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작가가 들춰낸 가족에 관한 무서운 진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가족애를 발휘해서 그 흉측한 곤충을 참아낸다.
나는 가정을 증오한다 - 앙드레 지드
가정은 안식처이자 곧 감옥이다 - 헤겔
가족, 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정을 모든 사람이 살갑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위인들처럼 증오하거나 감옥으로 생각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집은 진정한 쉼의 장소일까? 가정을 안식처라고 부르는 이유
우리는 가정을 안식처라고 부를까요? 안식처는 '쉬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집에도 일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자신만의 일이 많아서 전혀 쉬지 못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도 왜 안식처라고 부를까요?
가정에서만큼은 누구든 자신의 외모나 성격, 재능 또는 재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의 '있음' 그 자체로써 인정받고 사랑받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다는 거지요.
카프카가 들춰낸 가족에 관한 무서운 진실
출처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곤충으로 변합니다. 아마도 거대한 바퀴벌레쯤으로 되는 곤충으로 변신을 한 것입니다. 그를 발견한 가족들은 놀라고 슬퍼하며, 한편으로는 절망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사랑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는 물론이고 빚까지 모두 떠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곤충으로 변한 가족 돌보기
가족들은 처음에는 가족애를 발휘해서 그 흉측한 곤충을 참아내고, 돌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슬픔과 사랑은 사라지고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저것 때문에' 못살겠으니 '없앨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외치기에 이릅니다.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냉대와 폭력, 증오 속에서 고독하게 죽습니다. 그에게는 가정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의미와 카프카의 <변신>
만일 우리가 가족을 그의 '어떠어떠함'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사랑한다면, 그 '어떠어떠함'이 변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소설 <변신>은 흉측한 곤충으로의 변신이라는 기발한 장치를 이용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신으로 인해 그레고르는 가족을 먹여 살리던 부양자에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착취자, 벌레로 표현되는 기생자로 탈바꿈합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무서운 진실은 가장 순수한 가족간의 사랑조차 경제적인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카프카의 통찰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가족간의 사랑이 줄었기 때문일까?
출처 : 위키백과_카를 마르크스 |
인간의 본성이 원래부터 악해서일까요? 혹은 가족간의 사랑이 오늘날에 와서 약해졌기 때문일까요? 도대체 무슨일일까요. 인간소외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관계, 심지어 가족관계마저도 경제적 가치에 의해 좌우되게 된 것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_공산당 선언 표지 |
부르주아는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일을 수행했다. 적나라한 이해관계, 냉정한 현금 계산 외에는 그 어느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인격의 가치를 교환의 가치로 해소시켜버렸고,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던 무수한 자유를 그 어떤 것으로도 방해받지 않는 단 하나의 상업적 자유로 바꾸어버렸다. 모든 직업에서도 신성한 후광을 걷어버렸다.
Salem SaberhagenGhost Duet - Louie Zong |
마르크스가 예언한 악령이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매순간, 우리가 힘들지만 인간의 길을 다시 가고자 한다면, 흉측한 곤충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인간이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본주의 악령이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가장 안쪽의 가정까지 흔드는 소설로서 <변신>을 읽어보았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자 : 김용규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06.11.13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몰두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에 생동감 있는 일상적 문체가 어우러진 다양한 대중 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했고, ‘지식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