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이수희 저자
촬영 협조_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
우리 사회에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많다. 고심 끝에 아이 없는 삶을 택한 사람들, 난임으로 고생하다 아이를 포기한 사람들, 매일매일 삶에 충실하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까지… 그런데 이들 모두, 특히 여성들은 ‘이기적인’ ‘철이 안 든’ ‘어딘가 좀 모자란’ ‘비정상’ 취급을 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는 n포 세대, 저출산, 욜로, 딩크, 모성애 강요, 난임 시장의 폐쇄성, 어르신들의 언어폭력, 국가 시스템의 한계, 엄마가 아니면 배척하는 문화 등 한국의 가족주의 사회에서 아이 없이 사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또 어떻게 해서 아이 없이 살게 되었는지 그 계기를 되짚어보고, 가족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사회에서 직면하는 일들에 자신을 지키며 당당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 준다.
‘아이 없는 삶’을 말하는 책을 언제 써야겠다고 결심하셨나요?
1년 전, 지인이 제게 아이 없는 삶을 다룬 번역서를 한 권 추천해 주었어요. 결혼 6년차에, 아이 문제를 남편과 정리한 지는 3년쯤 된 시점이었어요. 하루 만에 그 책을 다 읽었는데, 씁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다른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 그때부터 도서관에 다니며 닥치는 대로 ‘딩크’, ‘무자녀’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일부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 뭔가 시원치 않았지요. 이유가 뭘까 고민했어요.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주제를 다룬 책은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과 우리는 문화부터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가족주의적 가치관이 존재하고, 시월드라는 걸림돌이 있고, IMF라는 비상 상황을 겪었어요. 최근에는 난임 시술이 예방주사처럼 퍼지고 있기도 하죠. N포 세대라는 말도 유행어처럼 등장했고요. 기존 책들에는 이런 내용이 하나도 없어요. 당연히 생각하는 바나 공감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죠. 조금 더 나에게 도움이 될 책을 찾아봤는데 그런 책이 없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써 봐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됐고, 혼자 기획안를 써서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답니다.
책 내용이 다소 무겁습니다. 인터뷰뿐 아니라 특히 작가님 본인의 아픈 경험까지 글로 다시 복기해서 쓰셨어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 조금이라도 치유가 된 부분이 있는지요?
가령 아직도 나이 드신 분들은 아이가 없는 제게 “밥값 해라”는 말을 해요. 처음 한두 번은 참다가 그다음은 설득을 해 봐요. 제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이해를 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끝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쨌든 이게 끝이 아니에요. 얼마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또 ‘같은’ 말을 하니까요. 사람은 바뀌는데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돌아와요. 그런 분들께 매번 100퍼센트의 에너지로 대응하기가 점점 지치더라고요. 나중엔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됐어요. 제가 노력한다면 한 사람을 설득할 수는 있지만 그 세대를 설득하긴 불가능하잖아요. 이렇게 접어둔 에피소드를 모두 다시 꺼내야 하는 작업이 사실 무척 힘들었어요. 내가 상대를 뜯어고칠 수 없으니 빨리 잊어버리자 했던 폭력적인 대화나 상황들을 다시 곱씹어 생각하는 일이 고통스러웠지요. 또 이 책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을 인터뷰했는데요. 그때마다 그분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느끼고 집중하다 보니 감정 소모도 심했어요. 말하다가 우시는 분들이 있으면, 위로하고 이야기 나누고, 또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는 순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내용을 정리하는 순간들이 모두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했다 싶어요. 나만 힘들고,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도 많이 받았고요. 집필을 끝내고 나니, 마음속 청소도 끝난 느낌이랄까요.
촬영 협조_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
책을 읽다 보면 표현 하나하나 굉장히 신중하게 골라 쓰신 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 대신 언어로 공격해요. 말도 폭력이라고 지적하면 몰랐다고 핑계를 대요. 무지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십 대까지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하고요.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관용(tolerance)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그걸 인정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지요. 정해진 한두 개의 길 외에는 전부 틀렸다고 배웠고요. 남들과 같은 길을 가야지 다른 길은 가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혹시나 내가 쓴 특정 단어, 어떤 표현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내 말이 칼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찌르지 않을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었어요. 이미 비슷한 이야기를 수십 수백 번 들었을 텐데….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되레 상처를 건드리는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요. 그런 생각으로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다 보면 표현 하나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가님의 글은 단순 인터뷰보다는 르포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심층 취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질문’이 있을까요?
두 가지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 질문은 ‘어떤 계기로 마음이 정리되었나?’, 두 번째 질문은 ‘지금까지 부부관계를 행복하게 유지해 온 비결이 있다면?’이에요.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정말 다양했어요. 자신의 경험에서, 혹은 생각으로, 어쩔 수 없었던 상황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지요. 다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럴 만한 상황이었어요. ‘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에요. 또 애가 있어도 문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이의 유무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에 자꾸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고 재단하려 하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질문은 부부관계 유지 비결이었는데요. 누군가 그런 말을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애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여자들도 보통은 아니다”라고요. 그만큼 주변에서 가만두질 않아요. 수많은 이들의 간섭과 편견, 그리고 폭력에서, 그걸 버티는 힘은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궁금했어요. 보통 아이가 없다고 하면 “남편이랑 할 말이 뭐가 있냐?”,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인터뷰 대상들이 짧게는 결혼 2년차, 길면 20년차까지 실제로 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분들의 지혜를 얻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책에 담겨 있습니다(웃음).
책 속에서 ‘그’들은 늘 ‘그녀’들을 돕거나 또는 갈등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요.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아이 없는 삶을 택한 남성의 삶 역시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남편들은 이러한 개인적인 부분을 터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많지 않아요. 아내들은 그래도 수다로 어디선가 하소연이라도 하지만, 남편들은 말하는 것 자체를 어색하고 힘들어해요. 지금 3040세대의 남편들은 ‘가장’과 ‘후대’라는 부담을 지고 있어요. 보수적인 집안이라면 더 심할 거고요. 아내가 난임 시술을 한다고 하면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병원을 다니는 아내로부터 스트레스 해소 상대 역할도 해야 해요. 아무래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짧으니 둘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뜰 경우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걱정도 있겠죠. 또 아내가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멀어지면서 외톨이가 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고요. 아내들은 남편에게 의존이 심해지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거예요. 무엇보다 아이 문제로 고부갈등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쟁이거든요. 어머니도 아내도 다 사랑하니까 그들 사이에서 중심 잡기도 힘들죠. 대부분의 남편들이 이런 갈등 상황에서 참고 견디는 것 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어요. 이 책에는 많이 다루지 못했지만 남자들의 아이 없는 삶을 이야기하자면 책 한 권 분량으로도 턱없이 부족하겠지요.
어쨌거나 아이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세세하게 들려주세요.
처음 일을 그만 두고는 한동안 죄책감이 심했어요. 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은 나는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제게 말했어요. “의미 없는 일들을 해 봐”, “그냥 놀아 봐”라고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이 행복할까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제겐 남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대신 경제적으로는 아껴야 해요. 그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목표예요. 조금 더 자세히 제 일상을 들려드릴게요. 저는 출근을 하지 않지만 가급적이면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오전엔 집안일이나 운동을 하고, 오후엔 취미 생활과 독서, 때로는 아이 없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도 떨고요. 일이 들어왔을 땐 잠깐씩 노동을 하기도 하고요.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 준비를 하죠. 가장 큰 노후대책은 건강이니까, 먹는 것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다행히도 양가 어른들이 저희 삶의 방식을 이해해 주셔서, 명절도 조용히 지나는 편이고요. 성수기를 피해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그것 또한 큰 보너스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시면서 삶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 있었나요?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이만큼 성장해서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면요?
책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나에겐 당연한 일들이 그들에겐 생소할 수 있다는 것.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달리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들이었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한결 수월해졌어요. 또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타인과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인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니까 이 사람과 결혼한 거잖아요. 그럼 난 이 사람을 최고로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면, 사랑해서 내게 온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해요. “너만 좀 참으면 돼” 하면서요. 너만 희생하면 이 상황이 바뀐다고 말해요.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자를 더 소중히 챙기고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크든 작든 그게 무엇이든, 사랑을 무기로 사용하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 시간의 가치와 행복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든 가치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 달려 있어요.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처음 한 달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데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행복한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냥 먹고 자고를 되풀이하다, 여행 한 번 다녀오면 조바심을 내기 시작해요. 그리고 쫓기듯 다시 취업을 하죠.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남는 시간을 어찌할 줄을 몰라 취업을 하는 거예요. 사실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것이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한데 말이죠. 그 시간을 부담스러워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 역시 그랬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이수희 저 | 부키
n포 세대, 저출산, 모성애 강요, 난임 시장의 폐쇄성, 엄마가 아니면 배척하는 문화 등 한국의 가족주의 사회에서 아이 없이 사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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