 많은 동물들 중에서 토끼를 선택한 이유는 그리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치열한 사회를 살아가는 자취생과 직장인 들이 먹이사슬의 하위 동물인 토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원래 자토는 제 그림 속 등장인물일 뿐이었어요. 이야기를 편하게 쓰고 싶어서 ‘아오우’라는 필명을 따로 두고 “자토는 내가 아니다! 마쓰다 미리의 ‘수짱’처럼 자토도 그냥 내 이야기 속 주인공일 뿐이다!”라고 주장했죠. 그러나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꾸미고 있는 데다가 그리면 그릴수록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토 얼굴이 저랑 닮아버려서(;;) 결국 필명이었던 ‘아오우’를 버리고 자토와 동기화되어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책 제목처럼 매일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셨어요. 에세이로나마 하고 싶은 말을 후련하게 쏟아낸 후 작가님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요?
연재를 시작했을 즈음에는 지인들이 제 글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면 엄청나게 쑥스러웠어요. 제 속마음을 모두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런데 동시에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뻤어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공감해주었기 때문에 용기를 얻어 계속 솔직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어떤 일이 있으면 그 순간의 제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솔직하게 내 기분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내 마음을 글로 잘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된 습관이지만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서 좋아요.
벌써 자취 10년, 회사 생활 5년 차라고 들었어요. 사실 둘 중 어느 것도 쉽지 않은데 자취와 회사 생활 중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저는 대학생 때 자취를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는 혼자 사는 것이 마냥 행복했어요. 늦게 들어가도, 밥을 제때 안 먹어도, 늦잠을 자도 눈치를 볼 대상이 없잖아요. 엄청난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죠.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제부턴가 다시 가족들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저는 자립심이 강한 편이라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친구를 보고 문득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어요. ‘내가 자취를 오래하다 보니까 생각이 변했구나’하고 느꼈죠. 그렇지만 가족과 다시 같이 살게 된다면 한 달도 못 버티고 뛰쳐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마냥 행복했는데…… 그런 거죠. 하하.
책에 실린 에피소드들 중 가장 아끼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그 에피소드에 얽힌 사연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모든 에피소드가 소중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기승전자레인지’라는 에피소드를 꼽고 싶네요. 내 몸과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은 기억은 깨끗하게 씻어서 햇빛에 소독하고, 따뜻한 감정은 식지 않도록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어느 날 이 에피소드를 읽은 친구에게서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어요.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울었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점점 식어가는 것 같아 너무 슬프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저도 울컥했지만 쑥스러운 마음에 공감해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어요. 사실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너의 마음은 식은 게 아니야. 그 온도에 익숙해졌을 뿐이지.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아도 그 마음은 따뜻하게 유지될 거야’라고요.
본문 중 ‘불행을 예방하는 방법’을 보면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것처럼 회사 생활, 자취 생활 중 우울하거나 힘이 없을 때 그걸 극복해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이유 없는 우울함이 제일 어렵죠. 그런데 저는 그 우울함의 이유를 찾으려고 생각하다 보면 자기 비하로 이어져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려요. 중간중간 그 우울함을 이용해서 슬픈 영화를 더 몰입해서 본다든지, 암울한 글을 써보기도 하죠. 그때 쓴 글은 나중에 보면 굉장히 오글거리기 때문에 심심할 때 혼자 봐야 해요.
‘쌓아둔 화를 소중한 사람에게 푸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피지 못한 벚나무다’ 등 가슴을 울리는 글이 많더라고요. 책에는 미처 싣지 못했지만 오늘도 솔직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취인, 직장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며칠 전에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어요. 옆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공원을 돌고 놀이터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걸 한참 구경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 호기심에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봤어요. ‘와, 생각보다 높다’라고 감탄하고 봉을 타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너무 무섭더라고요. 참 이상하죠. 어렸을 때는 그 높던 정글짐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몸은 훨씬 커졌는데 반대로 마음은 작아진 느낌이 들었어요. 어른이 되면 겁이 많아져요.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고 상처가 쌓여가기 때문이겠죠.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조차도 그 사이에 남들보다 뒤쳐질까 걱정해요. 하지만 2030 때는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아 그땐 용감했었는데……”라고 생각하듯 나중에 더 나이를 먹고 보면 “아, 그래도 그때가 용감했었는데……. 그때 해봤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글 | 출판사 제공
자토 저 | 시공사
『오늘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는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과 자취인 들에게 특초밥 세트와 같은 에세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에게 급소를 강타당한 날, 자토는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 뭐 별건가? 대청소 끝나고 마시는 맥주가 행복이지.”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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