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요조, 책방의 쓸모에 관해 생각하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작은 책방 ‘무사’ 열어
에세이집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필자로 참여
요조는 요즘, 집에서 1분 거리인 작은 책방으로 출근한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녹화가 있는 화요일만 빼면, 대부분 책방을 지킨다. 요조가 진짜 있을까 싶어 북촌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은 책방 주인이 된 요조를 신기하게 여긴다. 7평짜리 작은 책방의 이름은 ‘무사(無事), “무사히 망하지 말자”라는 의미로 지었다. 무사에서 파는 책에는 바코드가 따로 없다. 책이 한 권 팔릴 때마다, 요조는 뭉툭한 연필로 작은 노트에 책 이름과 책값을 적는다.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책방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좁은 공간임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손님들은 책을 척척, 펼쳐 들었다. 요조가 공저자로 참여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 1권 팔렸고, 『출판, 노동, 목소리』가 2권, 『채소의 신』이 3권 팔렸다. 책방 주인이 누군지 알고 온 손님이든 모르는 손님이든, 꽤 오랫동안 책을 펼쳐보다 사라졌다. ‘무사’는 얼마 동안 무사할 수 있을까? 요조에게 책방의 쓸모에 관해 물었다.
딱 오고 싶은 사람들만 오는 책방
책 좋아하시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책방 주인이 되실 줄이야, 깜짝 놀랐어요.
오랫동안 꿈꿨던 일이었어요.
‘무사’를 연 게 정확히 언제인가요?
사실 드문드문 열기는 했는데 공식적으로 날짜를 박은 건 10월 11일이에요.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네요.
한 달 동안 어떠셨어요?
재밌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하고, 많이 바빴어요. 책방 준비도 그렇고 제겐 모두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처음이고 책을 파는 일도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되게 좋으면서도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요.
독립출판물과 헌책, 새 책을 골고루 판매하고 있어요. 책은 어떻게 선택하세요?
우선 독립출판물을 많이 소개하고 싶었어요. 일반 서적도 입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경제적 여건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아서요. 정말 필요한 책들은 위탁해주시는 출판사의 책들을 놓고, 헌책방도 좀 돌아다니면서 책을 사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 같아요. 책방을 열고 보니 헌책을 선호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시간이 나면 헌책방을 둘러보고 있어요. 제가 인터넷을 잘 못 하거든요. 영 소질이 없어서 주문 같은 걸 해도 좀 오래 걸려요.(웃음)
‘요조의 책방’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연히 들어오신 것 같았는데 계산할 때 보면 아는 척하시는 분도 계시고, “배우세요?”라고 묻는 분도 계세요. 아무래도 책방이라는 간판이 없으니까요. “여기 미용실이에요? 뭐 하는 곳이에요?” 하고 물어보는 분도 많아요.
그러게요. 미용실 간판을 떼지 않아서 착각하는 분들도 있겠어요.
미용실 이후에는 커피 공방으로 사용되던 공간인데요. 그때도 간판을 떼지 않고 위에 새로운 간판을 붙여서 사용하셨더라고요. 저는 그 간판을 떼버린 거예요. ‘진 미용실’은 건물주인 복진 할머님께서 몇십 년 전 직접 운영하셨던 미용실이라고 해요.
책방이 대로변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굳이 찾아오지 않으면 오기 힘든 곳인데요.
너무 번화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딱 오고 싶은 사람만 오는, 그런 골목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위치가 괜찮은 것 같아요.
가끔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하나요?
물어오시면요.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어떤 중년 남성분이 ”노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책을 읽는데 노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게 무슨 의미죠?”라고 물으니까, 본인은 노트북을 앞에 놓고 일을 하는 사람인데 “몇 시간 일하고 나면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데, 책은 오랜 시간 읽어도 보이는 게 없으니까 노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주문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잡지 『책』을 추천했어요. “이건 책에 관한 책인데 매달 나오는 월간지이지만,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말하면서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서점에 가면 몸이 떨린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은 어때요? 책방의 주인이 되셨잖아요.
(웃음) 아무래도 무사는 제 공간이다 보니까 뭔가 더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이 책방에 있는 책들을 제가 다 읽지 못했어요. 그래서 욕심이 나요. 제가 읽고 싶어서 들여놓은 책도 상당히 많아서 다 읽고 나서 소개도 하고 싶어서요.
내가 먼저 읽고 싶은데 팔리는 책도 있겠네요. 많은 서점이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 작은 책방이 유독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책을 사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문화를 습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읽고 싶은 책을 메모했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직접 책을 보고 사고 싶은 분들도 많잖아요. 어떤 책을 생각하고 집을 나서서 책방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 이를테면 날씨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죠. 책을 사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책방을 선호하지 않을까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작은 서점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수요의 증가가 아니고 공급의 증가로 온 것 같아요. 뭔가를 쓰고 싶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긴 거죠. 굵직굵직한 출판사를 거치지 않아도 요즘은 어렵지 않게 책을 만들 수 있잖아요. 돈을 벌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창작에 대한 욕구니까요. 그런 욕구로 만든 사람들의 책을 소개하는 중간자 역할을 작은 책방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앨범을 낸 뒤로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보셨잖아요. 책방을 운영하시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판매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제가 뭔가를 설득하면서 파는 일은 아니었어요.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잘 못 해요. 그리고 그런 걸 싫어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잖아요. 편안하게 혼자서 책을 보고 싶어서 들어오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무관심이 필요한 상황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런 기분을 많이 갖거든요. ‘제발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요.(웃음)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지만 그전까지는 내버려두는 게 좋을 때가 많아요.
책방 주인, 백치미가 필요해요
아까 계산대 책상에서 『박물관 보는 법』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한 매체에 리뷰를 쓰기로 해서요. 몇 권의 책 목록을 받았는데, 그중 이 책을 골랐어요. 표지도 예쁘고 만듦새도 좋고 재밌을 것 같아서요. 지금 읽는 중이에요.
최근 에세이집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 공저자로 참여하셨어요. ‘달달함에 지친 당신을 위한 그와 그녀의 연애 혹은 소설’이 책의 부제더라고요. 20명의 글이 실렸는데 필자분들이 정말 화려하던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어요. 제안을 받고 필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휴, 제가 쓰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제가 누가 될 것 같아서 고민을 좀 했어요. 그런데 거듭 권유를 해주셔서요. 결국 수락을 했는데 쓰고 나서도, 제 글이 되게 도드라지겠다, 걱정했어요. 안 그래도 구린데, 더 구린 티가 많이 나겠다 싶었죠. 완성된 책을 받아보니 제 글이 맨 먼저 들어갔더라고요. 저자도 ‘요조 외’로 들어가고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부끄럽기도 했고요.
재밌게 읽었는데요?
(웃음) 정말요? 뭐랄까, 이 글을 쓸 때는 심정적으로 최고의 바닥이었어요. 그래서 고른 소설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 들어 있는 「야행」이란 소설이었어요.
‘무사의 무사’라는 제목으로 책방에서 매달 1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계세요. 11월의 작가는 김소연 시인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이에요. 김소연 시인의 책도 소개하면서 시인이 추천하는 책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요. 12월에는 황현산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요즘 번역을 하시느라 바쁘셔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근래에 인상 깊게 읽으신 시집이 있나요?
최근에 읽은 건 아니지만, 되게 좋아하는 시집이 있어요.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는 시집인데요, 좋은 시가 너무 많아서 한두 편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갖고 있는 신조가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것에 의의를 두고 있거든요. 이규리 시인의 「특별한 일」이라는 시를 보면 도마뱀 이야기가 나와요.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라는 시구가 있어요. 다음에 나오는 말이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인데, 인상에 많이 남아서 심심하면 그 시집을 찾아봐요.
좋은 시집도 많이 소개하고 싶으시겠어요.
워낙 좋아하니까, 시집을 좀 많이 쟁여놓고 싶지만, 오히려 욕심이 커서 뒤로 미뤄두고 있어요. 곧 해야죠.
10월에 소극장 콘서트를 하셨는데 제목이 ‘개입’이었어요. 제목을 지은 배경으로 "쉴 새 없이 참견하는 자기 자신에게 말려들어 가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노래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수의 덕목 중 하나는 분명 꿋꿋함일 것"이라고 설명하셨는데요.
다들 내 속의 내가 너무 많잖아요. 어떤 목표가 있어서 이걸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비아냥도 나와요. 애초의 내가 계획한 의도와는 달리 ‘돈이 되겠어?’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이런 부정적인 말이 튀어나오고요. 특히 음악을 할 때, 공연을 할 때 장난 아니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생각 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이게 또 마음대로 안 돼요. 노래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는 거예요. ‘너 그 부분에서 삑사리가 난다’라면서요. 아무 생각 없이 노래에 몰입해야 하는데, 내가 나를 막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나를 지키려면 꿋꿋해야겠다, 꿋꿋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책방을 열기까지도 많은 개입이 있으셨을 텐데요.
8월부터 열 곳을 보러 다녔는데 부동산에 가면 다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셨어요. 책방을 할 거라고 하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누가 요즘 책방으로 돈을 버느냐?”면서 걱정하시더라고요.(웃음) 정말 가는 곳마다,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그러니까, 저도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초조하고 괜히 시작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스트레스도 받으면서, 그 과정에서 꿋꿋하려고 정말 용을 썼어요.(웃음) 안 그러면 포기할까 봐요. 미쳐 있을 때 그 여세를 몰아 빨리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방 주인으로서 갖고 있어야 할 덕목은 뭐가 있을까요?
고집을 좀 버리면 좋겠다 싶어요. 너무 다양한 책들이 들어오고 읽게 되는데,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충분히 매력이 있는 책인데 내 취향이 아니면 지레 ‘이 책은 별로일 거야’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더라고요. 고집을 좀 놓아두면 훨씬 더 다양하고 괜찮은 책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약간 편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까요? ‘그래 너도 옳고 쟤도 옳고 다 좋구나’ 하는 백치미를 갖는 것도 책방 주인으로서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너무 책을 좋아해서 ‘가수 요조’라는 정체성이 조금 잊히면 어쩌나, 고민되진 않으시나요?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요즘은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책방을 준비하면서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팔까지 다쳐서 한 달 동안 깁스를 했거든요. 기타 연주를 못 하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한이 많았던 거죠. 갈증이 오더라고요. 기타도 치고 싶고 곡도 쓰고 싶고요. 내년 초쯤 책방 운영이 조금 안정되면 그간 준비하고 있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해요. 원래 엄마 앨범을 내드리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책방을 열면서 완전히 뒷전이 됐어요. 내년에는 꼭 하려고요.
가사는 쓰고 계시나요?
‘이건 가사야’ 하고 쓰는 건 아니고요. 뭔가를 끄적이면서 가사로 다듬어볼까? 시로 써볼까? 아니면 살을 더 많이 붙여서 산문으로 써볼까? 그런 생각을 해요. 휴대폰에 메모는 항상 하고 있어요.
‘무사’라는 책방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요조랑 안 어울리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계속 듣고 보니 썩 어울리네요. 무사의 앞으로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계시나요?
딱히 어떻게 만들어보겠다는 건 없어요. 청사진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솔직하고 단순하게 제 꿈을 현실화시키겠다는 목적이었어요. 단순 무식하게 시작한 거라서, 지금은 마냥 좋은 상황인 것 같아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부 같다고나 할까요? 잘되든 안 되든 지켜봐야겠지만, 꿈을 이룬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뤘다는 그 자체에 지금은 취해 있는 상황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현실적으로 변하겠죠. 한 달 한 달 매상도 체크하게 되고 오시는 손님들을 운운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아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냥 좋아요.
곧 동화책을 낼 예정이시라고요.
스토리는 다 나왔고요. 지금 그림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고 있어요.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으면, 받아서 독립출판물 형태로 만들려고 해요. 일단 내년 봄에 내는 게 목표예요.
책방에 들어올까? 말까?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요?
우선 책방에는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데도 들어갈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들어갔으면 하고, 뭔가를 할까? 말까? 고민되면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글 | 엄지혜, 사진 | 신형덕
요조,김보통,박현주,정지돈,김소연 외저 | 부키
스무 명의 필자는 ‘읽기’라는 ‘만남’을 통해 자신들과 지극히 사적인 관계를 맺은,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연애소설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책꽂이에 꽂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 둔, 연애가 끝나고 나 혼자만 읽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들이 했던 연애, 그들이 읽은 소설, 그리고 그들이 필요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읽기’라는 만남, 새로운 방식의 ‘연애’를 읽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연애 부재중’의 헛헛함, 건조해진 마음을 따뜻한 글에 푹 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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