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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되게 장르영화만을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로버트 로드리게즈

일관되게 장르영화만을 추구한 '로버트

1992년 극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를 만들어 할리우드에 발탁된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데스페라도> <황혼에서 새벽까지> <패컬티> <스파이 키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씬 시티> <플래닛 테러> <마셰티> 등의 명작을 만들어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씬 시티>는 걸작의 반열에 올릴 만하다. 일관되게 장르영화만을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일관되게 장르영화만을 추구한 '로버트

미국에는 스릴러와 호러 등의 장르영화에 상을 주는 ‘스크림 어워드’가 있다. 2004년에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평소 장르영화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과시하며 장르영화만을 만들고 발전시켜온 그들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상이었다.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부터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 <킬 빌> <장고 언체인드> 등 과거의 싸구려 장르영화들을 재구성하며 걸작을 양산해왔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도 장르영화 한우물을 팠고 타란티노가 각본을 쓴 걸작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출했고, 공동 연출을 한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플래닛 테러>를 만들며 B급영화의 현대적 변주에도 힘을 기울였다. 당시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는 수상소감에서 장르영화를 천시하는 풍토를 비웃으며 ‘Academy Sucks!'라는 내뱉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화만을 숭배하는 아카데미를 비웃으며 그들은 선혈이 낭자한 도발적인 영화들을 계속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적극 찬성이다. 세상에는 걸작만이 아니라 싸구려 오락물도 필요하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씬 시티>는 프랭크 밀러와 공동 연출로 만든 작품이다. 로드리게즈는 프랭크 밀러 원작의 만화 <씬 시티>를 거의 가감 없이 스크린에 옮긴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프랭크 밀러가 콘티를 짜고 그린 만화를 그대로 영상화하는 것이기에, 로드리게즈는 프랭크 밀러의 역할이 공동감독이라고 믿었고 크레딧에 올렸다. 로드리게즈의 믿음처럼 <씬 시티>는 지극히 만화적인 영화, 아니 살아 움직이는 만화로 탄생했다. <딕 트레이시>처럼 캐릭터와 색감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만화의 구도와 질감 그리고 컷 구성까지 고스란히 옮겨온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만화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이미 익숙하지만 <씬 시티>의 방식은 색다르다. <엑스맨>이 영화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원작의 형광색 타이즈를 무채색 수트로 바꿔놓은 것처럼, 만화적 특성인 과장과 왜곡은 사실적 장르인 영화에서 어느 정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씬 시티>는 만화를 각색하여 사실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캐릭터와 플롯, 화면 구성과 컷의 편집까지 만화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한다.

일관되게 장르영화만을 추구한 '로버트

<씬 시티>는 ‘씬 시티’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죄악으로 물든 도시, 결코 정의를 복원할 수 없는 도시에서 이리처럼 떠도는 거친 남자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다. 프랭크 밀러가 쓴 대사들은 어떤 하드보일드 소설 이상으로 멋지지만 <씬 시티>는 과장으로 가득하다. 한 여인을 죽인 배후의 인물을 찾기 위해 싸우는 마브는 자동차에 몇 번이나 치이고도 태연하게 일어난다. 극단적인 비현실감이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 묘한 부조화가 <씬 시티>의 매력이다.

 

<씬 시티>가 단지 만화적인 매력을 탁월하게 재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씬 시티>은 펄프 픽션의 무엇에 대중이 매혹되는지 잘 보여준다. <씬 시티>가 그려내는 날 것의 흥분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들어 있는 기이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야하고 폭력적인 면만이 아니라 온갖 추잡하고 엽기적인 것들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것 모두가 결국은 우리의 얼굴이다. 나는 그 추잡한 것들을 보는 것이 좋다. 걸작이서,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매혹적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는 만화의 영화화라기보다 영화적인 만화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by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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