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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당신에게 말을 건다』 편집 후기

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도서 상세정보

알마 출판사에 입사하고 두 번째 맡은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다. 내 얘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1년 차 편집자고, 열 달 동안 세 번 이직했다. 뭔가 꼬인 게 틀림없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전주에 내려와 노래방에서 일하라 했다. 아버지가 서점을 했다면 나도 내려가서 도왔을 거다 생각했다. 나는 서점 일을 만만하게 봤다. 남는 시간에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상상했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보면 서점 일에 관해 대략 알 수 있다. 온통 사람 손이 가는 일뿐이다. 책을 진열하는 일부터 주문, 반품, 납품 등 책 읽고 글 쓸 시간은커녕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매장 바깥에 놓인 손수레를 식탁 삼아 밥 먹는 ‘서점 사람’의 모습에서 새벽 3시까지 노래방을 지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가게 문을 열고 매장 바닥을 대걸레로 닦는 아버지. 거래처에 전화하여 과자와 음료수 값을 흥정하는 아버지. 고장 난 기계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 술 취한 손님을 견디는 아버지.

 

동아서점 김영건 매니저가 고향 속초에 가기까지 그에게는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있었을 거다. 그는 공연기획자로 성공하기 위해 정성껏 보도자료를 썼을 거고, 공연 포스터와 소책자 등을 만들며 숱한 밤을 지새웠을 거다. 1만 권 이상의 책을 반품하고, 2만 권의 책을 서가에 진열해야 했을 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을까? 아버지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괴롭진 않았을까?

 

그에게 나도 다르지 않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그 대신 에필로그로 아버지께 편지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께도 아들에게 편지를 써달라 부탁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 앞으로도” 잘 견디자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앞으로도 부디” 곁에 있어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꿈은 ‘백 년 서점’. 기력이 다할 때까지 아들 일을 돕는 것이다. 그는 다짐한다. 이제부터라도 잘해보고 싶다고. 무엇보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아들은 아버지께 죄송하다. 머리가 굵어진 이후 아버지를 ‘기성세대’ 취급하며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오직 ‘서점’에 관해서 쓰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에 관해 쓰고 있었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서점 이야기’만을 담은 책이 아니다. ‘책’과 ‘서점’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얘기한다. 나의 고민이, 우리 아버지의 고민이 이 책에 있다.

 

회사에 책이 입고된 날, 연남동 호프에서 맥주를 마셨다. 내가 아끼는 사람과 『당신에게 말을 건다』에 관해 얘기했다. 그는 나에게 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냐고 물었다. 편집자가 저자의 책으로 무언가 얘기할 수 있다면 아주 근사한 일일 것이다. 사실 건방지게도 나는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잘 살 수 있다.”

 

아직도 아버지는 틈만 나면 전주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당신은 내가 걱정된다. 끼니를 거를까 봐. 돈을 모으지 못할까 봐. 아버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글 | 최지인(알마 편집자) 사진 | 한정구(AM12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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