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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이 골라주는 살기 좋은 땅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김시덕 저자 인터뷰

김시덕 저자 (ⓒ 에스콰이어)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로 집값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규제 완화로 집값이 다시 오를 거라는 기대가 부딪히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고파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눈치싸움이 되어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집값’이 아니라, ‘집값’을 형성하는 입지 조건과 미래 가치이다. 그래야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 모은 목돈을 쏟아부어 마련한 ‘내 집’이 후회로 점철된 감옥이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의 저자 김시덕은 오랜 시간 도시의 개발 역사를 추적해온 도시 문헌학자이다. 그의 연구 과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수집한 생생한 현장 정보와 식민지 시기의 ‘토지구획 평면도’부터 가장 최근의 ‘도시 기본계획’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의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도시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살 곳(where to live)을 찾는 실거주자, 또는 살 곳(where to buy)을 찾는 투자자라면 그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곳곳의 부동산 개발 역사와 현지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아보자.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는 박사님이 출간하신 첫 번째 경제경영서입니다. 『일본인 이야기』『서울 선언』 등 지금까지 인문 분야의 책을 쓰다가, 이번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이제까지 도시를 답사하면서 발견하고 생각한 것을 책과 SNS를 통해 전해왔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을 도시 답사를 할 때 활용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으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답사뿐 아니라, 가족이 살 집을 찾거나 투자할 부동산을 찾기 위한 ‘임장’을 목적으로 저의 책을 읽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로지 후자의 독자분들을 위한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책에서 ‘임장’ 관련 정보를 얻으려 했던 분들이, 이번에 출간한 이 책으로 조금 더 편하게 알고자 하시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전에 출간하신 책과 박사님이 작성하신 여러 보고서가 부동산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 사이에서 굉장히 좋은 참고 자료로 사용되었다고 하죠. 어떤 점에서 박사님의 연구와 자료가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걸까요? 


오랜 시간 답사를 하다 보니 부동산과 건설업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땅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관심과 그 변화의 바탕에 있는 인간의 비경제적 행동에 대한 관심입니다. 말하자면 ‘인문학적인 임장’이 이 분야에서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적으로 부동산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초급 단계의 투자가가 중급 단계로 올라서면서부터 필요해진다는 말씀을 주변의 분석가·투자가분들께서 해주십니다. 제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의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를 보시고 어떤 분은 '부동산 투자계의 교양 과목'이라고 표현하셨더군요.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분들께서 저의 활동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강남 아파트마저 억대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하죠, 과거에도 이렇게 집값이 요동쳤던 역사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처럼 흔들리는 부동산 시장 속에서도, 소위 말해 ‘나라가 망해도 살아남을’ 입지 조건은 무엇일까요? 


집값과 땅값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크게 변동했습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최근의 변동은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가격 급상승은 지난 정권의 과도한 신규건설·재건축 억제 정책에 따른 이상 현상이고, 정상적인 부동산 정책이 시행되면서 안정을 찾는 과정이 현재의 하락세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라가 망해도 살아남을’ 곳이라 하면 ‘강남의 신축 고층 아파트 단지’일 것 같습니다. 강남의 신축 고층 아파트단지는 이미 다른 지역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와는 별개로, 범접할 수 없는 가격대를 형성해버렸습니다. 강남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만약 세종시로 수도가 완전히 옮겨간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최고가를 유지하리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서울 강남이 주거 지역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수가 잘되지 않는 저지대와 언덕이 섞여 있고, 2011년의 우면산 산사태가 보여주듯이 그간의 지나친 개발로 인해 땅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조건이 주거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경제적인 요인보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자연환경을 생각하는 분들께는 책에도 언급했듯이 서울 강남 이외에도 좋은 후보지가 많습니다. 그 후보지들 가운데 저는 경기도 파주시 서부 지역의 한강 주변을 가장 추천합니다. 한편으로 등산을 좋아하거나 창밖으로 산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서울 강북구·광진구 등도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기 좋은 부산 북구·사상구·사하구 등도 괜찮다고 봅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배수와 공해 문제가 좀 더 해결될 필요가 있죠.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서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쿄 도심부를 비롯한 대도시에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만큼 교외의 언덕 위에 건설된 신도시에서 빠르게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셨는데요. 우리나라의 신도시도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까요? 인구 감소에 따른 신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인구 감소는 전국에서 동시에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도시에서도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오히려 인구가 몰려서 주택과 토지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빚습니다. 대도시 중심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자기 지역의 중심부를 콤팩트하게 개발하고 중심지를 향해 인구를 재배치할 필요가 있지만, 많은 분이 이미 지적하신 대로 그런 과감한 행정을 할 수 있는 지자체는 한 곳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외곽에 신도시를 개발함으로써, 그나마 줄고 있는 인구를 중심에서 외곽으로 빼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이 도시 외곽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거나 토목 사업을 생계로 삼는 일부 지역 유지에게는 좋겠으나, 그 외에 어떤 시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책에서 단적으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대서울(Greater Seoul)’*의 철도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안에 있는 평지 지역은 중장기적으로 인구의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거리 바깥이거나, 그 거리 안에 있더라도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 단지라면 장차 생활 환경적으로 곤란해지실 겁니다. 현재 자가용을 사용하실 수 있다고 해서, 노년에도 운전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 현실을 일본 유학 때 도쿄 외곽의 신도시에서 보고 왔습니다. 자가용을 사용하지 못해서 열악한 도보 환경과 대중교통에 곤란을 겪는 가족 구성원이 이미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철도역에서 멀지만, 신축인 고층 아파트 단지보다는, 역에서 가깝지만 고층 아파트 단지의 형태를 띠지 않는 주거 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서울 : 흔히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을 생각하지만, 이 개념의 핵심은 선(線)이다. 길을 따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생활권, 곧 서울 사대문, 영등포, 강남을 중심으로 피자 조각처럼 방사선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모습이 대서울이다.

김시덕 저자 (제공 : 김시덕)

GTX 개통 및 지하철 노선 연장 계획에 따라 주변 지역의 집값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GTX가 수도권 전철만큼 효용감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보다 교통, 특히 철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여러 이유에서 국가 교통의 중심이 철도로부터 도로로 옮겨왔습니다. 그리하여 철도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많지 않았고, 또 정치인들이 철도 인프라를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철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철도가 주는 정시성(定時性)과 친환경적 특성은 그 어떤 교통수단과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이러한 철도의 장점이 최근에야 한국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철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조건 철도를 자기 지역에 부설하고, 역이 만들어지면 '묻지마 투자'를 하는 등의 난점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의 경전철이 경제적으로 실패하고, 요금 체계 개편이 정치적 이유에서 실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GTX에 대한 대서울 지역 시민들의 기대가 과도하고, 역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역세권으로 간주해서 '묻지마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등의 문제는 앞으로 한국 도시의 성장과 성숙에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호재, 개발, 금리, 공급 등)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발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문화재, 근대 건축, 마을 등을 무조건 보존하자고 주장하며 개발을 죄악시해서는 시민과 도시의 미래에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편으로 무조건적 개발도 반대합니다. 돈 있는 사람이 좋은 입지에 사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재건축, 재개발, 택지개발을 밀어붙인 결과, 전 국민의 거주 안정성이 파괴되어 우리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불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주장의 사이에서 제3의 길, 즉 적절한 개발과 반드시 필요한 지역의 보존을 공존시키는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서울 선언』 이래의 일관된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 노년기에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중단기적으로 앞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도시는요?


답사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역은 경기도 파주의 운정 신도시 너머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 그리고 남한강변의 여주 같은 도시들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살고 싶은 지역들입니다. 가장 차분하다고 느껴진 도시는 춘천과 전주였습니다. 요즘은 원주도 점점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해안 지역의 여러 도시도 좋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 사시면서 차분한 주변 환경을 찾으실 것이 아니라, 근무 형태를 좀 더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이들 지역과 대도시를 오가는 방식으로 삶을 꾸리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중단기적으로 가장 큰 성장을 예측하는 지역은 경기도 화성시·평택시의 서부 지역 및 이에 인접한 충청남북도 일부, 그리고 중부권 메가시티라고 부르는 대전·세종·청주 3도시의 중간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이들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도시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도 출간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김시덕


일주일에 서너 번은 동네 근처에서 먼 지방까지 다니며 도시 곳곳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도시 답사가이자, 도시에 남아 있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과 자취를 추적하며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도시 문헌학자이다.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를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총합연구 대학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일본연구 센터 HK연구교수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교수를 역임했다.

주류의 역사가 아닌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서울 선언〉 시리즈 『서울 선언』(2018 세종도서 선정), 『갈등 도시』(2020 세종도서 선정), 『대 서울의 길』을 통해 언론과 대중에 큰 주목을 받았으며, 관악구의 과거와 현재를 다각도로 조망한 『관악구 문화 예술 기초자료집-관악 동네 역사』를 출간하며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학술 부문)을 수상했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세종도서 선정), 『일본인 이야기』 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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