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작가는 얼마 버는데요?
『작가의 수지』
출처_imagetoday |
예전에 한두 번 비슷한 얘기를 쓴 것 같은데 막연하게나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계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학창시절에 장래희망 같은 걸 적어내야 할 때는 꼭 ‘소설가’라고 적었다. 문제는 뭘 어떻게 해야 그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거다. 우연한 기회에 몇몇 사람(이를테면 엄마라든가 아빠)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왜 그딴 걸 하려는 거냐,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다.” 그랬다.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 나에게는 이것이 ‘소설가’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첫 번째 이미지였다.
그나마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기도 했던 국어 선생님이 해준 얘기는 좀 나았다. “일단 많이 읽고 나중에 국문과에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읽었다. 세상 사람들이 ‘쓸따리없는 책’으로 분류하는 것들을 잔뜩 읽느라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어찌어찌하여 국문과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얘기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 차라리 기술을 배워라”는 것이었다. 그런가. 재능 없이 열심히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는 직업. 나에게는 이것이 ‘소설가’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두 번째 이미지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는 작가들이 쓴 노트라고 할지 작법서를 읽기 시작했다. 몇 번의 습작 끝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꿈을 접었으니 이 무렵부터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겠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라든가 딘 쿤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는 법』, 『작가는 왜 쓰는가』(제임스 미치너), 『글쓰기의 항해술』(어슐러 르 귄), 『스토리 메이커』(오쓰카 에이지),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같은 책을 하릴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들은 소설을 쓰는 자세와 ‘약간의’ 요령을 적어놓았는데 ‘아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하는 의미에서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이 많았을 뿐 먹고사니즘적 차원에서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전에 없이 희한한’ 에세이가 일본에서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스터리 작가 모리 히로시가 쓴 책이었다. 그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에는 얼마나 버느냐 하는 절실한 문제도 있다. 가령 신인상 같은 문학상의 상금이 얼마인지는 잘 알려졌지만 그 후로 무슨 일을 해서 얼마나 버는지, 그 구체적인 금액은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운을 뗀 뒤에 이 책을 쓴 이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소 길지만 저자의 진의가 담긴 대목인 듯하여 인용해 본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돈 얘기는 천박하다’고 보는 풍토가 있다. 돈 벌려고 일하는 거 아니다,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라는 아름다운 정신이 옛날에는 있었다(고 보일 뿐이지만). 그러나 요즘 같은 정보 공개 시대에 그런 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액수가 빠져 있거나 액수가 있어도 보통 ‘카더라’ 식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그 정보가 정확한지 어떤지 분명치 않다. 작가의 수입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자료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실을 밝히는 것도 직업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명’이라고 쓰지 않은 것은, 역시 내가 정직한 탓이다.”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잡히시는지. 책의 제목은 『작가의 수지』이다. 즉, 이 책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이 평생 얼마나 벌었고 또 어떻게 벌었는지에 관해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데다가 실증적인 숫자를 제시해 가며 기록해 놓은 작가 노트이다. 소설을 써서 자신이 벌어들인 원고료 및 인세는 물론이거니와 저서 이외의 수입, 이를테면 (1) 추천사를 쓰면 얼마를 받나 (2) 만화화가 되면 얼마를 받나 (3) 번역권을 팔면 얼마를 받나 (4) 강연을 하면 얼마를 받나 (5) 영상화가 되면 얼마를 받나, (6) 교과서나 문제집에 글이 실리면 얼마를 받나, 하는 것까지도 그에 대한 코멘트를 곁들여 밝혀놓았다. 그중 한 대목만 살펴볼작시면-,
“자기 작품 외에 원고료를 받을 수 있는 작업으로 다른 작가의 책에 해설을 써주는 일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열 번 정도 해설을 썼는데 원고료는 10만 엔이었다. 의아한 점은 글의 양에 관계없이 정액이라는 것이다. 분량은 5~10매 정도이므로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는 원고료보다는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설을 쓰려면 먼저 해당 작품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의 성격상 솔직하게 비판할 수도 없다. 그 작품이나 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이것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서평가에게는 익숙한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나처럼) 정직한 사람에게는 괴로운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나는 해설 원고료를 25만 엔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읽고 본 뒤에 별로면 거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도 달았다.”
대략 이런 식이다. 돌려서 얘기하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는 기색 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사실과 의견을 적시하고 있다. ‘다들 천박하게 여기는’ 돈 얘기를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그동안 나도 꽤 찾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처음 봤다.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만큼 일본에서는 “오오! 대단하구먼”이라는 호평과 “쯧쯧, 자본주의의 막장일세”라는 비난이 공존하는 모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소설가의 수입’을 알게 돼서 감탄한 쪽이다.
모리 히로시가 여기저기서 날아올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이런 얘기를 거침없이 술술 털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이력과 상관이 있는 듯하다. 그는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렇다.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의 일들이다. 하지만 이번 주에 나에게 주어진 지면은 여기까지이니(라기보다는 더 길어지면 ‘별 내용도 없는데 뭐가 이렇게 길어’ 하면서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으니) 나머지 얘기는 다음 편에서. 2주 후에 뵙죠.
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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