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우디, 사람과 살아주기 참 힘들다
독자 이혜린
먹을 때 행복한 다람쥐 우디
‘털컹 쾅쾅쾅 덜컹덜컹’ 다람쥐의 아침 인사는 조금 과격한 편이다. 이미 오래 전 사람의 공간마저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탓이다. 이 철창 케이지에서 얼른 나가 숨겨둔 식량을 확인하고 안심해야 한다. 한편 사람은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다람쥐가 밖에 나와 일단 입에 넣고 볼 것들 중에는 위험한 게 너무 많다. 다른 두 종(種)의 하루가 시작된다.
다람쥐는 케이지에서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사람이 항상 손 위에서 충분히 쓰다듬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야 발버둥 쳤지만 익숙해진 다람쥐는 이제 그러려니 하며 조금 기다린다. 인내는 쓰고 자유는 달다. 자유의 몸이 된 다람쥐는 먼저 행거 위의 옷을 살핀다. 사람이 잘 보지 못해서 마음 놓고 맛있는 것을 숨겨둘 수 있다. 사실 사람은 그곳이 다람쥐가 애정하는 식량 창고임을 모를 리 없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수많은 간식 껍질들 때문에라도 버릇을 고쳐놓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지만 한판의 실랑이를 상상하곤 그만두었다. 다람쥐는 여전히 바쁘다.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냉장고 위, 옷 서랍장, 침대 서랍....
사람은 다람쥐가 중요 일과를 마칠 동안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다람쥐는 사람이 거울 앞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면 자신도 머지않아 케이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다람쥐는 여기저기 물건을 떨어뜨려 주의도 분산시킨다. 그러나 통한 적은 없다. 조금 늦어질지언정 그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갑자기 목소리가 친절해지면 그때가 온 것이다. 다람쥐는 이내 포기하고 케이지에 들어간다.
다람쥐는 케이지 안에서 할 게 별로 없다. 쳇바퀴를 돌리는 것도 잠깐,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다. 문에서 기계 소리가 나면 다시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사람은 마중 나온 다람쥐가 기특하다. 가끔 낮잠이 깊어 나오지 않은 날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금방 나오기 마련이다. 그 모습이 예쁜 사람은 케이지 문을 열고 또 다시 한껏 손 위에서 예뻐해 준다. 다시 한번, ‘인내는 쓰고 자유는 달다.’
타자를 치는 손도,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손도, 일단 움직이는 손이면 다람쥐에겐 다 놀잇감이다. 노는 게 싫증이 나면 여기저기 달려도 좋다. 사람의 공간이 너무 작아서 요즘 다람쥐의 관심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방 찬장에 가 있다. 분명히 사람이 저기에서 해바라기 씨와 멜론 씨를 꺼낸 것을 다람쥐는 보았다. 다람쥐는 도움의 눈길을 보내지만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다람쥐는 사람이 좀 귀찮다. 먹을 것을 순순히 주지도 않고, 정정당당하게 간식이 담긴 봉투를 스스로 뜯어 쟁취한 간식마저도 뺏어간다. 다람쥐가 억울해서 손을 조금이라도 세게 무는 날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항상 시끄럽고, 나눠 먹을 줄도 모르고, 혼자만 맛있는 것을 먹고, 귀찮게 불러대고, 좀 놀아주러 가면 밀어내고, 정말 바쁠 때 갑자기 놀자면서 귀찮게 한다. 다람쥐는 사실 왜 그렇게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서 부르고, 쓰다듬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늘 다람쥐가 사랑스럽다. 자기 딴에는 중요한 일과랍시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도, 더 많은 식량을 쟁취하기 위해 들쑤시는 것도, 장난스럽게 물 때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함이 느껴지는 힘 조절도 모두 예쁘다. 좋은 날에는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함께 춤을 추고, 힘든 날에는 이름을 부르며 울기도 한다. 가끔 사람이 크게 진동하며 눈물을 떨어뜨릴 때면 다람쥐는 가만히 사람의 몸 위에서 지켜볼 때도 있다. 사람은 크게 위로를 받지만, 다람쥐는 그 사실을 모른다.
가끔 창문 밖에서 낯선 계절의 향기가 날 때면 다람쥐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다람쥐는 사람의 시선을 느낀다. 한편 사람은 심란해진다. 이 작은 공간이 다람쥐의 전부이다. 사람은 애써 모른척하며 죄책감을 다른 것으로 덮어씌운다. 더 맛있는 것들을 먹여주리라 결심한다. 다람쥐는 사람의 얄팍한 양심을 모른척한다. 동거는 그렇게 유지된다. 다람쥐는 오늘도 사람과 함께 산다.
글ㆍ사진 | 이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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