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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동아리 따위

모두 국가대표가 될 필요는 없지

아무래도 동아리 따위

뉴스1

며칠째 스톤을 노려보는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의 미간에 끼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컬링 이야기다. 방과 후에 할 일이 없어서 김영미가 학교 컬링 동아리에 들어가고, 영미친구가 같이 하다가 친구 동생과 친구 동생의 친구가 들어와서 컬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헤어날 수 없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버렸으니, 분명 어느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일이다.

 

예체능 동아리 활동을 그린 이야기는 일단 덮어놓고 보는 편이다. 『슬램덩크』 부터 『겁쟁이 페달』 , 『하이큐!!』 등 도저히 중고등학생의 실력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무리수 성장 인플레이션 만화를 비웃으면서도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피치 퍼펙트> 를 보고는 누구라도 붙잡아서 '너! 내 동료가 돼라!' 하고 아카펠라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최근 읽은 『옥상의 윈드노츠』 는 일본 동아리 청춘물의 전형을 따라가는데 그 식상함 자체가 너무 좋아서 한국에는 있지도 않은 동일본 대회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동아리 따위

도서 상세정보

『옥상의 윈드노츠』 에는 부원이 적은 관악부를 맡은 쓰치코 선생이 등장한다. 관악부 지도교사 경력이 30년 이상이지만 "아직 제자들을 전국 대회에 데리고 나가지 못해서"(96쪽) 적어도 반년에 한 번은 지도자 강습회에 나가 꾸준히 배워오는 열혈 선생이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자들을 최상위 대회에 데려가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의 의지에 따라 묵묵히 기다려준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동아리에서는 담당 교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동아리를 하는 학생들은 늘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고, 머리가 컸다고 우르르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는 골칫덩어리들이었다. 동아리 신청 마감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쉬는 시간마다 안면 있는 모든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연극부 담당 교사를 해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한 눈에도 깐깐해 보이는 선생님을 잡아서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지금 저희한테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하라고 가르치시는 거예요?"

 

막 던진 말이었는데 옆 선생님이 웃었다.

 

"좀 해 줘요 선생님, 저렇게 열심히 한대잖아. 언제 저래 보겠어."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자고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매일 늘 즐거운 것도 아니었고, 가야 할 동일본 대회도 없었는데. 어쨌든 붙잡힌 선생님은 한숨과 함께 지도 교사를 맡았다. 늘 입버릇으로 "사고치지 마라. 집에 일찍 가고, 술 먹지 마! 아무 것도 안 해줄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늦은 시간 연습에 들어오고 공연 막바지에는 탕수육이랑 짜장면을 사주셨다. 탕수육 맛있었어요 선생님. 진짜 감사했어요.

애들 잘 가르켜 가지고, 사람 되게 만들어 가지고 졸업시키 주는기... - <땐뽀걸즈>, 이규호 선생님의 말 중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냥, 그렇게 즐겁게 하나 해주는 것. 구조를 바꿀 수 없을 때 동아리 하나를 지켜봐 주거나, 지키는 것. 무의미한 일의 지난함과 아름다움이 컬링 대회에서 겹쳐졌다면, 그건 그냥 내 오지랖과 망상인 거겠지.

  1. 창의적 체험활동이란 :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와 상호 보완적 관계 속에서 앎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심신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기 위하여 실시하는 교과 이외의 활동을 말한다.
  2. 창의적 체험활동 목표 : 창의적 체험활동은 초ㆍ중등학교 학생들이 건전하고 다양한 집단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나눔과 배려를 실천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을 계발ㆍ신장하여 창의적인 삶의 태도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창의적 체험활동 구분 :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하되, 학생의 발달 단계와 교육적 요구 등을 고려하여 학교 급별, 학년(군)별, 학기별로 영역 및 활동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창의인성교육넷 발췌

최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해 '창의적 체험활동'이 중시된다는 뉴스를 봤다. 진로역량과 학습능력을 입학사정관에게 어필하기 위해 경쟁이 센 학교는 학기 초부터 자율동아리를 새로 만들고 '될 만한' 아이들을 끌여들여 리더 직책을 주고 서류에 한 줄을 더 넣을 체험을 만든다. 예전에는 공부 안하고 동아리 한다고 뭐라고 하더니, 이제는 동아리 활동으로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어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동아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동아리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릴 것이다. 그 안에서 누가 실제로 일하는지, 누가 누구와 더 친한지를 두고 다툴 것이다. 사회에서 늘 하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학교 경비가 치를 떠는 만행을 저지를 것이다. 저녁을 쫄쫄 굶은 채로 회의를 하고 운동장을 달릴 것이다. 망한 연애를 만들고 용돈을 받아다가 엠티를 가는 데 쓸 것이다. 밤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온 동네를 뒤집어 놓을 것이다. 전국구 대회는커녕 동네 마을잔치에서도 지는 시합을 할 것이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감기에 걸려 올 것이다. 정말 무용하고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어느 날 동아리방에 비친 햇살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잠깐 이해하는 찰나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전혀 몰랐을 감정이 울컥 올라오고, 그땐 그랬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청춘이니까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 정말 별로다. 당시 우리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쌩깠다. 몇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프로로 전향해 재능이 없다는 말을 무시한 채 계속, 계속했고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입고 광고에 사용됐다. 대부분 마지막으로 연습실 불을 끈 기억을 붙든 채로 떠났고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의 활약에 다음 <국가대표 3>의 주제는 컬링이라고 모두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지자체에서 경기장을 지어줄 것 같진 않다. 바라는 게 있다면 학교에 있는 녹슨 농구대 그물이나 갈아주고, 선생님들이 방과 후 활동을 지켜봐줄 수 있게 성희롱 하는 코치 말고 더 많은 선생님을 뽑았으면 좋겠다. '자율'만 붙은 자율학습이나 자율동아리 말고, 올림픽 말고도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팀 킴'이 나오는 건 그 다음이다.

 

글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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