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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고도 순수한 곳, 이화동 벽화마을

'함께'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고맙고도 아름다운 곳

아마, 서울에서 높은 것들을 꼽으라고 하면 고층빌딩이나 '강남파'들이라 부르는 이들의 경제력, 사회적 지위를 떠올리게 마련일 테다. 하지만 내가 사는 혜화동 주변에는 위치로도 높고 관광적 가치,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순수함과 정(情)의 수준이 높은 곳이 있다. 바로 이화동 벽화마을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도 어느새 7년이 된 지금. 어쩌면 나 또한 관념적으로 높은 곳을 향해 상경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추구했을 것이고, 물론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보다) 금세 염증을 느꼈다. 하늘을 뚫을 듯한(결코 실현될 수 없는) 고층빌딩과 너나 할 것 없이 우쭐대는 사람들, 이타주의보다는 개인적이고도 이기적인 타인들 때문이다. 어쩌면, 원초적인 이유는 바로 나 자신에 있었을 것이다. 과욕과 성급한 결과만을 좇다 보니 어느새 서울 도심의 공기에 되레 지쳐있는 나를 발견해버렸으니까.

 

혜화동에 머무르면서 사실 이곳 주변의 명소들은 찾지 못했다. 서울 토박이들이 정작 서울의 랜드마크들을 가보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혜화동에 머무르면서 이곳 특유의 풍미를 만끽하지 못했었다. 현대적인 것들을 좇다 보니, 정작 이곳만의 문화는 즐겨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닿아 연극관람 후 낙산공원을 향하게 됐다. 산책 겸 이화동 벽화마을을 찾게 됐다. 여름날이었고, 높은 구두를 신어서인지 오르는 길이 꽤 힘들었다. 그러나, 노력의 땀이 선사한 값어치는 그곳의 높이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줬다. 이곳에 도착한 시간대는 저물녘이었는데, 하늘은 분홍과 보랏빛이 뒤섞인 제법 신비로운 색채를 뽐냈다. 하늘은 어디에서나 공평하다고 여겨왔었는데, 이곳에서 즐긴 하늘은 판타지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렇게 하늘이 생경하게 느껴지다니...... 그건 하늘을 깊이 있게 감상하지 못했었나 보다, 라며 많은 반성을 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가장 높고도 순수한 곳, 이화동 벽화

벽화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다양한 조형작품들이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작품들의 테마는 내게 '함께'의 의미를 선사했다. 중절모를 쓰고 서류가방을 든 남성의 모습은 초현실주의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골콩드(Golconde)' 속 신사들을 닮았는데, 그 옆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강아지는 외롭고도 개성을 잃은 중년남성을 위로해주는 듯 보였다. 마그리트의 작품 속 신사들이 왠지 슬퍼 보이는 빗물의 느낌을 선사했다면, 벽화마을을 채우고 있는 이 중절모를 쓴 신사는 강아지와 함께함으로써 위로와 도약을 입고 있는 듯 보였다. 많은 사람, 많은 물품을 지니지 않아도 단 한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함으로써 한 인물이 이렇게나 빛나 보일 수 있다니...... 값비싼 재료들로 만들어지지도, 규모가 크지도 않은 작품일지라도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감상을 남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벽화마을은 따스한 감수성을 지닌 공간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해 본다.

가장 높고도 순수한 곳, 이화동 벽화

순수한 곳에서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절로 배어나게 마련이다. '안녕'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벽화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고, 실제로 이러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잡한 현실을 생각해보니 가슴 한편이 아파지기도 했다. 실질적인 교류보다는 혼자의 시간, SNS를 통한 소통이 강세를 띠면서 너도나도 자신의 진심을 숨기는 경향이 짙어졌다. 현실의 차가움보다는 이곳에서 만난 '안녕'이라는 글귀에 대고 '나도, 안녕?'이라며 수줍은 목소리로 교감을 실행해봤다. 이 행위 자체 때문인지, 타자(벽화 속 글귀)와의 교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던 순간이다.

 

벽화마을을 걷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다양한 테마의 벽화들이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이곳. 제법 험준하기도 하지만, 아티스트들의 개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벽화마을의 제멋대로 생긴 계단은 형형색색의 꽃으로 도배돼 있다. 그야말로 '꽃길'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자신 스스로가 꽃잎이 된 기분이 들 것이다. 예쁘게 포개어진 꽃잎들 속에 자신의 몸을 포개어 사진 한 장을 남겨보는 것도 큰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야.'라는 자기최면을 걸어보면서 말이다.

 

위로 향하는 계단도 있지만, 오름이 있으면 필히 내림도 있는 법. 벽화마을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이용해봤다. 이곳 주민들이 돗자리 위에 모여 박장대소하며 소소한 시간과 추억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좀처럼 도심에서는 쉬이 발견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좁디좁은 돗자리 위에 어른 넷과 아이 둘이 모여 과자 몇 봉지와 음료를 펼쳐놓고 담소를 나누는 그 모습에 불현듯 뿔뿔이 흩어져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당장 그들이 보고 싶어졌던 그 순간의 기분. 왠지 지금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또 떠올리자니 슬퍼진다. 나 역시 이들이 사는 세상 속 한 사람임에도 감히 그들의 공간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이질감에 묘한 기분을 느꼈던 순간이다.

가장 높고도 순수한 곳, 이화동 벽화

집으로 오는 내내, 마지막에 본 그 살아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거푸 떠올랐다. 티브이나 그림 속에서 많이 봐왔던 장면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아름답게 여겨졌던 것일까. 내 머릿속을 한참이나 지배했던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들은 내게 많은 성찰의 기회를 선사했다. 서울에서 가장 높고도 순수한 곳이라 말하고 싶은 이화동 벽화마을.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와 모습들이 살아 숨쉬는 이곳은, '함께'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배움의 공간이다.


글ㆍ사진 최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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