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진한 상상력의 세포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 '유미의 세포들'
평범한 유미가 가진 평범하지 않은 것들
서른 두 살의 회사원 유미는 삼년 전에 마친 연애의 상처로 연애 휴무 중인 여성이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본심을 적당히 숨길 줄 알고 이성적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유미는 다수의 여성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나’로서 동일시하게 하는 보편적 캐릭터이자 로맨스장르에서의 개연성을 확보해주는 인물이다. 유미가 상처를 씻고 행복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 예상되는 평범한 모티프에서 비범한 어떤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가 갖고 있는 ‘세포들’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지만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세포들은 유미의 매 순간을 함께 하며 단조로운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유미의 세포들' 프롤로그 - 정산을 해야만 퇴근할 수 있는 유미의 내면에서 고군분투 중인 세포들 |
유미의, 유미에 의한, 유미를 위한 개성만점의 세포들
<유미의 세포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세포들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음속의 갈등 중 빈번히 대립하는 이성과 감성은 유미에게도 매우 중요한 세포들이다. 이성과 감성의 잦은 싸움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출출이세포는 유미의 수많은 세포들 중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대표 세포이다. 이밖에 수많은 세포들이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에피소드에 따라, 유미의 감정 변화에 따라 시시 때때로 등장한다. 반복되는 일상 중 잦은 활약을 보이는 세포들도 있지만 특별하고 사소하게 나타나는 세포들도 있으며 마법 같은 힘을 내는 프라임세포, 평범한 세포들끼리 융합해 프라임세포급으로 활약하는 융합형 프라임세포들도 있다. 이렇게 창의적인 세포들이 열심히 활약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다. 유미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 유미의 세포들이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소통하는 것은 오로지 유미의 행복을 위해서다.
'유미의 세포들' 59화, 보여줄 순 없겠지 - 유미가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융합한 융합형 프라임세포, ‘신의 한 수’ |
그렇다면 유미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현재의 유미에게 행복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주체적 사랑이다. 상대방과 나를 속이지 않는 솔직함을 장착한 융합형 프라임세포는 유미가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유미의 행복은 융합형 프라임세포인 신의 한 수 세포를 통해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사실(fact)보다 실제(real)같은 진실(truth)의 힘
‘진실(truth)이란 아주 짧고 사소한 사건에 인생의 수십만 시간을 포괄하고 응축함으로써 나타나는 의미심장함이다’ (이인화, 스토리텔링 진화론, 해냄, 2014, p.21.)
<유미의 세포들>에서 세포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유미의 행복만은 아니다. 스토리의 개연성, 웃음, 기발함, 공감 등, 세포들은 독자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독자가 세포들의 활약과 유미의 행복을 꾸준히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세포들의 존재가 허구임을 알지만 그것을 실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초사실주의(hyper-realism)’에 있다. 진짜가 아니란 것이 명백하지만 그 명백함 때문에 오히려 더 사실적인 초사실주의는 세포들로 응축되어진 삶의 단편들이 핍진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가짜 같은 세포들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유미의 세포들>은 독자의 공감과 몰입을 이끈다. 더불어 세포들이 염원하는 유미 삶의 ‘행복’은 인생만사의 지고지순한 진리였기에 관심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대의 대표 로맨스 스토리텔링, <유미의 세포들>
이야기(story)는 실재하는 정보나 지식과는 다르다. 이야기는 독자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목표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보다 진실하게 묘사하기 위해 허구를 동원’한다.(이인화, 스토리텔링 진화론, 해냄, 2014, p.21.) 최근의 이야기는 내용 뿐 아니라 어떻게 전달하는가도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유미의 세포들>은 ‘삶의 행복을 위한 사랑’이란 주제로 전통적인 로맨스 장르의 스토리 개연성을 따르면서도 만화적 상상력을 쏟아 창조한 세포들을 통해 이야기를 함으로써 독특한 개성을 만들었다. 이로써 <유미의 세포들>은 로맨스 장르의 스토리를 다시 쓰게 되었으며 이 시대의 웹툰 로맨스 스토리텔링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리듬감 있고 매끄러운 연출은 덤으로 작용한다.
by 홍난지(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