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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도를 꼭 뽑아야 하나?

『편의점 인간』을 읽고

삶의 진도를 꼭 뽑아야 하나?

전국 어디를 가도 편의점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늦은 밤에 뭐가 먹고 싶어도 자정이 넘고 나면 “아, 가게가 다 문을 닫아서 살 수 없구나. 포기하자”라고 중얼거리며 잠을 자야 했다.

 

편의점이 생긴 다음부터는 동네에 편의점이 있는 것이 자랑이 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90년경 편의점이 생겼다. 하이텔에서 친구들과 채팅을 하다 한 밤에 번개를 치면서 “너희 집 앞에 편의점 있지? 거기서 술과 야식거리를 사와라!”라고 지시를 하면, 자랑스럽게 편의점에 들러 음식을 사 들고 택시를 타고는 했다.

 

우리나라 편의점의 역사는 꽤 길다. 문헌을 찾아보니 1982년에 처음 편의점이 생겼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시작은 1989년 세븐일레븐이라고 한다. 1993년에 1천호점을 돌파했고,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28,994개 점이나 열려있다. 약 3만개 가량의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일하는 사람도 얼추 수십 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와 달리 편의점은 많은 것이 규격화 되어있다. 물건도 통계적으로 지역별로, 시기별로 잘 팔리는 것들이 수급이 되고, 모든 계산은 POS를 통해 이루어진다. 외상은 꿈도 못꾼다. 처음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접객 서비스가 매뉴얼화되어 있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편의점은 중요한 하나의 축이 되었다. 국내 소설을 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장면이 흔한 소재로 나오니 말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 소개한 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어떤 공간에 머무르는지가 그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편의점이란 새로운 공간이 생긴지 30년이 되가는 이 시점, 편의점에 의해 우리의 삶과 마음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해볼만한 의문이 된다.

 

편의점이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전국 어디를 가든 똑같은 물품이 공급되고, 거기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형식으로 응대한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한편 동시에 언제나 문을 열고 있어야 하고, 누가 찾아오건 맞아야 하며, 문을 닫고 싶어도 닫을 수 없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할 주관성이나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저항적 본성, 없는 이에게 베풀고 싶은 이타적 여유와 같은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거기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어느 이상의 발전을 바랄 수 없다. 점주나 점장은 본사의 요청에 맞춰 목표치를 높여가며 경쟁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생존의 한 방편이다. 일을 하는 점원들은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오래 일을 하며 이것이 삶의 안정적 한 방편이 될 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다. 현대사회 단기직 저임금 노동자의 사다리의 최하층에 위치한다. 이곳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그저 거쳐가는 곳이기를 바란다.

 

정통 인문사회학자나 철학자라면 이 공간을 현대자본주의의 첨단으로 개인주의와 몰개성주의의 끝이라고 사회학적 비판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학에서는 이 공간을 매우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문학만이 갖는 독특한 힘이 아닐까?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다.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인데, 실제로 저자 본인이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시상식 당일에도 “오늘 아침에도 편의점에서 일하다 왔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만큼 저자에게 편의점은 깨알 같은 디테일로 가득한 삶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편의점을 소재로한 밀실살인 사건, 치정드라마 같은 것을 썼을 수 있겠지만 흥미롭게 무라타 사야카는 편의점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그곳에 숨어있을 수 있어서 행복한 어떤 인물을 창조해냈다. 그 덕분에 아쿠타가와상이란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36살인데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직원도, 점장도 아닌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 자신이 이 세상과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게이코는 대학에 들어가며 우연히 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생업으로 선택한다. 취직은 몇 번 해보려고 했으나 곧 포기했고,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8번째 점장과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매뉴얼대로 시간대로 할 일이 정해져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자신을 가게의 일부처럼 여기며, 그곳의 완벽한 매뉴얼에 따를 때 평안함과 자신의 정체성을 느낀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안에서 몇 달만 지나도 똑같은 일상과 적은 임금에 미쳐버릴 것 같을 것이다. 혹은 사람들이 “왜 아직도 여기서 알바를 하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일을 해야지”라는 시선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게이코 본인도 몸이 약해서 정규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시선을 견뎌내고 있지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그곳에서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왜 ‘취업, 결혼, 육아’와 같이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느냐고.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같이 적당한 나이가 되면 해야 할 것을 해야 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 갑자기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곳에서는 대단한 스트레스가 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하는 SBS <미운 우리 새끼>’라는 관찰 리얼리티만 해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예능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결혼만 하면 된다고 한탄하는 어머니를 보여준다. 이미 우리나라 상위 0.01%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잘나가는 아들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적 판정을 받아버린 것이다.

 

“언제 국수 먹여줄 거야?”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질려서, 혹은 세뇌를 당해서, 지친 마음에 결혼을 확 해버리고 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언제 애를 낳을 거야? 없으면 외로울 걸”

 

하나를 낳고 나면 왜 동생을 보지 않느냐고 들들 볶는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밀집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타인의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무심한 공격적 발언을 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의무라도 되는 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소설 『편의점 인간』이 게이코를 통해 비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해진 삶의 패턴을 거부한 사람을 그린 소설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일체의 규격이나 사회적 질서를 거부하는 인물을 그리는 통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여기서는 완전 반대로 ‘완전한 매뉴얼 안에서 통제된 삶을 살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다는 역발상의 시도로 정면 돌파한 것이다.

 

왜 세상이 죽 자를 대고 그어놓은 삶의 진도를 뽑아야만 하는 것이지? 산을 오르면 꼭 정상에 올라야 하는 거야? 나는 그냥 300미터쯤 올라가다가 좋은 약수터가 보이면 거기 앉아있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정상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또 그런 사회의 시선과 무언의 강요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나름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을 흔들어 대서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게이코가 시라하라는 또 다른 사회부적응자를 받아들여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그녀의 삶의 균열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한 깨달음과 느낌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에 비해 사회성의 평균값은 내려가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런 세상에 살아가는 평균 이하의 사회성을 가진 이들에게 과거 세대의 표준적 삶의 태도와 궤적을 기대하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편의점 인간’에서 게이코가 다시 안착하는 공간이 가리키듯이 각자의 삶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이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추신)

만일 새로운 유형의 편의점 인간을 만화로 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2013년부터 일본에서 만화로 발간되어 초판만 100만 부가 팔리고, 2016년 드라마가 방영된 마츠코마 글, 하시모토 그림의 『니체 선생』을 보기를 권한다. 일체의 전형성과 상식적 판단을 거부하는 엉뚱한 철학자 알바생 니체선생의 편의점 좌충우돌기가 단편연작으로 이어진다.

 

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사진 | 엄지혜

 


 

삶의 진도를 꼭 뽑아야 하나?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김석희 역 | 살림출판사

 

서른여섯 살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모태솔로에다 대학 졸업 후 취직 한번 못 해보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적당한 나이에 일을 얻고 가정을 꾸린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서 게이코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그녀 앞에 무뢰한 ‘시라하’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데….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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