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원은 왜 퇴사 후 마트를 차렸을까?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김경욱 저자 인터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하나는 간직하고 산다. 개인의 성장과 가치 실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직원들이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기대와는 다른 현실을 겪은 후 퇴사를 결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는 대기업을 퇴사한 청년이 마트를 창업하고 분투하며 자리 잡는 과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젊은 열정만으로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과 동네 친화적인 운영 방식을 접목하고, 타깃 고객을 향한 감성적인 접근으로 3년 만에 연 매출 45억 원을 달성했다. 동네 마트를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는 김경욱 저자에게서 현실적인 창업 이야기를 들어 보자.
대기업을 다니시다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여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돈 벌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타트업도 고려했지만, 초기에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제 성향에 맞지 않았고, 장사 쪽에서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장사라고 하면 보통 요식업을 많이 생각하는데, 저는 요리나 술 등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컨셉이나 인테리어만 내세워 가게를 차리는 건 좀 허황하다고 느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문과생에게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으면서 돈을 확실히 벌 수 있는 장사는 유통업, 그중에서도 마트라고 생각했지요.
마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과 회사 동료는 ‘미쳤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거면 대학은 왜 나왔냐'고 묻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저는 대기업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제 손으로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내공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지금은 ‘미쳤냐’고 했던 친구들이 오히려 부러워합니다. (웃음)
퇴사와 창업에 관한 책이지만 이를 마냥 이상화하지 않고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최근 퇴사가 판타지와 트렌드가 된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퇴사는 인생의 여러 이벤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모두가 퇴사하고 저처럼 마트를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아도 큰일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장사를 해나가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경영 이론, 장사 선배들의 장사법, 그리고 장사하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적다 보니 현실적으로 보인 것 같습니다. 이론으로 그칠 수 있는 경영 전략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기록해 놓은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보고 전문 이론과 에세이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경제경영 에세이’라는 새로운 혼종 같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독자분들이 술술 잘 읽힌다는 의견을 주십니다.
동네 마트를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는 부분이 재밌습니다. 이제는 전통적인 자영업도 감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똑똑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생존하기 위해서 데이터 분석은 필수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기에 감만 믿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트렌드를 이해하고 실수를 줄이려 했지요. 판매 데이터가 누적되기 전에는 외부 데이터를 많이 봤어요. 예를 들어, 네이버 검색어 추이를 분석해서 1년 중 어느 달에 담금주나 워셔액 수요가 몰리는지를 예측했습니다. 비록 유통업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용했더니, 오히려 장사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감만 믿고 한 결정보다 더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했습니다.
군산 산북동에 위치한 우리들마트 |
본문 내용 중 '모범생 남 대리는 왜 사업을 말아먹었을까?' 챕터가 재밌던데. 혹시 주변에 모델이 된 친구가 있나요? 혹은 본인인가요? (웃음)
저와 친구들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특징이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우물쭈물하는 것, 사소한 것까지 완벽해지고 싶어 하는 것, 사업이 힘들어지면 그동안 공부하는 데 쏟은 자원과 대안을 생각하며 본전 생각하는 것. 이를 극복 못 하면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저 또한 이런 면이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모범생스러운’ 저의 단점과 친구들의 단점을 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습니다.
현재 창업한 지 만 3년이 됐습니다. 연 매출은 얼마나 되나요?
연 매출은 45억 정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그만큼 빚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요. 물론 이전 회사 월급보다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하면 내일 당장 매출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고,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한 온갖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덜 벌더라도 이런 극한 스트레스를 겪지 않는 게 더 좋은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
책을 보면서 동네 장사는 그 지역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동네 소상공인은 지역 주민과의 관계 맺기로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고 보면 됩니다. 초기에는 물건을 싸게 팔면 무조건 장사가 잘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형마트보다 얼마가 더 저렴하다’는 식으로 판촉행위를 했지만, 고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마트를 선택할 때 가격이 가장 큰 요소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때부터 가격보다는 고객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우리 고객뿐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와의 상생과 관계 맺기를 위해 시작한 게 ‘십시일반’과 ‘고사리희망장터’입니다. 십시일반은 수박이 10통 팔릴 때마다 어려운 이웃에게 수박을 1통 기부하는 행사고, 고사리희망장터는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우리 마트 앞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지역 어르신들을 돕는 행사입니다. 고사리 희망장터는 어린이들이 행사의 기획부터 최종 나눔까지 모두 스스로 진행해, 이웃과 나눔의 즐거움을 깨닫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가 반복되면서 우리 마트가 지역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9월 열린 고사리희망장터 |
‘퇴사하고 장사나 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뭐든 하고 싶으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절대 오래 생존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아이디어는 있지만 모두가 실행하지는 않지요. 실행한다고 해서 계속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적어요. 장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내부 사진을 멋지게 찍어 올린다고 해서 고객들이 바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지금 잘되는 몇몇 가게의 단면만 보고 쉽게 결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본인이 어떤 걸 잘하는지 고민하고,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에서 단기간이라도 일해보길 권합니다. 그 이후에도 해볼 자신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하고, 중간에 어려운 순간을 잘 극복하길 바랍니다.
김경욱
장사하는 사람. 낮에는 귤과 생강을 팔고 밤에는 글과 생각을 짓는다. 정유회사에 잘 다니다가 돈 벌고 싶어서 군산에 와 우리들마트를 열었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이 섞인 힘든 일과 끝에 손님이 떠난 매장을 지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5수생이었지만 이 글로 카카오 브런치 브런치북 6회 대상을 수상했다. 작은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강아지 두 마리 키우며 사는 게 꿈이다.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김경욱 저 | 왓어북
독자들에게 퇴사를 권하지도, 창업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진짜 내 일’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인 팁이 풍부하다. 월급 말고 내 손으로 돈 벌 궁리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선사한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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