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의 ‘이모털’
‘아이 인 더 스카이’, ‘마임’ 그리고 ‘올드 앤 와이즈’. 바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들로 우리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 제목들이다. 바로 그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음악 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최근 막을 올렸다. 신작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이다.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인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두 명의 영국 젊은 음악가들이 결성했다. 바로 팀 명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알란 파슨스와 작곡가 에릭 울프슨이다. 1970년대 중반, 알란 파슨스는 핑크 프로이드의 앨범인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었고, 건반 주자인 에릭 울프슨은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음악적으로 의기투합한 두 젊은이는 그들의 첫 음반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이야기가 담긴 1975년 앨범 ‘상상과 미스테리의 이야기들(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이었다. 전 세계로 8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탄생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명반이다.
프로젝트 그룹의 해체 이후 에릭 울프슨은 뮤지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특히, 역사적 인물에 대한 탐구가 담긴 일련의 음반들은 이미 무대에 대한 구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일 만큼 치밀한 음악적 구성과 무대적 실험 정신이 가득 담겨져 흥미로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심리학자였던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이디아나(1990, 원래는 이 음악도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11번째 정규앨범이 될 뻔했으나 음악적 이견으로 결국 에릭 울프슨의 음반이 됐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이야기를 다룬 <가우디>(1995) 그리고 국내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겜블러>(1996) 등이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도 에릭 울프슨이 음악을 만든 작품이다. 거의 대부분이 그가 2003년 발표했던 음반 ‘모어 테일즈 오브 미스테리 앤 이매지네이션’을 활용하고 있는데, 물론 1975년 발표했던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첫 음반의 연장선으로 그때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시 작가의 삶에 대한 연대기적 구성으로 기획한 음반이었다. 에릭 울프슨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생전에 정식 무대 버전으로까진 만들진 못했으나 2009년 독일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뮤지컬이 첫선을 보이게 됐고, 다시 이 작품을 우리나라 제작사가 우리말 무대가 꾸미게 됐다. 작품 속 비운의 작가 못지않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작곡가 에릭 울프슨을 떠올리며 감상하면 더욱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이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작품의 소재로 쓰인 작가의 삶도 상상을 자극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의 세익스피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는 겨우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 천재는 박명한다는 가슴 아픈 속설의 실증적 사례가 바로 그의 삶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생애를 살다간 비운의 천재였다. 포는 1809년 1월 19일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출과 두 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숙부에게 입양되는 등 그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다. 1826년 포는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린 나이에 도박과 술에 빠지게 됐고, 화가 난 숙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끊게 돼 결국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만다. 1833년 발표한 ‘병 속의 수기’가 관심을 끌고 그로 인해 37년까지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는 등 세간에 인정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폭음과 빈곤한 삶을 벗어나진 못했다.
1835년 스물여섯이 된 포는 열세 살짜리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을 한다. 짧은 행복의 시기에 그는 ‘어셔 가의 몰락’이나 ‘모르고 가의 살인 사건’ 등 대표작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가 신혼이었던 때는 바로 미국의 대공황이 있었고, 따라서 극도로 궁핍한 결혼 생활을 견뎌내야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버지니아는 병을 앓기 시작해 가난과 결핵으로 고통을 겪다가 5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시 ‘애너벨 리’는 바로 버지니아의 죽음을 둘러싼 작가의 개인적 아픔을 투영한 작품이다. 1945년 발표된 그의 대표작 ‘갈가마귀’ 역시 작가의 비극적인 삶을 떠올리면 더욱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그는 마지막 죽음조차 비극적이고 충격적으로 세상과 작별한다. 생애의 마지막을 알코올 중독과 행려병자의 모습, 그리고 정신착란에 둘러싸인 채 마감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이고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천재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절하기보다 압축되고 함축적인, 마치 그가 쓴 시를 연상케 하는 극 전개로 대중성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히 갈리지만, 포의 비극적이고 처절했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비범함이라는 극적 대비를 적절한 무대 장치와 상징적 이미지, 노래들을 통해 잘 구현해내고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모르고 가의 살인사건’에 나오는 탐정 오귀스트 뒤팽으로 훗날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탄생에 영감을 주었고, 도스토옙스키나 프랑스 파리의 또 다른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그의 작품세계를 염두에 두고 공연장을 찾는다면 더욱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게 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뮤지컬의 상징적 이미지는 깃털이 달린 팬이다. 마치 새의 몸에서라도 삐져나온 듯 한 깃털 혹은 희미한 그림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퇴폐적이면서 비극적이었던 포의 인생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는 커다란 무대 장치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등장해 객석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가 쓴 대표적인 시 ‘갈가마귀’를 읽고 감상하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얻게 되는 무대 위의 비주얼 이미지이다. 꼭 영문학도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향기가 짙게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뮤지컬 작품이다.
인터넷에서는 스티브 발사모가 부르는 버전을 만날 수 있다. 특유의 미성으로 유명한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인물이다.
또 다른 명곡으로는 ‘관객석 어디선가’도 있다. 에릭 울프슨의 음악답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선율이 너무도 아름답다.
에릭 울프슨이 뮤지컬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음악 중에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프로이디아나도 있다. 독일어 버전이 오스트리아에서 막을 올려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물론 심리학자 지그먼트 프로이드에 관련된 내용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뮤직 비디오에서는 에릭 울프슨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독일어로 제작된 보습이 궁금하다면 참고해볼만한 자료도 있다. 펠릭스 마틴이 자아분열 환자인 거울의 사나이를 노래하는 장면이다. 독일어 제목인 ‘Ich bin den Spigel’은 영어로는 ‘I am a mirror’ 즉, 나는 거울 속 사나이라는 의미다. 인간 내면의 다양성을 통해 다중인격을 말하는 노래다.
사진제공 ㈜S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